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정말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던 거야! 꽃의 말이 아니라 하는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했어. 그 꽃은 나에게 향기를 풍겨주고 또 환하게 웃어주었어. 결코 달아나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그 가련한 꾀 뒤에 숨은 따뜻한 마음을 보았어야 하는 건데. , 꽃들이란 얼마나 모순된 존재들인지! 하지만 그를 제대로 사랑하기에는 그때 난 어렸던 거야.

-쌩떽쥐베리 어린 왕자

 

어린 왕자는 장미의 끝없는 허영심과 센 척에 기가 질려 장미로부터 도망치고 말았다. 우주를 떠돌던 작은 씨앗이 어린 왕자의 소행성에 뿌리를 내려 태어난 장미, 그녀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웠지만, 어린 왕자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어린 왕자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둥근 덮개를 씌워주려 하자 장미는 너의 보호 따윈 필요 없다는 듯 새침하게 대꾸한다. “그 유리 덮게는 내려놔. 이젠 필요 없어.” 바람이 불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하는 어린 왕자에게, 장미는 허세를 부린다. “감기가 심한 것도 아닌데 뭐 ……. 시원한 비바람은 오히려 몸에 좋을 거야. 나는 꽃이잖아.” 그럼 벌레가 모여들면 어찌하냐고 걱정하는 어린 왕자에게, 장미는 심지어 어장 관리를 한다. “나비를 만나고 싶으면 쐐기벌레 두세 마리쯤이야 견뎌내야지 뭐. 나비는 무척 예쁘다지? 나비 말고 또 누가 나를 찾아주겠어? 너는 멀리 가버릴 테고 짐승들은 걱정 안해. 나도 내 발톱이 있거든.”

 

-월간정여울와르르중에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말처럼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나 진화론적으로든 다른 생명체인 것은 확실하다. 어린 왕자에게 꽃 사이 언어에서도 이런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어린 왕자는 꽃을 떠났다. 꽃이 어린 왕자의 호의를 계속 거부했던 언어에는 사랑의 반어법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꽃을 떠나고 나서야 어린 왕자가 그땐 난 어렸던 것야.’로 자조하는 것처럼 서로의 언어가 일치할 때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다. 주간정여울의 어린왕자 이야기를 읽으면서 영화 원데이의 엠마와 덱스터가 생각이 났다. 엠마와 덱스터는 서로 다른 언어로 사랑을 말한다. 20년을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만날 때마다 서로를 향한 사랑의 언어는 늘 빗나가기만 한다. 방황을 일삼는 덱스터와 달리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성실하게 한 발 한 발 내디어가는 엠마는 서로 다른 세계의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였다. 어긋나기만 하였던 이십 년의 밀당은 단 하루만에 사랑으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엠마의 교통사고로 둘의 세계는 와르르 무너진다. 서로의 몸짓이, 언어가 사랑이었다는 것을 20년만에 깨달았던 덱스터의 뒤늦은 후회는 어린 왕자가 꽃을 떠나왔을 때의 심정처럼 읽혀진다


바람이 불어도 벌레가 꼬여도 나비가 찾아와도 나에게 어린 왕자 네가 있는 한,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랑의 반어법이라는 것을 어린 왕자는 그땐 어렸어.’라는 말로 뒤늦은 후회를 한다. 덱스터 역시도 엠마가 오매불망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는 것을 엠마의 죽음 후에야 깨달았다. 어린 왕자가 떠났을 때 꽃은 네가 없어도 난 끄덕없어.’라며 센척을 하고 있었지만 실은 자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어린 왕자가 알게 될까봐 두려워서였다는 것을. 어린 왕자는 이별 후에 알게 되었을까. 사랑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지는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나의 언어로만 그를 이해하려고 할 때 사랑의 세계는 와르르 무너진다. 사랑은 마음에 담긴 그의 반어법조차 읽어낼 수 있는 몸짓의 언어가 어쩌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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