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역사와 현실 - 다시 보고, 사색하기 문화교양총서 1
송찬섭 외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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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현실의 창窓이다.

롤랑바르트의 자서전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현재를 기록하라, 그러면 당신은 이미 작가다.’ 라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현재가 모여 삶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고 현재에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 미래가 색깔이 정해진다. 현재라는 시간은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가 서로 씨줄과 날줄이 되어 촘촘한 그물망으로 직조된다. 그렇기에 현재의 ‘나’라는 현주소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인문학적 사고가 요구된다. ‘영화’라는 문화 콘텐츠는 대중에게 가장 친숙하게 다가가 현실을 깨우쳐주는 인문학적 안목을 키워주는데 가장 인기 있는 장르다. 책이 문자로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케 하며 삶의 깊이에 다가가게 해 주는 것처럼 영화산업의 비약적인 발달은 책이 해주었던 역할을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인문학’이라는 키워드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은 이제 영화가 영상만이 아닌 책이 지녔던 인문의 가치까지 담아 낼 수 있도록 성장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역사와 현실』 이 책은 방송대 문화교양학과에서 간행하는 총서 제1권에 해당한다. 문화교양학과 교수님들의 책으로 영화와 역사, 철학, 신화를 공부했던 나에게는 무척이나 친숙하게 다가왔다. 교수님들이 영화에서 건져 올리는 삶의 진경들은 과연 어떤 것들 일까하는 호기심에 읽기 시작한 책인데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줄거리 요약과 시간과 공간적 배경 설명, 역사적 의의가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기억에 남는 인생영화 열편을 섭렵하고 난 후의 뿌듯함과 감동이 밀려왔다. 책에 실려 있는 영화이야기는 『레 미제라블』 , 『고요한 돈강』, 『토지와 자유』, 『타인의 삶』, 『굿나잇 앤 굿럭』, 『오피셜 스토리』, 『카게무샤』, 『귀신이 온다』, 『우리학교』, 『태백산맥』 등이 있다. 여기서 본 영화는 『레 미제라블』 과 『굿나잇 앤 굿럭』, 『귀신이 온다』, 『태백산맥』 뿐이었지만, 영화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부분들과 영화의 기술적 부분이 지닌 효과와 역사책에서 미처 배우지 못했던 시대의 아픈 기억들, 그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서는 민초들의 삶까지 핍진에 가까운 날 것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 


그 가운데 『레 미제라블』 은 보면서 정말 많이 울었던 영화다. 말 그대로 레 미제라블은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빅토르 위고의 원작에 가장 충실한 영화로 장발장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용서란 무엇인가를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 영화를 통해 현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와 명예, 권력과 같은 것보다 한 사람에 대한 진실된 마음만이 절망의 시대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만큼 장발장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내게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우쳐주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때의 감동을 떠올려보며 장발장이라는 인물만이 아닌 전체적인 캐릭터들에게서 읽어내는 영화의 진면목들이 눈으로는 글자를, 머릿속에서는 영상을 그려가며 읽었다.  아니 어쩌면 그 영화가 지닌 의의를 다시 책을 통해 반추해 가며 깨닫는 현재의 핍진은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사는 우리들의 삶을 떠올리게 했고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상기하기도 하였다. 가난에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던 세 모녀 사건처럼 비참한 사람들, 레 미제라블은 우리의 현실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대기업 패밀리들의 갑질 논란으로 촛불을 들기 시작한 이들과 악질 기업의 횡포로 자살을 선택한 40대 가장이나 하루 종일 사발면 하나를 먹으며 스크린 도어 작업을 하다 사망한 20대 청년은 현대판의 레 미제라블이다. 부와 권력으로 편제된 사회에서 기계적으로 적용되고 해석되는 권력과 법률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무자비하고 가혹할 뿐이라는 것을,  공장에서 일하다 쫓겨나 아이를 위해 창녀가 된 팡틴의 삶이 그러했고 가난한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쳐 먹은 것이 평생을 도망자로 만들었듯이 사회의 권력과 법률이 작동하는 매커니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공정을 추구하는 권력의 상징자 자베르가 자신이 권력자의 도구이며 하수인에 불과한 현실을 깨닫고 자살을 선택하였던 것은 미처 자각하지 못하였던 민낯의 추악함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다. 태어나자마자 씌워진 사회적 페르소나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에 가장 가까운 캐릭터가 바로 자베르가 아닐까. 현대의 부조리와 모순에서 자신을 잃은 채로 살아가며 기득권들의 권력과 법률에 이용당하며 체제의 수단이 되어 살고 있는 수많은 자베르들이 깨어나야 비참함을 벗어날 수 있다. 


『타인의 삶』 역시도 현재의 부조리와 모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레 미제라블의 비참한 사람들보다 우리의 현재를 더 투명하게 반추하는 영화다. 베를린 장벽이 부서지기 전의 독일의 실상을 보여주는 영화는 통일 직전의 사회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통일을 앞둔 우리나라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동독의 국가안전부에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신념으로 똘똘 뭉쳐있던 비즐러 대위가 예술인들을 감시하게 되면서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장면은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의 자각과는 다른 것이었다. 자베르가 지녔던 정의에 대한 신념만큼 비즐러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신념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며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는 예술인들을 통해 잊고 있었던 인간성을 서서히 회복하게 되면서 보여주는 비즐러의 모습은 본연의 자아를 찾게 된 이의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장발장을 구속하는 것만이 정의인줄 알았던 자베르가 장발장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되자 권력을 향한 자신의 욕망이 얼마나 추한 모습인지를 깨달은 뼈아픈 자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비즐러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사랑과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예술인을 통해 가장 인간다운 삶에 대한 회복을 꿈꾸며 자신 본연의 모습을 찾아간다. 자신의 현재를 점검하는 과정은 페르소나와 허상으로 가득한 삶에서 불순물을 걸러내 민낯의 참나를찾는 필터의 과정이다.  


현재를 자각한다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민낯의 나를 발견하는 일은 때론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현재의 나와 타인이 보는 시선은 다를 수도 있고 그 다름에서 오는 괴리감은 고통이 되기도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 같지만 사실 현재라는 시간 안에는 수많은 모순과 부조리가 도사리고 있다. 현재의 모순과 부조리까지 이해하고 수용하며 세상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과정을 겪어야만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뼈아픈 자각이 있어야만 민낯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를 얼마만큼이나 이해하고 있을까? 


그림자 무사를 의미하는 영화 『카게무사』는 우리나라 『왕이 된 남자, 광해』와 유사하다. 영주가 죽자 영주와 가장 닮은 무사가 영주의 역할을 한다는 설정인데 허상과 현실의 연결을 카게무사라는 그림자 무사가 담당하고 있다. 허상이 현실을 지배하는 가상의 세상은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숨긴 진실을 들추어내어 준다. 구로사와 감독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부가와가 아닌 이름도 성도 없는 무명의 무사가 허상위에 직조해가는 현실의 무대를 통해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신랄하게 고발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역사를 대놓고 조작하고 있는 중국의 동북아공정이나 일본인들이 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며 위안부를 창녀로 왜곡하고 부정하고 있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는 이러한 현실의 왜곡된 역사와 허상이 본질을 어떻게 날조하고 있는지를 돌이켜보게 한다. 장자의 ‘호접몽’처럼 잠에서 깨고 나니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의 현실은 끊임없는 의심과 철학적 사색이 바탕이 되어야만 삶의 깊이에 다가갈 수 있다. 현재의 상황은 겉으로 보는 것과 실재의 본질은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재라는 씨줄과 가상 세계라는 날줄이 만나 직조해 만들어내는 영화라는 이야기는 현재라는 본질에 다다르게 하는 또 다른 창이다. 현재를 기록하는 한, 우리는 모두 작가라는 롤랑바르트의 말처럼 현재를 이해하는 한, 풍요로운 삶을 보낼 수 있으며 삶의 본질에 다가가게 한다. 그 점에서  『영화 속 역사와 현실』은 우리의 민낯을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인문학이라는 창窓으로 읽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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