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 다시, 희망에 말 걸게 하는 장영희의 문장들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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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랜 기억 속에 영혼의 멘토 같은 분이 한 분 계신다그 분은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여 목발을 짚고 다니셨다그 분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시는데 다른 분을 통해 그분이 고등학교를 다닌 일화를 종종 듣곤 하였다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학교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머님이 업어서 등하교를 시켰는데 겨울에 어머니가 업고 그 길을 오를라치면 같이 등교하는 학생들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지곤 했다는 것이다그 분을 보면 늘 장영희 교수님을 생각하곤 하였다故 장영희 교수에게도 어머니는 곧 사랑과 희망의 상징이었다그녀의 글에 희망이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이들의 보살핌이 자양분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목발을 짚고

눈비를 맞으며 힘겹게 도서관에 다니던 일,

엉덩이에 종기가 날 정도로 꼼짝 않고 책을 읽으며 지새웠던 밤들이

너무나 허무해 죽고 싶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외롭고 힘들어도

논문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을

희망으로 삼고 살아왔는데,

이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었다.

어지러움을 찾고 일어나 침대 발치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창백한 유령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내 속 깊숙이에서

어떤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이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다시 시작할 수 있어.

기껏해야 논문인데 뭐.

그래살아있잖아논문 따위쯤이야.‘


유방암이 척추로 전이가 되어 죽음을 앞두었을 때 장영희 교수는 살아온 기적살아갈 기적을 마지막으로 집필하였다암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희망을 노래하였던 장영희 교수의 글을 울고 웃으며 읽었던 것 같다절망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의 글을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처음으로 고민해 보았던 것 같다장애인이었기에 차별과 싸우는 일암으로 고통 받으며 포기하고 싶었던 나날의 슬픔을 보며 절망과 희망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장애인을 입학을 허용하지 않는 차별을 온몸으로 겪었고 유학을 하였지만 유방암으로 귀국해야만 했던 날그녀는 누구보다 절망하였다그러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일어나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어느새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어 갔다세 번의 암 투병을 하며 마지막까지도 희망의 글을 남긴 그녀의 글은 삶에 대한 애착과 감동으로 얼룩져 있다.

  

두세 달씩 있어야 했던 병원 생활,

상급 학교에 갈 때마다 장애를 이유로

입학시험 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던 학교들.

 

가끔은 나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누구보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의 장벽에 부딪힐 때뜻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아직도 좌절이란 이름을 달고 사는 나를 볼 때절망이 문득문득 고개를 들어 흔들어대곤 한다그러나장영희 교수의 글을 읽으면 내게 주어진 절망이나 고통은 어쩌면 익숙하고도 평화로운 나날에 대한 투정에 불과한 것으로 느껴진다故 장영희 교수가 온몸으로 부딪혀 깨달아야 했던 절망과 고통은 나를 부끄럽게 할 정도의 슬픔이었던 것이다그래서일까이 책을 읽으면서 난 다시 희망을 꿈꾸고자 한다삶은 채우기보다는 비워야 하며 높아지기보다는 철저히 낮아져야만 깨달을 수 있는 진경을 이분의 글을 통해 배운다그녀는 떠나갔어도 그녀가 노래했던 희망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돈다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는 그녀의 희망노래가 넘어진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로 깨달았다.

 

누군가 나로 인해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장영희가 왔다 간 흔적으로

이 세상이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아진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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