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1 (반양장) - 제1부 한의 모닥불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태백산맥 핸디북 레디케이스 한정판이 나왔다. 손에 들고 다니기 좋은 사이즈이기도 하지만 휴대하기 간편한데다가 무엇보다 밑줄 긋기가 용이하여 산택하였다. 젊었을 때는 정치에 피상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정치와 삶이 밀접한 연관을 짓고 있음을 깨닫곤 한다. 우리나라의 현 정치 지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태백산맥이라는 이념의 산맥을 넘어야만 한다는 뼈아픈 자각이 들 때마다 찾게 되는 책이 바로 태백산맥이다.  



한국 격변기, 해방이후부터 시작되는 태백산맥의 공간적 배경은 ‘벌교’이다. 갯가 빈촌에 불과했던 벌교는 고흥반도와 순천·보성을 잇는 삼거리 역할을 하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벌교에는 일인들의 통통배가 득시글거렸고 상주하는 일본인들도 많았다. 당연히 왜색이 짙어졌고 읍단위이면서도 그 어떤 읍보다 경제상황이 좋았다. 벌교에서 돈 자랑,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돈이 모이자 자연적으로 주먹패들도 모여들었다. 상업이 발달하자 손익계산이 빠른 지주나 일인들이 돈줄을 거머쥐고 있었고 양반들의 품위나 인품 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든 개명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돈 계산과 잇속이 빠르다보니 사람들도 자연적으로 다른 지역의 농민들보다 귀와 눈이 밝았고 입도 야무졌다. 일본인들과 어울리는 것은 이들에게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해방 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이 또한 벌교였다. 좌익과 우익의 접전지인 동시에 좌익과 우익에게 가장 필요한 곳이 바로 벌교였던 것이다. 우익에서 좌익으로 하루 아침에 정치권력이 바뀌지만 5일 천하로 끝나고 수백명이 벌교 다리위에서 빨갱이라는 이유로, 우익이라는 이유로 처형되었다.  


혼돈의 시대에도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으로 시대를 감싸 안으며 민족의 앞길을 고민하는 지성인의 고뇌를 보여주고 있는 캐릭터는 김범우이다. 병으로 차출되었다가 미국의 포로가 되어 특수부대훈련을 받게 되었던 김범우는 하와이에서 나라가 없기에 받아야만 했던 차별과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념보다도 나라와 민족이 먼저라는 사고가 정립 되어 있다. 김범우를 통해 당면한 시대의 치열한 사유를 읽을 수 있다. 대지주의 아들로서 소작농들의 헐벗고 굶주리는 비참한 생활에 대하여 죄책감과 죄의식을 항상 느껴왔던 김범우는 사회주의 서적을 접한 후 봉건계급제도를 없애야 평등사회가 도래한다는 인식의 기둥을 세웠다. 


 김범우와 같은 사회주의 서적을 읽었던 염상진도 인식 면에서는 김범우와 같은 평등사회를 꿈꾸지만, 지주계급과 경제적 지배세력을 힘으로 타도하려 하는 급진적 행동파라는 점이 김범우와 염상진의 결정적 차이다. 이러한 사상의 차이는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좌익세력과 우익세력과의 갈등으로 나타나고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립으로 그려지게 된다. 아버지 염무칠은 숯을 캐어 발품을 팔면서도 염상진이 사법학교 선생이 되기만을 바랬지만, 결국 염상진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소작농이 된다. 명석한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는 형과의 차별에 삐뚤어지기 시작했고 형과는 반대의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 복수를 꿈꾼다, 염상진에게 염상구라는 동생의 존재는 차가운 지성인 김범우와의 싸움보다 더 버겁고 아픈, 절대 삼켜지지 않는 목안의 가시 같은 존재였다.


어떤 주의를 따르든 그건 개인의 자유지요. 그러나, 그것이 곧 민족 전체를 위하는 길이라는 성급한 판단은 금물입니다. 미국이다, 소련이다, 민주주의다, 공산주의다,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치적 택일이 아닙니다. 그건 한 민족이 국가를 세운 다음에나 필요한 생활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민족의 발견입니다. 그 단합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해요.” -p107


민족-그건 모태와 같은 것이고, 음성적으로도 어머니를 부를 때처럼 정겨운 슬픔을 담고 있다.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은 소중한 말이다. 그러나 그건 일제하에서나 생기가 도는 말인 것이다.  이미 반도땅은 해방을 맞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향하는 바나 행동하는 것은 그 나름으로 일관성과 순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사회주의 혁명의 동지도 아니었고 적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동지도 아니고 적도 아니었다. ‘민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었지만 그건 또다른 ‘주의’는 될 수 없었다. 


 
민족이 염원하던 해방 후 이어진 사회의 격랑은 그렇게 고스란히 태백산맥에서 재생된다. 해방이후 이어진 이데올로기로 인한 좌파와 우파간의 갈등은 여순 반란사건으로 인해 수면위에 떠오르게 되면서 크게 민족 간의 갈등으로 나누게 되고, 이후 6.25전쟁이 발발 전후와 휴전 협정까지가 태백산맥을 이루는 거대한 줄기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이다. 언제까지고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우리 민족이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사상적 대립은 지금도 어떤 대안도 없이 지속되고 있는 시대의 비극을 반추해 주고 있는 것만 같다. 해방이후 혼란한 시대에 나타나는 인간 군상들 역시도 작금의 정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득권들이 무기삼아 내거는 사건조작과 폭력유도, 문분열책동과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고, 나라가 공산당 만들고 지주들이 빨갱이 만드는 시대는 여전히 그 명목을 이어가고 있으니, 태백산맥이라는 거대한 이념의 벽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지금의 좌우 싸움 역시 그치지 않는 이념의 비극인 것이다.
 
 
타오르는 불꽃이 지니는 생명감,
불꽃을 몰고 타는 한 개비의 담배,
유한할 수밖에 없는 삶, 어쩌면 담배 한 개비의 길이밖에
안 될지 모르는 과정을 살아내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어찌 보면 담배 한 개비 정도 밖에 안 되는 짧은 생에 끼어든 이데올로기로 인한 우리 민족의 불행은 이 책 《태백산맥》을 읽는 것만으로 생생하게 체험 할 수 있다. 읽으면서도 차라리 문학으로만 치부해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태백산맥》은 우리 민족의 삶에 윤색도 각색도 하지 않은 채 비극으로 점철된 우리 역사의 민낯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며 시대정신을 일깨우고 있는 역사책이다. 누구라도 잊었거나, 잊고 있었거나, 아니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가슴 아픈 민족인지를 모르고 있다면, 태백산맥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우리의 비극 , 남북분단이라는 현재가 있다. 당면한 현실에서 미래를 비극의 역사로 쓰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는 현재와 미래를 비춰주는 生(생)이 살아 숨 쉬는 생생한 역사의 기둥이 필요하다. 역사의 기둥을 바로 세우는 일은 태백산맥을 읽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 비판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겠나. 다 지나가버린 세월, 아무리 열 올리며 비판한다고 해봤자 이미 그르쳐진 일이 바로잡힐 리가 있나. 그런데도 그게 계속이거든. 왜 그러겠는가. 인간은 현실을 살 수밖에 없는 동물이고, 그 과거적 삶 속에는 우리의 현재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나.-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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