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새 아시아 문학선 22
메도루마 슌 지음, 곽형덕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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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판도라 

 

일본인들에게 오키나와는 어떤 의미일까. 일본이지만 일본이 아닌, 영원한 이방인이며 영원한 타인으로서만 존재하는 곳이 오카나와이다.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와 문학에는 미군들의 성폭행 사건이 반드시 등장한다. 그 이유는 오키나와가 한때 미군정 치하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유였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되었지만, 일본 내 미군시설 면적의 약 75퍼센트가 오키나와 미군기지이다. 아시아의 하와이라 불리 울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지만, 오키나와의 역사는 그 아름다움에 가리워진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미국령이었다가 다시 일본에 속하는 와중에 오키나와인들은 미군 수용소에서 짓밟히며 속박당한 채 살아야했으며 태평양전쟁시에는 가미가제 특공대에 젊은 영혼들을 자살부대에 보내야 했다.

 

무지개 새의 저자 메로루마 슌은 오키나와에서 태어났다. 그는 오키나와의 이런 불편한 진실에 천착하여 오키나와의 현실을 고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물방울로 아쿠카가와 문학상을 수상하며 오키나와의 아픈 역사를 탁월하게 그려내었다는 평을 받는 그는 무지개 새에서는 미군의 폭력이 오키나와라는 섬을 어떻게 망가뜨려 놓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움에 가려져 그 안에 어떤 비극의 이야기가 잠들어 있는지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문학을 빗대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가쓰야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폭력조직 두목 히가를 만나면서 가쓰야는 히가의 충실한 오른팔로 철저히 길들여진다.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자신을 폭행한 이에게 동화되어 이성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한 모습이다. 히가의 오른팔 역할을 하며 히가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는 가쓰야는 동급 아이들에게 상납금을 받고 폭력으로 타인을 길들이는 법을 배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약에 취한 여자를 매춘에 이용하고 상대 남성을 사진으로 협박한다. 히가는 약에 취해 매춘을 더 이상 하지 못하면 다른 여자로 교체해 준다. 그러던 가운데 만난 마유라는 여자가 들어온다. 마유를 돌보면서 가쓰야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우연히 마유의 등에 새겨진 무지개 새문신을 보면서 부터이다. 마유의 등에 있는 무지개 새는 가끔 반짝거리기도 하며 가쓰야에게 묘한 환상을 심어주는데 안타깝게도 무지개 새의 머리는 누군가 지진 담뱃자국으로 사라졌다. 여러 가지 빛깔의 무지개 새 문신을 볼 때마다 가쓰야는 알 수 없는 상념에 빠지곤 하지만 머리가 없는 무지개 새는 마유와 가쓰야를 포함하여 오키나와인들이 날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만 같았다.

 

가쓰야에게는 오키나와에서 장사를 하는 엄마 그리고 두 형과 누나가 있다. 이들과의 대화는 최근 일어난 미군들이 소학교 학생들을 집단 성폭행 한 사건에 초점이 되어 있다. 이 사건으로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시민들의 집단 시위가 일어나고 있지만, 엄마와 두 형은 미군들에게 군용지 대여료를 받아먹고 사는 사람들이 할 행위가 아니라는 비난을 한다. 누나 히토미만 소학생을 성폭행한 미군을 비난하는데 가쓰야만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바로 소학생 시절 누나가 미군에게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히토미는 동생 가쓰야에게 피해가 갈까봐 그 일을 함구하게 하였고 가쓰야는 모른 척 하는 것으로 둘 사이의 비밀이 되어 있었다. 엄마와 두 형제들이 나누는 대화는 아마도 오키나와인들 대부분이 미군정에 갖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일 거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미군들에 의한 성폭행이 거의 일반적인 분위기에서 오키나와인들은 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길들여져 갔던 것인지 가쓰야가 중학교 때부터 접하는 폭력의 수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약에 취해 이미 망가져 버린 마유 역시도 소학교부터 당한 성폭행으로 삶은 이미 재생 불가 상태였다. 마유가 접하는 남자손님은 중학생 딸을 둔 마유학교 선생님이였다. 마유는 선생에게 잔인한 복수를 하고 가쓰야는 폭력을 도와주기까지 한다. 약에 취해 더 이상 매춘을 할 수 없는 상태인 마유를 보며 가쓰야는 처음으로 히가를 피해 도망가기로 하는데 전설의 새인 무지개 새가 사는 얀바루 숲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그곳은 베트남 전쟁 당시 특수무장을 한 군인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상적인 곳이었으며 히가를 피해 숨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미 가쓰야와 마유에게 희망은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가쓰야는 무지개 새를 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폭력에 길들여진 가쓰야는 답답할 정도로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이다. 히가가 가진 힘 앞에서 굴욕적이고 비굴할 정도로 복종하고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들을 촬영하면서도 연민을 가지지만 절대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캐릭터이다. 그러면서도 가라데 유단자이며 가족들에게 충실한 막내 역할을 하는 평범하면서도 훌륭한 인성을 가졌다. 오키나와의 교육이 바른 방식이었다면 절대로 나쁜 길에 들어설 수 없는 건실한 젊은이다. 그런 그가 여성을 사고 팔며 포로노를 찍어주고 히가라는 악당의 편에 선다.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 같은 감정표현조차 할 줄 모르지만, 마유를 만나면서 삶이 조금씩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마유의 무지개 새문신을 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혐오를 품는다. 얀바루 숲에만 사는 무지개 새를 보면 어떤 사람을 살고 어떤 사람은 죽는다는 전설이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무지개 새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이다. 삶이 지옥인 이들에게 무지개 새가 주는 의미는 스스로 삶을 바꿀 수 있는 의지가 전혀 없는 가쓰야와 마유 같은 약자들은 오키나와인에게 신적인 존재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마유의 칼이 가쓰야를 향하자 그는 죽음조차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그래 모두 죽어 없어지면 된다.”

 

무지개 새, 이 책은 가짜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극으로 치닫으며 벼랑 끝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불편할 뿐 아니라 불친절하다. 남성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여성들은 너무 쉽게 짓밟히고 오키나와인은 미군들의 성폭행 사건이 비일비재해도 어린 여자들을 밤에 내보낸 부모들 탓이라며 먹고 살게 해주는 미군들에게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는 말로 미군들을 옹호한다. 가쓰야는 가라데 유단자이면서도 히가라는 절대 권력을 가진 자에게 비굴할 정도로 복종하며 산다. 결국 그 악마가 찾지 못하는 얀바루 숲으로 도망을 선택한다.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자신을 폭행하는 사람에게 감정이 동화되어 폭력을 정당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비이성적인 모습이 오키나와 사람들이 감당하고 있는 역사의 무게이다. 아름다운 섬, 아시아의 하와이, 치유의 명소로 이미지를 덧칠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는 미군들의 폭력으로 집단적 몸살을 앓고 있으며 그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는 깊게 뿌리내려져 있다. 메도루마 슌l의 무지개 새는 어쩌면 일본인들은 절대 열어서는 안되는 판도라 상자일지도 모르겠다. 상자를 연 순간 어느새 튀어나와 오키나와인 사이에 섞여 금단의 악들이 일본을 물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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