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었던 고해성사를 드디어 드렸다. 드물긴 하지만 형식적으로 성사를 주시는 신부님들이 계신데 오늘 신부님은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콕 집어서 말씀해 주시곤 "여기까지 오는 것이 힘드셨습니까?"하고 물으셨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신부님의 의도를 알았기에 그렇지는 않았다고 대답했다. 신부님은 그렇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오면 되는 것이라고, 죄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 말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미사 중에 가만가만 생각해 보았다. 정말로 내 죄가 무엇일까. 고해소 안에 들어서면 늘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죄 말고 말이다. 결국 죄는 죄책감을 부르고 그로 인해 무거워진 마음은 나를 부정적인 상태로 만든다. 나의 그런 상태는 타인과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만든다. 대부분 그 피해자는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해야 할 가까운 가족이다.
화를 냈던 경우를 되돌아보면 대부분 그 대상은 희생자가 된다. 그러니까 나를 화나게 만든 대상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애먼 사람에게 전혀 다른 이유로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화풀이'다. 이렇게 엉뚱한 데 퍼붓고 있으니 아무리 퍼부어도 화는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어차피 그 대상이란 결국 돌아돌아보면 나 자신이기 일쑤다. 우습다. 이렇게 생각하면 살면서 화낼 일은 정말 별로 없을 것 같다.
신부님께선 미사 기도 지향으로 인도네시아 지진 희생자들의 영혼을 기억하자고 하셨다. 뉴스에서 기사를 보면서도 그냥 또 지진이 났구나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이렇게 마음이 무뎌지며 살면 안되는데. 가끔 너무 무섭다. 정작 놀라고 슬퍼해야 할 일에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벌써 월드컵 때문에 그야말로 신경이 마비될 정도다. 벌써 4년이 흘렀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그때의 감동이 다시 밀려오겠지만 또 어떤 부모들에겐 두 딸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슬픔이 밀려올 것이다. 기쁨과 흥분이 마땅히 애도해야 할 슬픔을 가리지 않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