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남다르다. 마치 내가 영화감독이 된 의기양양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소설 속 세세하게 묘사된 장소, 인물들의 감정선을 읽어내려가는 시간 내 머릿속에선 바쁘게 필름이 돌아가는 것 같다. 게다가 소설을 읽는 속도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기에 적절하게 나의 어린시절이랄런지, 스쳐 지나갔던 나의 기억이나 생각들이 적절하게 필름 속에 버무려진다.
영화를 볼 때 완전한 구경꾼이 되어 양치기의 의도대로 쉴 틈 없이 무리로 몰리는 양 떼가 되는 기분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시간은 오롯이 내가 장식하는 기분이라 더 생산적인 느낌이랄까?
최지연의 장편 소설 [이 와중에 스무 살]을 불완전했던 나의 사춘기를 회상케했다.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묻어난 글귀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나 홀로 간직해왔던 딥한 감정들이, 사실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소한 감정이라 생각하니 그간의 고민들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은호의 환경, 생각,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이 그러했다. 특히 은호의 대학은 내가 졸업한 곳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졸업한 이후의 변화와 맞닿아있었다 해야 할까?
펜스 안에 복합시설이 들어온 것도 졸업 후에 알게 되었다. 게다가 도서관 뒤편으로 본관 건물이라니… 너무나 상세하게 들어맞는 묘사에 내 추억과 풀칠되어 더 깊게 빠져들었다.
은호가 책을 읽고 이따금 편지를 쓰면서 자신을 평온함으로 이끌었던 것 처럼 나도 스물 살의 나를 마주해본다.
📝스무살의 나에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
지금 네 전공이나 네 학벌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는 매개체가 될 순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기억해.
그리고, 네가 간직했던 네 슬픔이나 연약함은 누구나 가지고 있어. 그렇다고 네 짐의 무게를 펌하하는 게 아니라, 네가 상처를 준 사람들 역시 같은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둬. 그 사실이 조금이나마 널 자유롭게 만들면 좋겠어.
그리고, 너를 가꿔. 남들의 기준으로 가꾸지말고, 네 스스로 살고픈 삶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먼 미래의 내가 스무 살의 나에게


나의 스무 살을 기억해 본다. ‘수능’ 자체가 목적이었던 수험생활을 마친 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내 마음은 이리저리 날뛰었다. 복학생 오빠를 만나 연애를 하는 게 그나마 인생의 목적같이 느껴졌으니 할 말 다 했지 뭐.
그래도 마냥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었던 대책 없음이 지금에선 부럽기도 하다.
은호의 깊은 마음속 ‘사랑의 결핍’과 본인이 낳지 않은 ‘죄책감’이 너무 짙어서 해결될 수 없을 것 만 같았는데..
대학에서 만난 상담사와의 대화를 통해, 심지가 곧아 은호에게 편안함을 주던 준우를 통해, 조금씩 변화되는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에 엄마와 기대앉아, 생각하는 독백에 마음이 놓였다. 손에 꽉 쥐고 있던 그 짙은 무게들이 이제 조금씩 내려놓는 것 같아서…
책을 다 읽고 나니, 독서모임에서 만났던 어떤 대학생 친구가 떠오른다. 살포시 이 책을 선물해 봐야겠다. [이 와중에 스무 살] 이 책이 그 친구에게 안정감을 주던 준우 또는 상담사 같기를 내심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