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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부검 - 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
서종한 지음 / 학고재 / 2015년 11월
평점 :
[심리부검] 사람을 살리는 개설서, 국내 최초 심리부검서
심리부검으로 자살 원인을 밝히면 예방책을 더 정확하게 짤 수 있다 - 토머스 조이너(플로리아주립대 심리학과 교수/p.97)
평소 범죄수사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이다. 물론 무엇을 베꼈고 어떤 클리셰를 쓰는지도 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죽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비자연사를 이 감독과 작가는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는지 구경하며, 특히 살면서 직접 접하지 못한 죽음을 간접적으로 목격하고 나름대로 생각에 빠지기 위해서이다. 현실과 드라마의 간극을 가늠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그 중 인간이 사력을 다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살’은 평생 천착하는 주제다. 뒤르켐의 자살론에서 우리의 자살 이해는 얼마나 발전했을까, 사랑도 종교도 그 어떤 것도 책임과 의미가 되지 못하게 된 마음을 돌릴 방법은 없을걸까. ‘자살생존자’라는 용어가 있다. 부모, 자녀, 애인,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한 사람들로서 그들이 겪는 ‘자살로부터 남겨진 느낌’이 너무나 커서 하루하루 생존하는 마음으로 버티는 자살고위험군의 일종이다.
20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자살에 대해 자신감에 차 있었다. 삶에서 자살을 끊어내는 방법에 대해 강한 확신이 들었고, 자살 실패자이자 자살 구조자였던 경험을 살려 책을 쓰는데 어떤 사람의 자살에 큰 충격을 받고 원고를 지워버렸다. 행복전도사 최윤희의 자살이었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학연이 있어 그가 어떻게 상담가로 변신해 행복전도사로 인지도를 다져나가는지를 실시간으로 보고 들어왔기에 당황스러웠다. 그 때는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이지만, 일찍부터 남을 돌보는 일과 인연이 깊었고,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글을 쓰는 입장에서, 그의 자살과 그가 앓던 병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살’에 대해 경험보다는 공부의 세계로, 멀리 떨어져 있되 섬세하게 보는 계기가 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심리부검>은 어떤 책을 무척 감명 깊게 읽고 그 책을 낸 학고재 출판사의 출간 목록을 샅샅이 살피다가 알게 된 책이었다. 개념을 보고 흥미로워서 찾아보니 우리나라는 2008년 처음 심리부검 보고서가 검찰과 법원 참고자료로 제출된 적이 있었고 2013년에는 부산시와 부산경찰청에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심리부검 첫 사례가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심리부검체계구축」을 위해 2014년 연 10억 예산 규모의 중앙심리부검센터를 개소하고 올 초 사업 기간을 2년 연장하였다. OECD 자살률 1위 국가니만큼 성과만 좋다면 정식 기구화되고 심리부검도 제도화될 가능성이 높다. <심리부검>의 저자도 이번 중앙심리부검센터에 당연히 참여했을 줄 알았는데 캐나다에 있어서인지 관련 뉴스에 이름이 없다.
교양서 형태로 출간했긴 하였지만 사실상 국내 최초 심리부검 개설서이다. 저자는 이 책을 시작으로 심리부검에 대한 책을 계속 내려고 한다. 아직 박사학위 중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리부검 경험과 공부량이 많은 사람이다. 2007년 경찰청에서 프로파일러로 일하며 2008년 국내 최초의 심리부검 보고서를 쓴 사람도 저자다. 그 후 6년 동안 보건복지부와 아주대학교와 협력해 심리부검과 자살을 연구하였고 전 미국자살예방협회회장이자 법심리학자인 자살학의 권위자 레니 버먼의 심리부검 자격전문교육을 이수한 한국인 최초의 인증 받은 심리부검 전문가이다. 나름대로 심리부검 운영 계획안을 만든 적도 있고 2013년부터는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의 표준화된 심리부검 프로토콜 완성을 목표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처음 책의 구성을 봤을 땐 유품정리인이 쓴 고독사 사례집 <유품정리인은 보았다>,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가 쓴 법의학 사례집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의 심리학 버전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얼마나 표시를 하고 공부를 했던지 모른다. 아직 박사 학위 과정이고 그가 원하는 만큼의 연구 정립에 도달하지 못해서인지 첫 책은 이런 구성이 최선일 수 있겠다. 하지만 심리부검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고, 범죄심리학을 공부하기가 굉장히 제한적인 우리나라다. <심리부검>은 일반 출판사에서 나온 최초의 심리부검서이고 사례연구집의 구성 사이사이에 심리부검의 현황과 방법론 및 과제들이 충분히 녹아 있다는 점에서, 개설서로 손색없었고 존재만으로 소중한 책이었다(심리학 학술서 전문 출판사 학지사에서 2014년 말 자살학의 아버지 에드윈 슈나이드먼의 심리부검 인터뷰집을 번역한 적이 있다. 현재는 심리부검에 대해 읽을 수 있는 한글책은 2권밖에 없는 셈)
심리부검은 자살한 사람이 남긴 자료와 그의 자살생존자와의 면담을 통해 자살 원인을 찾는 것이다. 그야말로 심리를 부검하는 것인데 부검 대상이 죽었기 때문에 자료와 주변인을 간접적으로 부검한다. 1934년에서 1940년 뉴욕 경찰 93명이 연속적으로 자살하는 사건을 계기로 자살 원인 규명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이를 심리부검의 기원으로 보고 있으며 1958년 LA 부둣가 추락 사건에서 ‘심리부검’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고 법정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이다. 미국 자살예방협회를 중심으로 에드윈 슈나이드먼, 토머스 조이너, 레니 버먼이 주요 권위자이며 미국, 캐나다, 핀란드 등이 도입하였다. 심리부검의 주 소비자는 법원과 경찰, 보험사이며 북미에선 판결과 수사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주요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심리부검은 단순한 과학적․심리적 수사 도구를 넘어 자살로 위장된 타살을 찾아내고, 자살 예방과 자살 구조하는 데 유용한 수단으로 조명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주저흔과 방어흔을 구별하고, 목을 맬 때 줄을 감는 횟수에 대한 것도 대표적인 심리부검의 성과이다. 자살자의 흉터는 공포에 대한 저항과 고통에 대한 적응이 섞여 패턴화되거나 반복적인 깊은 주저흔을 보이는 반면 타살에 의한 흉터는 일관성 없는 자해 흉터와 그에 대해 사망자가 자신의 몸을 보호하다 생긴 방어흔을 보인다. 목메 자살한 것처럼 위장된 시체는 목을 한번밖에 안 감은 반면, 진짜 자살한 시체는 자신의 목숨을 확실히 끊기 위해 두 번 이상 감는다. 심리부검은 그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자살 사례 분석을 통해 자살과 자살의 징조를 유형화한다.
토머스 조이너 같은 경우 자살 위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척도인 ‘자살 위험성 평가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는데 서종한은 다시 한국에 맞는 ‘고위험군 분류 프레임워크(자살 위험 프레임워크)’를 만들었고 <심리부검>에서 소개하고 있다. 책 가장 앞장에 실린 ‘자살 위험 자가진단 플로차트’와 책 뒷부분의 ‘고위험군 프레임워크’ 결과를 비교해보면 상당히 많은 독자들이 재밌으면서 재밌지 않을 수 있다. 전자에서 자살과 거리가 멀다고 나온 사람들마저 ‘고위험군 프레임워크’에서 걸리는 항목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스트레스 환경에 놓여 있으며 자살에 취약한지 새삼 놀라고 깨달았다. 저자는 현재까지 만들어진 심리부검 프로토콜도 실어놓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완성될지 무척 기대된다.
가짜 유서와 진짜 유서를 구별하고, 진짜 유서를 다시 유형화하는 대목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LIWC 프로그램 사용 등 문장 구성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이 방법론의 경우 심리부검 뿐 아니라 인간을 연구하는 모든 학문과 산업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정성조사법이고 어느 정도는 아예 계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컸다. 다만 저자도 걱정하지만 심리부검은 표준화하기가 까다롭고 역사가 아직 짧기 때문에 갈 길이 멀고, 아무리 잘 만든 보고서도 법관과 수사관의 자의적 해석, 배심원의 동요를 통제하는 문제가 남는다. 아무튼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었다. 일생의 이론을 먼저 세우고 나중에 두 개의 박사학위를 받았던 ‘로고테라피’의 빅터 프랭클이 떠오르기도 해서, 그가 박사학위 받을 날이 기다려지고 그가 한창 만들고 있다는 <심리부검 핸드북(가제)>도 궁금해졌다.
올 초 중앙심리부검센터는 2012년에서 2015년 자살 사망자 121명을 심리부검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자살자의 93.4%가 자살 경고 신호를 보내고88.4%는 정신질환자라며 신호를 알아차리고 정신질환 시 꾸준한 치료가 자살 예방과 자살 구조의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심리부검>에서는 자살을 시도한 뒤 살아남을 경우 다시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고 한다. 자살생존자의 트라우마와 자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생각했을 때 자살 예방과 자살 구조. 심리부검은 매우 중요하다. 자살을 무조건 이기적으로 볼 수 없다고, 타인에 의해 사회에 의해 자살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타살성 자살도 많다는 것이 잊히지 않는다. 책 뒤표지의 이 말로 서평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갈음한다.
심리부검은 자살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문이자,
유족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이며,
국가적으로는 자살 예방을 위한 필수단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