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락 - 꽉 안아주고 싶은, 온몸이 부서지도록 월간 정여울
정여울 지음 / 천년의상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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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정여울의 아홉 번째 책 와락을 읽는다. 와락... 누군가를 안으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나에게 스며드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천형 같은 삶을 매일 살아내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지곤 할 때, 고개 숙인 사람들. 갈대가 조용히 속으로만 울음을 삼키듯 차마 내뱉지 못하고 사는 이들을 와락 안았을 때 잔잔히 전해지는 아픔의 전도를 느낄 때 이상하게 위안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산다는 것이 혼자만의 아픔인줄 알았는데 누구나 다 그렇게 아파하며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와락 당신을 껴안는 순간, 우리는 각자의 개체로만 존재하기 시작함을 깨닫는다. 포옹을 하면, 그 사람을 많이 아끼고 많이 애틋하게 여겨야만 느낄 수 있는 깊은 공감의 아우라 같은 것이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 존재와 존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사다리를 놓는 듯한 행복한 착시가 느껴진다.-p13

 

이번 와락의 주제와 어울리는 화가는 구스타프 클림트이다. 정여울은 와락이라는 의태어와 어울리는 화가가 구스타프 클림트라며 그의 그림에서 포옹의 의미를 떠올린다. 신과의 은밀한 사랑을 성취하는 장면을 소름끼치도록 아름답게 표현한 다나에와 아름다운 금빛 포옹장면을 그린 키스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예술을 집대성 해놓은 것만 같다.

 

영화에서나 또는 문학에서 보여지는 와락포옹하는 감동적인 순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오래전 보았던 영화 미 비포 유가 떠올랐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비운의 사고로 죽음만 생각하는 남자와 젊음과 건강을 가졌지만 지독히도 가난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일과 사랑, 돈과 명예 모든 것을 다 가졌던 남자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자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는 가장 친했던 친구와 사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고 흐트러진 베개조차 자신의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6개월 뒤 안락사를 자처한다. 그러던 가운데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집안의 경제를 책임져왔던 루이자가 간병인으로 나타난다. 가족들 뒷바라지에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한 적이 전혀 없던 루이자는 매일 죽고 싶어 하는 남자 윌과 난생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미술관을 가고 해변으로 여행을 간다. 매사 신경질적이고 부정적인 윌은 루이자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세상과 담을 높이 쌓고 자신의 세계에 침잠해 들어가고 있는 윌에게 루이자는 너무도 투명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벽을 허물어간다. 촌스럽고 모든 것이 서툴러 실수투성이지만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차가운 눈빛을 지닌 윌의 눈도 조금씩 부드러운 반달모양으로 변해간다.

 

포옹의 순간은 번짐의 순간, 피어남의 순간, 타오름의 순간이다.-p13

 

그렇게 죽고 싶어 하는 남자 윌은 매일 아침 루이자가 보고 싶어 눈을 뜬다. 영화는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들만큼 슬프지만, 젊고 건강미 넘치는 여주인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윌과 루이자가 포옹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동에 전율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우리 생에도 한 번쯤은 타인을 내 삶에 끌어들이는 포옹이 존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깊이 안아준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순종과 사랑의 표현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껴안아야 하고 타인을 포옹하며 이 천형 같은 삶을 지속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정여울의 와락은 서로가 서로를 와락 껴안아주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은 책이다. 아무라도 와락 안아주고 싶은, 너와 나 사이의 높은 벽을 뛰어넘고 싶어지는 와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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