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전3권 세트 - 한국만화대표선
박흥용 지음 / 바다그림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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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양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서자 출신인 견자는 이름 그대로 마을에서 개새끼와 동급으로 취급 받으며 자라왔다. 어느 날 살인 누명으로 관아에 잡혀 모진 고문을 억울하게 받은 견자. 자신의 신분적 한계에 대한 컴플렉스가 극에 달하게 된다. 그 때 견자 앞에 나타난 떠돌이 맹인 침술사 황정학 노인. 자신의 신분적 한계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던 견자는 황정학 노인을 따라 조선 유랑길에 오른다. 어느 날 우연히 황정학 노인이 검의 달인임을 알게 된 견자는 그 순간부터 황정학 노인을 스승으로 섬긴다. 이제부터 견자는 검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한편, 미야모토 마을의 다케조. 그의 아버지는 검술의 달인. 오로지 천하무적이란 화두에 몰두해온 아버지의 강압적 그늘 속에서 성장한 다케조는 늘 아버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14세 때 처음으로 사무라이와의 결투에서 이겼지만 아버지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엔 역부족.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떨쳐 버리기 위해 전쟁터로 나간 다케조. 전쟁속에서 친구 마타하치의 목숨을 구해주지만 마타하치는 여자를 사이에 둔 질투 때문에 오히려 다케조를 배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케조는 마타하치의 생존 소식을 그의 어머니에게 전하기 위해 다시 마을로 돌아간다. 그러나 친구를 전쟁터에 버리고 자기 혼자 살아 돌아온 비겁한 악귀란 누명만 쓰게 오히려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게 된다. 결국 사무라이들에게 잡힌 다케조. 그 때 다케조 앞에 나타나 다케조를 구해주는 다꾸앙 스님. 다케조는 그 후 이름을 미야모토 무사시(미야모토 마을의 무사)라 바꾸고 천하무적이 되기 위해 검술 수련에 몰두한다.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과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배가본드>는 이렇게 트라우마를 간직한 남자들의 거듭나기 과정을 로드무비 형식을 빌어 이들의 여정을 보여준다. 각자들의 검이 추구하는 궁극의 길은 서로 같으면서 다르다. 마치 조선 건축과 일본 건축의 차이처럼 견자의 칼은 자유 분방하나 무사시의 칼은 빈틈이 없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결국 제목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한계를 극복한 견자의 이야기임에 반해 <배가본드>는 이노우에 작가의 전작 <슬램덩크>에서 처럼 강자가 되기 위해 단계적으로 계속 자신을 연마하는 플롯을 선택한다. 즉 <배가본드>는 자신을 극도의 한계 상황에 내던져 놓고 그 상황을 극복하는 것을 일종의 성장으로 보고 있는 일본 만화 저변에 깔린 정서와 맥을 같이 한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나 정서적 다름의 느낌을 맛보고 싶다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과 <배가본드>를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런데 견자와 무사시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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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의 힘 - 커피가 병을 예방한다
오카 기타로 지음, 이윤숙 옮김 / 시금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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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커피는 뉴스의 단골 아이템이다. 거의 매일 또는 하루 걸러 커피 관련 뉴스가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그만큼 커피는 요즘 시대 대중적인 아이템이다. 특히 커피와 건강의 상관성에 관련된 뉴스는 민감하게 반응들이 쏟아진다. 왜냐하면 어제는 커피가 몸에 좋다고 나왔다가 오늘은 또 몸에 나쁘다고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되는 걸까?

오늘 우리는 이러한 논쟁에 방점을 찍을 한 권의 책을 만날 것이다. <커피 한잔의 힘>이란 책이 바로 그것인데 <커피 한잔의 약리학>이란 제목으로 2007년 일본에서 출간된 것이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이 책의 저자 오카 기타로씨는 이른바 일본의 엘리트 코스를 제대로 밟은 약사이자 약학박사로 예방 의학 측면에서 커피의 효능을 약학적으로 접근하여 분석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마냥 전문적이고 지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류 문명사에서 커피가 발견되고 음용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약(藥)'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필두로 재미있는 커피 이야기로 일단 분위기를 돋군다. 그리고 2부격인 '커피 마시기의 이로움' 장에서 본격적으로 커피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증명해나간다.

불과 50년 전만해도 커피가 일본의 공식 문서인 '약전'에 까지 올라와있을 정도로 약용 작물로 분류가 되었다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커피를 약학적으로 접근한다. 커피는 파킨슨병에 걸릴 확률을 적게 만들어주며, 당뇨병도 예방하며 간경변증과 간암 마저 발병률을 최소화한다고 한다. 또한 내장지방과 고지혈증에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어 성인병(생활습관병) 예방에 커피가 놀라울 정도로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단, 이 책에서 언급한 커피는 로스팅한 신선한 원두 커피에 한정되어 있으며 심지어 로스팅을 통해 원하는 약리적 성분을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1인의 입장으로 참 뿌듯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왜 제약회사들은 이처럼 만병을 예방하는 커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제약 회사 입장에선 커피가 자신들의 돈벌이에 큰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까 예를들어 커피가 당뇨도 예방하고 간암을 예방한다면 소비자들이 그냥 커피를 사먹고 말지 비싼 돈을 주고 누가 약을 사먹겠냐는 거다.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자뭇 흥미로워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약사 아저씨가 쓴 이 책은 커피 애호가 뿐 아니라 커피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사람들에게까지 커피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 버릴지 모른다. 커피를 좋아하는 당신, 마음껏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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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쿨루스 1
야마모토 히데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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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우는 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은 전통적으로 고정화된 일본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즉, 평생 고용 신화를 자랑해왔던 일본 주식회사의 신화들이 하나씩 붕괴되면서 일본은 그동안의 여러가지 모순들과 억압된 욕망들이 하나씩 사회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아마 일본이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라 생각한다. 거리엔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양산한 홈리스가 활보하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은 미래 없는 직장 대신에 자본주의와 타협한 프리타가 되기를 선택했다. 반면 그동안 사회적 그늘에 가려져 있던 오타구와 같은 사회적 마이너리티들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기존의 엘리트 지향적 가치는 재평가 되기 시작했다.

만화 <호문쿨루스>의 주인공 나코시도 결국 재조정되고 있는 일본 사회가 만들어낸 캐릭터다. 한때는 잘나가는 엘리트 회사원, 그러나 지금은 홈리스 신세다. 하지만 그는 다른 홈리스완 달라 보인다. 그것은 비단 그가 회사원 차림의 양복을 입고 공원 벤치가 아닌 자신의 자동차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그는 호텔과 홈리스가 우글거리는 공원 사이의 도로상에 차를 세워놓고 사회적 경계에서 지내고 있다. 특이한 점은 그가 지내는 자동차다. 마니아틱한 올드 모델의 마츠다 소형차. 그는 오늘도 자동차 핸들에 머리를 파묻고 잠들어 있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근원적인 평안함을 느끼는 듯한 자세로 말이다.

어느 날 펑키한 차림의 의대생 이토 마나부가 나코시의 차창을 두드린다. 용건은 자신에게 트리퍼네이션 시술을 받으면 70만엔을 주겠다는 것이다. 트리퍼네이션이란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뚫어 식스센스를 활성화 시키는 시술이다. 나코시는 그 제안을 처음엔 거절한다. 하지만 얼마 후 자신의 자동차가 불법 주차로 견인되고 차가 없어진 나코시는 광장공포증으로 현기증을 앓는다. 나코시는 결국 이토를 찾아가 자동차를 찾기 위해 자신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이른바 트리퍼네이션 시술을 받는다. 그 후부터 나코시에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호문쿨루스라고 불리우는 인간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무의식의 괴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한다. 그 이미지화된 트라우마 괴물들이 나코시 자신의 호문쿨루스와 링크되면서 나코시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혼란을 느낀다. 과연 나코시는 타인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게 될 것인가?

나이트 샤밀란 감독의 <식스센스>에서 유령을 볼 수 있게 된 소년 콜의 고민은 바로 나코시가 느꼈던 공포와 맞닿아 있다. 남들에게는 안보이는 트라우마 괴물이 보이는 나코시, 한맺혀 이승을 떠돌아 다니는 유령을 볼 수 있는 식스센스 능력이 있는 콜. 결국 콜에게 보이는 유령이나 나코시에게 호문쿨루스를 통해서 메세지를 보내는 인간들은 바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나 또는 가정이 개개인들에게는 결국 엄청난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인데 그 상처의 근원을 찾다보면  인간의 비뚤어진 탐욕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로 변해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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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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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딱 15년 차다. 무라카미 류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라카미 류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나와 같은 세대와 공감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한국에서 나보다 15년 나이가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무라카미 류와 동시대에 태어난 한국사람들은 오히려 류와의 공감대가 없을 거란 얘기다. 즉, 류와 연도적 동시대가 아니라 정서적 동시대인은 오히려 한국에서는 나와같은 세대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무라카미 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우리에게 80년대가 투쟁의 시절이었듯이 60년대말을 치열하게 보낸 사람이다. 이른바 전공투 세대인 것이다. 게다가 밀려오는 미국의 팝문화의 세례를 받으면서 자라왔으며 한편으로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 대국으로의 빠른 변화를 실감하면서 자라왔다는 점이 그와 딱 15년 차이가 나는 나와 같은 세대와 너무나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류를 만나면 항상 해주고 싶은 얘기가 몇개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뭐니뭐니 해도 류, 당신이 아무리 일본이 최악이라고 말해도 그보다 더 최악의 환경인 한국이란 나라도 있답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류는 지속적으로 관료화되고 박제된 일본의 바보 같고 비능률적인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 비판을 해왔으며 일본을 이끌어 왔던 엘리트란 집단이 얼마나 허황되고 무능한 집단인지 지적을 해오면서 아울러 일본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도 많은 글을 던지고 있는데 사실 그의 글을 읽어보면 그가 비판하는 일본의 문제들은 한국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정도로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소설 [69]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진 소설 중의 하나였다. 69라는 다소 선정적인(내가 이상한가? 자꾸 李箱의 69가 생각나고 섹시한 상상이...*^^*)제목의 소설인데 알고보면 1969년도에 벌어진 자전적인 소설이다. 그러니깐 1969년 무라카미 류가 고등학생일때의 일종의 성장소설을 빙자한 모험담이다.

오로지 여자를 꼬시기 위해서 뭔가 멋진 일을 꾸미고 싶어하는 켄은 당시의 전공투의 무기력한 학생 운동에 냉소를 퍼붓듯 옥상에 바리게이트를 치고 봉쇄하는 이벤트를 꾸민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학을 맞는 한편 16미리 단편 영화를 제작하여 페스티벌을 개최하는데 이러한 사건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당시 일본의 사회상이 얼마나 경직되있고 폐쇄적이었는지에 대해서 고발함은 물론이요. 일본의 학교와 선생들에게 일갈을 날린다. 하지만 하지만...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일본의 69년도는 한국의 84년보다 분명 자유로웠던 같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어느 나라가 더 자유로웠냐가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이나 고등학교라는 합법화된 감옥(교육이란 명목으로 가두어 놓은 공간)인 학교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제발 좀 알고 고쳐야 되지 않겠나라는 것인데, 어찌된게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도 교육은 여전히 제자리를 못찾고 있는 듯 하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미래의 경쟁력은 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아니라 학창 시절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냈는지에 대한 추억이 많을 수록 높아진다는 진리를 아직도 한국이나 일본 정부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어쩌면 그것이 너무 좋은 걸 알기에 일부러 못느끼게 하는 고단수 정책일지도...)

류의 [69]속의 선생을 죽이고 싶었다라는 한문장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로 만든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가 결국 하고자 하는 얘기는 권상우가 포효하듯 외치는 '대한민국 학교 *까라 그래!'란 말에 다 담겨져 있는게 아닌가란 생각이 드는데 [69]또한 상상력 부재의 일본 사회가 갖고 있는 희망 없음에 대해서 일침을 가하는 소설이 아닌가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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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드림 4 - Time of the cafe
히라마츠 오사무 지음, 하나가타 레이 / 조은세상(북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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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개를 돌려보면 사방이 커피전문점이다.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커피집이 생겨났다가 또 없어진다. 소비자들이야 마음에 드는 커피집을 이용하면 되지만 커피 업계의 입장에선 사활을 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세상은 커피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커피전성시대!

흔히들 말한다.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도대체 왜 마시는거지? 라고. 하지만 이것은 질문의 전제가 잘못됐다. 이 문장에서 밥/값/이란 아마도 일반적인 대중음식점의 밥값, 그러니까 백반이나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을 의미할 것이다. 굳이 밥값과 커피값을 비교하고 싶다면 공평하게 자판기나 편의점에서 파는 인스턴트커피 가격과 견줘야 하지 않을까? 최고의 커피 한잔을 손님에게 서비스하기 위해서 눈물 겨운 노력을 기울이는 커피집 주인은 아마도 이런 말이 제일 억울할 것이다. 특히 <카페드림>의 주인공 사스케의 경우엔 더더욱. 

<카페드림>은 스시의 세계를 다룬 <미스터 초밥왕>이나 와인을 소재로 한 <신의 물방울>처럼 커피 전문 만화다. 스토리는 이렇다. 대를 이어 일본 전통 찻집(다원)을 운영하는 집안의 장남 사스케는 차보다는 커피에 푹 빠져있는 커피 전문가(사실은 거의 오덕후 수준). 뿐만아니라 언젠가 자신만의 커피집을 만들어 최고의 커피를 서비스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가 쉬워 보이진 않는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대대로 씨름 선수 집안의 장남이 아버지 몰래 격투기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라 할까. 게다가 사스케는 아버지의 앙숙인 이웃의 카페 '쉐이드트리' 사장의 딸과 사귀고 있다. 뭐 이쯤되면 대략난감한 상황이다. 이러한 설정 속에서 주인공 사스케는 아버지(차)와 자신의 로망(커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물론 주인공의 복잡한(?) 러브스토리도 덧붙여혀진다.

어쨌든 이렇게 한가지 주제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야기를 우리는 일본 만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러한 구조는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를 돕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대상으로 격상시키는 반대 급부가 있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카페드림>은 나같은 독자를 위해서 결국 커피에는 우열이 없고 마시는 사람의 기준이 있을 뿐이라는 쥐구멍을 만들어 주지만 그래도 커피를 너무 대단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오히려 이 책의 장점은 커피 그 자체에 대한 것 보다는 커피가 사람과 사람을 어떻게 맺어주고 연결시켜 주고 있는지를 드라마적으로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화난 사람, 사랑을 막 시작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기쁜 사람 등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커피를 통해서 위안받고 희망을 갖게 하는 구조가 돋보인다. 또한 커피 장사를 단순한 돈벌이가 아닌 뭔가 자신만의 철학을 담는 수단으로 삼아 열심히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만약 한국의 모든 커피집의 주인들이 사스케와 같은 마인드로 장사한다면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렇다면 끼니는 비록 라면으로 떼울지라도 최고의 커피를 맛보기 위해서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것이다. 난 믿는다. 한국땅 어디선가는 사스케처럼 최고의 커피맛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커피집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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