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고독
크리스틴 해나 지음, 원은주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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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고독
#서평 #문학


달이 눈부시게 밝은 밤에 거대한 고독의 땅에 서본 적이 있는 가…….“

『나의 아름다운 고독』은 알래스카로 이주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으면서 알래스카의 얼음평원 배경이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19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였던 아빠에게 전사한 친구 보가 알래스카의 집을 유산으로 남기게 되면서 시작된다. 베트남 전쟁당시 포로의 경험은 아버지에게 신경불안 증세를 안겨주었고 알콜 의존증을 키워주었으며 엄마를 폭행하는 비뚤어진 사랑방법을 남겨주었다.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나는 레니의 시선으로 1974년부터 1986년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빠의 병으로 잦은 이사를 하였던 레니의 가족은 알래스카에 가면 모든 고통과 불안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 믿는 아빠의 말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한다. 새 삶을 향한 그들의 꿈에는 비극의 냄새가 베여있었다.

‘알래스카에서는 한 번의 실수만 저지를 수 있다. 두 번째 실수는 곧 죽음이다.”

도착한 날부터 레니의 가족들은 알래스카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본능적으로 체득하였고 총이 없이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환경이라는 걸 배워야 했다. 오두막 외에는 그 어떤 곳도 안전지대는 없었으며 모든 것을 손수 만들어야 하는 환경이란 걸 깨달았다. 알래스카는 문명사회보다는 야생 그 자체였고 생존을 위한 대비를 하지 않으면 죽음이 늘 가까이에 함께 하는 곳이었다. 여름에는 겨울이 오기 전 식량을 비축해야 하였고 겨울에는 언제 돌변할지 모를 자연의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매해 알래스카의 사람들은 사라져 가고 죽어 나갔다. 그런 가운데 레니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빠의 발작이었다. 역시나 알래스카에 와서도 아빠의 공포와 불안은 줄어들지 않았다. 매번 엄마를 폭행하였고 그럴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로 용서를 비는 일이 되풀이 되었다. 아빠의 폭행이 심해질 때마다 엄마와 레니는 도망가려 하지만 엄마는 번번이 아빠를 이해했다. 슬픈 나날이었지만 레니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매슈와의 사랑이 알래스카의 고독으로부터 레니를 해방시켰다. 비가 오는 어느 날 밤, 아빠의 폭행을 피해 도망가던 매슈와 레니는 절벽으로 추락사하게 된다. 레니를 구하기 위해 매슈가 몸을 던진 그 밤은 그들에게 슬프고도 고독한 무수한 날들을 선물로 주었다. 뇌사상태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 매슈를 뒤로 하고 알래스카를 떠나는 레니의 뱃속에는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엄마 코라는 자신을 향한 폭행은 참을 수 있었지만, 딸 레니에게만은 아빠의 폭행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어 했다. 아빠를 엄마가 총으로 쏜 날, 시애틀로 떠나지만 레니에게는 알래스카로 돌아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매슈였다. 엄마가 폐암으로 죽자, 스물 다섯에 미혼모가 된 레니는 다시 알래스카로 돌아온다. 오래 전 그 밤, 아빠가 죽었던 날을 증언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가고 재활치료를 하고 있는 매슈를 찾아가 아들과 재회를 하는 것으로 레니의 알래스카에도 봄이 찾아온다.

1970년대 미국은 여성에게는 남편의 동의가 없으면 신용카드 하나 사용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매 맞고 사는 여성은 한 편으로는 그 시대의 표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70년대 역시도 그러했으니까. 코라는 여성으로서 진취적이고 매력적이었지만 남편의 폭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매 맞는 여성은 법적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며 오히려 약자에게 법은 냉혹하며강한 자의 편이었다. 코라는 딸을 위해 남편의 폭행을 참아야 하는 그 시대의 여성상을 대변한다. 그런 엄마를 보며 자란 레니에게 사랑은 보다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아빠의 폭력에 길들여진 엄마의 사랑보다는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며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터득하였던 것이다. 70년대 알래스카에 이주하였던 레니 가족의 삶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용사이며 전쟁 포로였던 아버지의 정신이 무너지며 일어났던 비극적 생의 연대기이다. 그러나, 동시에 희망의 이야기이다. 아빠를 죽인 엄마의 죽음, 다시 또 찾아가게 된 알래스카에서 매슈와의 재회. 아들과 매슈와 레니의 새로운 삶이 다시 또 희망이란 이름으로 함께 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알래스카가 아름다운 동시에 공포를 품고 있고 그들 삶의 구원자인 동시에 파괴자였듯이 생존하기 위해서 살아남는 법을 먼저 배워야만 하는 곳에서 레니가 배워야 했던 것은 오로지 자신을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문명의 끄트머리,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며 극한으로 몰아대는 자연의 위용 앞에서 고독과 싸워가며 지켜야만 하였던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다. 한 사람이 성장하게 위해서는 많은 자양분을 필요로 한다. 알래스카라는 미지와 야만의 세계에서 레니가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길고 긴 알래스카의 겨울처럼 혹독하고 차가운 고독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었다. 나의 아름다운 고독은 내일을 희망으로 채우기 위해 오늘의 시간을 어떻게든 견뎌내야 함을 말해주는 것 같다. 레니가 그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후, 매슈와의 사랑을 완성할 수 있었듯이 우리에게 고독의 시간은 완전해지기 위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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