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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달그락 - 하루를 요모조모 마음껏 요리하는 법 ㅣ 월간 정여울
정여울 지음 / 천년의상상 / 2018년 5월
평점 :
『달그락 달그락』은 월간정여울의 다섯 번째 책이다. 의성어가 표현해주는 책의 오마주가 참 좋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 일상은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가득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는 포트에서도 커피와 스푼이 만났을 때, 차가 지나가는 소리, 바람이 불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 모두 것들이 달그락 달그락 거리며 존재를 빛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조차 달그락 거리며 즐거운 소리를 내는 하루의 시작, 음악은 추억을 타고 그리움으로 심장을 물들인다. 사물과 나와의 시간, 그 사이를 채우는 달그락 소리. 『달그락 달그락』 에는 그런 사소한 일상의 소중한 반짝임을 담았다.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들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치유’의 언어와 에두아르 뷔아르의 그림과 함께 한다.
고요할 것만 같았던 일상은 흔들리기도 한다. 이때 달그락 달그락 거리던 사물들의 소리는 덜컹덜컹거리거나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어지기도 한다. 멀쩡하던 커피 포트는 고장나기도 하고 커피잔이 깨어지기도 하는 일이 발생하듯이 삶 역시도 예고 없이 일그러지기도 한다. 일상이 일그러질 때, 당황하지 않고 보낼 수만 있는 사람은 내가 알기론 많지 않다. 나 역시도 그러니까.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인간관계가 갑자기 돌변하여 가시밭길을 걷는 고통스런 관계로 돌변하기도 하고 영원할 것 같은 우정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미움의 가시가 되어 심장을 찔러댄다.
영화 『데몰리션』에는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가 갑자기 고통사고로 떠나버리자, 모든 것을 때려부수는 남자가 나온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일상이 아내의 사고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아내가 죽은 병실 앞에서 고장 난 자판기 앞에 한참을 서있다. 그리고는 자판기 회사에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자판기가 내 돈을 먹었는데 뱉어내질 않는다고. 그런데 어느 새 자판기 회사에 보내는 편지는 일기가 되어 갔고, 그는 고장 난 자판기가 마치 자신의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아내가 죽던 날, 냉장고에서 물이 샌다고 불평하던 아내의 말을 기억하고는 냉장고를 분해하기 시작한다. 냉장고를 고치지 않아서 아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컴퓨터와 문, 커피머신 까지 모든 것을 분해해 버리지만 결국은 모든 것들은 되돌리지 못한다. 해체된 기계부품들을 보며 아내와의 모든 추억들을 해머로 부셔버리는 남자. 물건이 고장 나면 고치거나 부수거나 새로 사면 되지만, 한 번 망가진 삶은 고칠 수도 부술 수도 없다. 사물과 삶을 동일시하였지만, 결국 남자는 깨닫는다. 자신의 삶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나를 치유하는 길 뿐이라는 것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한 남자가 달그락 거리던 인생이 와장창 깨어졌을 때 전속력으로 도망쳐 숨으려 했던 것은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것에 있었다. 그 영화를 보면서 고통 앞에서 달아나려 하는 것은 누구나 같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를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의 일그러짐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여울은 말한다. 그것이 아무리 견디기 힘든 고통일지라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 사람만 없었어도 내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라면서 불행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분명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음에도 용감해질 기회, 진정한 나 자신이 될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 거기서 우리의 슬픔이 시작된 것이다. 타인이 내 삶을 쥐락펴락한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둔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를 보듬고 쓰다듬기 시작해야만 치유는 가능하다. “세상과의 싸움이 가능해진 상태, 정신분석은 그것을 치유라고 부릅니다.” 치유는 ‘행복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라기보다는 ‘행복을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상태에 가깝다. ‘행복한 사람’이 되게 만든다기보다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분석의 진정한 목적이다. 착한 척, 기쁜 척, 행복한 척하지 않기. 바로 그 솔직한 받아들임에서 진정한 치유는 시작된다.고....
사물의 존재는 달그락이지만 삶은 소소함이 모여 이어진다. 냉장고를 고쳐주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던 죽은 아내의 말이 시간이 흘러서야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라는 말이었음을 알게 된 남자는 그제서야 자신의 삶을 고장 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언젠가 한 번은, 누구나 한 번은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 도망가지 않고 온전히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 『달그락 달그락』은 아주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채워주고 있는지 알려주는 치유의 에세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