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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쿨루스 1
야마모토 히데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우는 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은 전통적으로 고정화된 일본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즉, 평생 고용 신화를 자랑해왔던 일본 주식회사의 신화들이 하나씩 붕괴되면서 일본은 그동안의 여러가지 모순들과 억압된 욕망들이 하나씩 사회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아마 일본이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라 생각한다. 거리엔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양산한 홈리스가 활보하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은 미래 없는 직장 대신에 자본주의와 타협한 프리타가 되기를 선택했다. 반면 그동안 사회적 그늘에 가려져 있던 오타구와 같은 사회적 마이너리티들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기존의 엘리트 지향적 가치는 재평가 되기 시작했다.
만화 <호문쿨루스>의 주인공 나코시도 결국 재조정되고 있는 일본 사회가 만들어낸 캐릭터다. 한때는 잘나가는 엘리트 회사원, 그러나 지금은 홈리스 신세다. 하지만 그는 다른 홈리스완 달라 보인다. 그것은 비단 그가 회사원 차림의 양복을 입고 공원 벤치가 아닌 자신의 자동차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그는 호텔과 홈리스가 우글거리는 공원 사이의 도로상에 차를 세워놓고 사회적 경계에서 지내고 있다. 특이한 점은 그가 지내는 자동차다. 마니아틱한 올드 모델의 마츠다 소형차. 그는 오늘도 자동차 핸들에 머리를 파묻고 잠들어 있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근원적인 평안함을 느끼는 듯한 자세로 말이다.
어느 날 펑키한 차림의 의대생 이토 마나부가 나코시의 차창을 두드린다. 용건은 자신에게 트리퍼네이션 시술을 받으면 70만엔을 주겠다는 것이다. 트리퍼네이션이란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뚫어 식스센스를 활성화 시키는 시술이다. 나코시는 그 제안을 처음엔 거절한다. 하지만 얼마 후 자신의 자동차가 불법 주차로 견인되고 차가 없어진 나코시는 광장공포증으로 현기증을 앓는다. 나코시는 결국 이토를 찾아가 자동차를 찾기 위해 자신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이른바 트리퍼네이션 시술을 받는다. 그 후부터 나코시에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호문쿨루스라고 불리우는 인간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무의식의 괴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한다. 그 이미지화된 트라우마 괴물들이 나코시 자신의 호문쿨루스와 링크되면서 나코시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혼란을 느낀다. 과연 나코시는 타인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게 될 것인가?
나이트 샤밀란 감독의 <식스센스>에서 유령을 볼 수 있게 된 소년 콜의 고민은 바로 나코시가 느꼈던 공포와 맞닿아 있다. 남들에게는 안보이는 트라우마 괴물이 보이는 나코시, 한맺혀 이승을 떠돌아 다니는 유령을 볼 수 있는 식스센스 능력이 있는 콜. 결국 콜에게 보이는 유령이나 나코시에게 호문쿨루스를 통해서 메세지를 보내는 인간들은 바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나 또는 가정이 개개인들에게는 결국 엄청난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인데 그 상처의 근원을 찾다보면 인간의 비뚤어진 탐욕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로 변해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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