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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 인지 과학이 밝힌 진보-보수 프레임의 실체
조지 레이코프 & 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음, 나익주 옮김 / 생각정원 / 2018년 3월
평점 :
좌우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스스로를 진보나 보수로 정치색을 단정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음을 볼 수 있다. 이들은 희안하게도 어떤 정책적인 문제에 닥치면 진보나 보수의 노선을 충실히 따라간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이나 무상복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또한 반대를 하며 세월호에 대한 거부감을 보인다. 반대로 복지의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을 찬성하는 이들은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닌다. 이런 첨예한 갈등은 엉뚱한 곳에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곤 하는데 평창올림픽에서 한 선수가 세월호 리본을 착용했다고 하여 반대 진영의 사람들로부터 여론의 뭇매를 맡기도 했다. 점점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한 번쯤은 고민해 보아야만 할 문제가 바로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이 아닐까한다.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선긋기에 대하여 인지학적 연구를 꾸준히 해왔던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통해 이념이라는 것은 우리의 프레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에는 프레임의 문제에서 구체적으로 전혀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갖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있다. 프레임 안에서 보수와 진보는 왜 극단적이며 대립적인 입장이 되는 것일까?에 대하여 레이코프와 웨흘링은 정치적인 ‘은유’에서 이 두 개념이 갈라진다고 한다.
저자들은 인간의 사고에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가 의식적이라 가정한다는 것, 그러나 대부분의 98퍼센트는 완전히 무의식적사고를 한다.
둘째,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합리성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신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신체와 뇌의 물리적 실재에 의존한다.
셋째, 많은 사람들은 추론이 보편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사유한다 믿는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의 보편적인 추론 방식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세계에 대해 서로 다르게 사유한다. 저마다의 문화적 경험과 개인적 경험을 통해 마음속에서 변별적인 구조를 습득해왔기 때문이다.
넷째, 사람들은 인간이 축자적으로 -세계 내에 존재하는 그대로-사물을 이해할 수 있으며, 사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은유를 통해 사유하고 말한다는 사실. 하지만 이 사실을 거의 의식조차 못 하고 산다. 예컨대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은유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쉽게 추론하거나 말할 수 없다는 함정이 있다.
은유의 표현은 정치적 연설이나 해석에서 선호되고 있다. 이 은유가 지닌 힘은 매우 조작적이고 설득적인 힘을 실을 수 있기에 혹자들은 모든 은유에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들은 ‘은유’가 어떻게 정치적 사고와 정치적 행위를 정의하는지, 어떻게 실제로 국가 간 전쟁을 초래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인간 인지의 기본적인 기제를 살펴보아야 하며 인간이 기본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은유로 이해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가령, 자유와 정의, 공정성과 같은 개념이 이 은유를 통해 우리의 사고를 정립해가는 과정을 유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의 개인과 국가의 관계적 은유가 ‘국가는 가정’이라는 개념이다. 국가는 가정이라 규정할 때 국민은 자녀가 되고 정부나 정부의 수장은 부모가 된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태도에서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이 나누어지는데 이때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이 보수적 사고를 자애로운 아버지 가정 모형이 진보라는 정치적 차이를 만든다고 한다. 이런 양육과정이 뇌신경 회로의 작동 방식에 영향을 주며 길들여진 은유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이다.
반면, 진보나 보수의 그 중간개념,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모형의 사람들을 ‘이중개념주의(biconceptualism)’ 소유자들로 정의하며, 이 이중개념주의를 지닌 사람이 진보와 보수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선거의 승패는 사실 이중개념을 지닌 이들에게 있다. 스스로를 중도라 생각하는 이중개념 소유자들도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
상당히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었다. 신문, 뉴스, 정치, 연예, 경제, 모든 부분에서 진보와 보수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진보와 보수로 단정 지으며 모든 사람들을 이분법의 잣대로만 판단하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도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보수와 진보가 은유로 만들어진 프레임에 갇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같이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서로에게 드리워진 은유의 장막이 걷혀야만 맨얼굴이 드러난다. 그때의 맨얼굴이 진짜 정치다.
*책속에서
진리나 지식에 관한 한 은유는 중대한 퇴행으로 봐야 한다. 이 퇴행은 언어 자체의 퇴행이거나 은유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퇴행이다-p043
도덕성은 정치의 아주 중요한 동력입니다. 더욱이 도덕성은 추상적인 개념, 즉 우리 마음이 은유적 사상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개념이지요.-p063
“보수주의를 뜻하는 conservatism은 언어적 기원이 ‘손대지 않고 계속 그대로 두고 보존하거나 유지하는 것’으로 번역되는 라틴어 낱말 conservare에서 나왔다. 정치적 보수주의는 전통적인 가치와 사회적 규범을 보호한다는 개념에 근거한다. 반면에 진보주의는 개념적으로 사회의 진보와 변화를 향한 긍정적 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p087
보수적인 정책이 범죄자에게 ‘더 엄격한’ 경향이 있고 진보적인 정책이 사회적 취약 계층에게 ‘더 친절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p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