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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의 심리학 - 속이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의 심리 게임
마리아 코니코바 지음, 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의 이야기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보이스피싱은 순진한 사람들만 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당해보니 누구나 당하는 것이 바로 ‘사기’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순진하거나 바보스러운 것과 상관없이 일단 사기꾼의 목표물로 선정이 되면 덫에 빠진 것처럼 속수무책 당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상대는 이미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맑은 물 속의 물고기처럼 훤히 꿰고 있을 테니까.
『뒤통수의 심리학』은 사기를 당하는 사람과 사기 치는 사람의 심리를 낱낱이 밝혀준다. 사기는 인간 심리의 깊은 탐구로 인한 것이기에 인간의 심리에 대한 연구가 먼저라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사기꾼은 목표를 정하고, 일단 목표물이 선정되고 나면 그 목표물의 욕구를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공감과 신뢰를 토대로 하는 친밀함을 쌓는다. 이러한 과정을 겪고 나면 목표물이 된 상대는 모든 걸 빼앗기고 나서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각하지 못한다고 한다.
책의 사례를 보면 우연히 길을 지나가 ‘친절하고 다정해 보이는 매력적인 30대 여성’인 실비아라는 여자를 데브라가 만난 후, 순식간에 2만 7천달러의 거금을 모두 주어버린 황당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기를 당했지만, 사기 당한 순간은 그야말로 찰나에 이루어졌다. 게다가 실비아는 데브라의 손바닥을 보고는 잠깐 얼굴을 찌푸리면서 ‘ 인생이 잘 풀리길 원한다면 1,000달러를 지불하라’는 말을 했을 뿐이다. 전생의 불행한 업보를 덜어버리려면 물질에 대한 집착을 없애야 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전재산을 처음 만난 실비아에게 주어버린 것이다. 진실해 보이는 실비아의 말에 데브라가 넘어간 것은 데브라의 현 상태의 불안도 한 몫 했다. 이혼을 한 후였고 아이는 셋이나 되었다, 이사를 앞두고 거액의 대출금을 받은 데브라에게 누군가의 방향제시는 무척이나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처음 만난 여자의 말을 듣고 그런 거금을 보낸다는 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나중에 정신을 차린 후 연락을 하자 실비아는 돈을 돌려줄 수 없다는 말만 했다. 결국 데브라는 실비아를 신고했다. 그녀는 전문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인간 심리에 대한 저자의 관찰력으로 쓰여 진 심리학은 읽는 재미가 있다. 거짓인줄 알지만 속아 넘어가게 되는 ‘거짓 친숙함’이나 ‘감정 휴리스틱(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판단을 할 경우 경험으로 형성된 감정에 따라 평가를 다르게 하는 것)’ 에 의한 잘못된 결정, 처음 사기를 당한 상대가 두 번째도 당하는 이유를 ‘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란 마치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한 일을 쉽게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현상으로 '미완성효과'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자신과 가족들의 미래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희망적인 견해를 가진다는 '낙관적 편향 (Optimism Bias)'으로 인해 우리는 사기의 덫에 걸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너무도 충실한 이유이다.
영화 『원라인』에서 보면 대학생 민재가 사기범이 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나온다. 어리숙하고 순수한 민재가 사기꾼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영민한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타인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 무식과 폭력으로 사기 한 번 못 친 조폭형님을 자신의 보디가드로 삼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신뢰와 거짓 친숙함을 무기로 순식간에 최고위치까지 이르는 모습은 어쩌면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영화 속 민재와 같이 착하고 순한, 매력적인 모습이 사기꾼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오버랩 되었다. 그런 거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프레임에 속고 있으며 또한 얼마나 많은 모순 속에 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사기꾼들이 팔고 있는 것은 어쩌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거짓된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보다 더 나은 꿈만이 현실을 견디게 해준다는 마약 같은 희망말이다.
그나마 나은 사기꾼이든 최악의 사기꾼이든, 그들은 우리 삶에 의미를 던져준다. 우리가 그들에게 넘어가는 것은 그들 말대로 이뤄지기만 하면 삶이 한결 나아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목적의식을, 가치 있는 삶에 대한 환상을, 인생의 방향성을 갖게 해준다.
결국엔 그것이 바로 믿음이 발휘하는 진정한 힘이다. 믿음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계속해서 의심을 품고, 신뢰를 주는 데 인색하고, 세상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길 끊임없이 거부하면, 우리는 절망 속에 살아가게 된다. (중략)
결국 사기꾼이 우리에게 파는 것은 희망이다. 더 행복해지고, 더 건강해지고, 더 부자가 되고, 더 사랑받고, 더 인정받고, 더 멋진 사람이 되고, 더 젊어지고, 더 똑똑해지고, 더 깊은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나보다 훨씬 더 낫고 멋진 존재가 돼 있을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p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