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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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서 작가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선택한 것은 90년대를 풍미한 여성작가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내 젊은 시절의 자화상을 그의 문학을 통해 그릴 수 있어서였다. 6.25전쟁을 겪으며 자본주의의 세례 속에서 경험했을 혼란한 시대상은 90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그 시대를 박완서 작가와 함께 아픔을 공유하며 걸어왔음을 깨닫곤 하였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삶의 토대위로 수필이라는 문학에 녹여낸 관조적 체험들은 같은 시대를 공통으로 겪으며 느꼈던 아픔을 여실히 드러내어 치유의 이름으로 다가오곤 한다. 90년대를 살아온 모든 이들에게 박완서 작가와 같은 아픔과 같은 고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수필이 공통의 문학으로서 분모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시대의 분모위에 각자 자신의 삶은 분자로 열심히 자신의 생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박완서 작가의 수필집은 잊고 있었던 일들을 표표히 떠오르게 하곤 하였다. 삶은 때론 행복의 얼굴도 하고 있지만 비극의 모습으로도 찾아온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때 생리만 멎은 게 아니라 성장도 멎어버린 것 같다.반세도 넘어 전의 추위, 굶주림, 불안, 분노 등 원초적 감각의 기억은 그로 인하여 감기도 걸릴 정도로 현실적인 데 비해 현재 누리고 있는 소비사회의 온갖 풍요하고 현란한 현상들은 그저 꿈만 같다. 번화가의 환상적인 조명, 무수한 한강 다리를 장식한 아름다운 불빛,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로를 은하수처럼 흐르는 차들의 행렬을 바라볼 때는 더 그렇다. 그런 것들이 거기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가 혼이 빠져 보이는 환상만 같다. 심지어는 내가 소유한 넉넉한 물질이나 약간의 명성 그런 것까지 실제가 아닌 초라한 내가 잠시 현혹된 헛것이지 싶다.-p67

 

누군가의 수필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생을 마주한다는 의미도 된다.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 하여 자칫 가벼운 글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만 붓 가는 대로 쓰기 위해서는 붓에 자신의 삶과 철학을 오롯이 담을 수 있어야만 한다. 자신의 생의 이야기를 글로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경지는 문학에서 가장 세련되고 고도의 문장훈련이 필요한 경지이다. 자유롭게 쓰는 글이라하여 자칫 가볍게 여길 수 있지만, 자신의 생을 담는다는 점에서는 가장 진실된 문학이기에 가장 무거운 장르라 할 수 있다. 박완서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의 수필은 작가의 삶과 철학이 매우 잘 담겨있는 글이다. 전쟁의 상흔이 미처 가시기전에 찾아온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겪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 이북에서 자란 유년시절의 이야기, 영화와 책을 보며 느꼈던 감상들, 늦은 나이에 얻은 작가로서의 명성과 감흥이 여실히 담겨져 있다. 함축된 언어로 쓰이는 시와 허구로 만들어진 소설과는 다르게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서술해간다. 수필의 제재는 그래서 다양하며 무한대이다. 허구의 세계를 상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닌 리얼리티의 삶, 바로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장의 문학이라는 점에서 문학의 장르에서 가장 진실하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세 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내 생애의 밑줄은 유년의 회상과 노년에 이르러서의 감상, 개인의 사색들로 이루어져 있고, 독서를 통하여 얻은 사유는 책들의 오솔길에 담았다. 마지막 한 편에는 그리움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고인들을 위한 전상서가 쓰여 있다. 읽으면서 박완서 작가와 시대차가 많이 나는 줄만 알았는데 2002 월드컵에서 감동받은 소회와 북한에 소를 몰고 간 정주영 회장 이야기 부분은 시대를 함께 하고 있었다는 공통의 분모를 발견한 듯 했다. 최근 레이몬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었는데 박완서 작가의 독후감으로 되새김하는 소설이야기는 더 마음에 와닿는다. 그 가운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화목하고 유복하기까지 한 사회적으로나 학벌로나 탄탄대로만을 걸어온 가족들에게 닥친 불행을 이야기하면서 ‘아직까지 그에게 어떤 쓰라린 경험도 없었다는 데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앞으로 닥칠 불행에 대한 치명적인 예감’ 이라는 표현이 하는 부분이 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체험한 세대들은 불행이라는 전조, 삶에서의 치열함, 살아가는 처절함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모든 것이 풍족하고 평화로운 나날에는 권태와 게으름, 정신적 빈곤에 취약해 현대인들은 모두 우울증이라는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내게도 해당되기에 명치를 바늘로 찌르듯 ‘치명적인 예감’이라는 표현에 한동안 꽂혀있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가정에 찾아온 ‘치명적 예감’과도 같은 불행은 아들의 여덟 번째 생일날 주문한 케잌을 찾아오기도 전에 죽어버린 아들의 교통사고였다. 케잌을 찾아가지 않는 부부에게 화를 내는 빵장수, 그러나 사실을 알고 나서 사과의 의미로 내민 롤빵과 따뜻한 차. 삶이 때때로 잔혹한 얼굴을 하고 찾아올지라도 공감과 위로를 서로에게 건네는 것으로 삶은 더욱 가치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박완서의 수필집은 삶이라는 공통의 분모위에 써내려가는 공감과 위로의 문학이라 하여도 지나치지 않는 삶, 공통의 이야기이다.

 

삶이란 존엄한 건지, 치사한 건지 이 나이에도 잘 모르겠다.-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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