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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불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3
피에르 드리외라로셸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5월
평점 :
소설보다 작가의 삶에 더 흥미가 생길 때가 있다. 『도깨비불』의 저자 피에르 드리외라르셀의 생이 그러했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에 적극참여하였던 그는 파시즘을 선택하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 소식을 듣고 이내 자살하였던 드리외는 독일이 프랑스 점령당시 파시즘의 선봉대였다. 자신의 소설과 삶을 정치적 실현무대로 삼았지만, 결국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30년의 전쟁에 온몸을 던졌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불운한 작가로서, 그의 도깨비불은 자본주의를 폭력으로 누르며 세상을 바꾸려 하였던 망상의 불꽃이었다.
도깨비불의 주인공 알랭은 1920년대 전후시기의 젊은 남성이다. 마약중독자로 요양소에 머물러 있으며 자유분방한 여성편력을 과시하며 사귀는 여성들에게 용돈을 받아 살아가고 있다. 사교계에서 마약과 기행으로 악명을 떨치며 알랭은 여성들의 돈으로 생활하는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자본주의를 경멸하여 자신이 정당한 대가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욕구는 없지만 여성들에게 돈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파시스트로서 유대인 여성을 증오하지만 유대인 여성과 사랑에 빠지며 정신보다 육체적인 활동을 더 중요시하지만 정작 자신은 마약중독자로 육체를 경멸하는 모순과 역설로 점철된 삶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본주의의 물결이 전쟁이후의 삶을 모두 바꾸어 놓았다. 미국 여자와의 하룻밤은 자본주의의 단맛과 같았고 결혼과 함께 안락한 부르주아 생활을 하는 뒤부르가 그러했다. 알랭은 요양소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자본주의가 휩쓸고 간 삶의 방식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마약을 계속하려 하고 생활을 위해 여성들에게 기생하려 하는 속물적 사고를 숨기지 않는다.
『도깨비불』을 자전적 소설이다. 드리외의 작품 가운데 정치적인 성향이 가장 옅은 작품이라 하는데 이 책은 드리외가 겪는 정신적인 혼란이나 갈등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인 것 같았다. ‘전쟁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데에 광기가 더해지면 파시즘이 된다.’ 전후 프랑스사회에 만연하였던 광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방황이 차갑게 반짝이는 파시즘의 섬광에 물들어가며 허무와 퇴폐주의에 물들어가는 모습을 알랭을 통해 볼 수 있다. 드리외의 도깨비불 파시즘, 그것은 남성의 광기였으며 퇴역 군인이자 작가로서의 망상의 불꽃이었다. 소설의 알랭처럼 드리외 역시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파시스트로 생은 마치 실험이다. 드리외가 알랭이라는 주인공을 소설이라는 실험대에 올려놓으며 허무와 퇴폐의 분신을 만들었듯이 드리외의 삶은 파시즘으로 인해 온갖 모순과 악행으로 물든 실험적인 무대였다. 파시즘의 몰락과 더불어 자신의 정치생명도 끝났다는 것을 깨달으며 자신에게 걸맞는 죽음의 형식을 고민하며 얻은 것이 단단하고 강철로 만든 사물인 권총과 부딪힘이었다.
“망명, 은신, 수감과 같은 불필요한 모욕을 당하느니 적당한 시기에 자살하리라.”
내 마음의 삶은 그리 빠른 속도로 흐르지 않아서 속도를 올렸지. 모퉁이가 흐느적거려서 똑바로 세웠어. 나는 남자야. 내 생명의 주인이야. 그걸 증명하겠어.-p164
무슨 이유로 알랭은 삶을 지속하는가? 이미 산전수전 다 겪지 않았나? 그리고 자살하기를 원한다면 노동에서 풀려난 온갖 욕망이 도심에 전속력으로 몸을 던져 가공할 만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저녁 일곱시 혹은 여덟시가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그러나 아니다. 삶은 습관에 불과하며, 습관이 당신을 붙잡고 있는 한 삶도 당신을 붙잡고 있다. -p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