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나는 이상적인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IT회사의 설립자인 남자는 재혼을 한 뒤에야 자식을 얻었다. 그는 아이의 알레르기를 치료하기 위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주식을 양도하고 경영에서 물러났다. 그는 일하지 않고 아내와 아들, 개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 삶을 다시 배워야 했다. 그들은 후원에 향초들을 가꿨는데 모두 아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또한 집 지하실에 음향기기와 프로젝터 등을 설치해 남자의 로망을 실현했다. 남자는 아들이 여덟 살이 되던 생일에 직접 작은 나무집을 지어 선물하기도 했다. 산으로 이사한 뒤 남자는 수없이 바뀌는 산속 구름과 안개를 보며 문득 촬영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그는 구식카메라를 찾아내 꽃이며 새, 벌레와 물고기는 물론이고 자연과 가족, 애완동물 등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랐다. 과거에 심장 수술을 했던 그에게 한 친구는 몸을 챙겨야 한다고 권했지만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는 내가 결정하지 못해. 하지만 어떻게 살지는 내가 정할 수 있어.”

한랭 기단이 몰려온다는 보도가 있던 어느 날 아침, 그는 개를 산책시킨 뒤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려고 준비하며 창문 앞에 서서 커피를 마시다 갑자기 쓰러져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페이스북에 그의 부고를 알리며 ‘안타까운 소식’이라든지 ‘청천벽력’ 같은 말 대신 지극히 평화로운 글을 남겼다.

‘남편은 커피 한 잔을 다 마신 뒤 우리 가족의 사랑과 영원한 그리움을 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부고 소식이 뜻밖이었지만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원하는 삶을 살다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명을 완성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막 쉰다섯 살 생일을 맞았고 겨우 아홉 살 난 아들이 있었지만, 그의 친구들은 페이스북에 부러움이 묻어나는 말을 남기며 그와 이별했다. 그는 너무 늦지 않은 때에 자신이 원하는 생활방식을 선택했다고 말이다.

사람은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많은 것들을 미뤄 왔음을 깨닫는다. 꼭 해야 했던 일, 하고 싶었던 말,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 모두 미뤄왔다. 때로는 스스로 움츠러들어서, 혹은 먼저 배려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펜과 종이를 꺼내 당신이 인생 전반전 동안 미뤄왔던 것들을 일일이 기록해보라. 미뤄왔던 것이 많을수록 남을 위해 희생했던 것이 많고, 스스로 손해 본 것이 많았다는 뜻이다. 이미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

지난 주 토요일, 친구아내의 부고 소식으로 부산 장례식에 다녀왔다.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고 4개월만의 죽음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떠났을 언니의 슬픔이 부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장례식을 가는 동안, 그리고 오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점점 익숙해져가는 나이라는 사실을 통감하였다.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하는 이유는 완벽한 타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잘 들어주고 화를 내지 않으며 나의 이야기만 해도 싫은 내색을 절대 하지 않는 ‘완벽한 타인’들. 매일의 일상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완벽한 타인’인 페북 친구들이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하여 나를 위로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도 내가 페이스북을 시작하였던 것은 완벽한 타인보다는 기록의 차원이 더 컸다. 매일매일 다른 일상,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그 안에 담겨져 오로지 나만의 클리셰가 만들어져 있었다. 『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에서 중병을 앓던 사람이 선택한 삶은 병원이 아니라 ‘이상적인 삶’에 대한 기록이다. 자신만의 클리셰를 이루고 떠나는 것. 이제까지 미뤄두고 용기 내지 못했던 삶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룬 것이었다. 중년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인 두려움으로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떠나간다. 나의 이야기를 쓰기에 중년은 아주 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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