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자세로 하는 독서는 학교, 일, 신체적인 제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래서 즐거움의 일부가 증발해버린다. 지하철에서 하는 독서를 빼고는.-13쪽
나에게 있어, 가장 견디기 힘든 경우는 도서전이다. 죽었거나 살아 있는 그 수천 명의 작가들, 내가 읽지 않은 그 수백만 권의 저작들. 그것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나는 소화불량에 시달린다.-56쪽
신문의 소란(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천둥소리처럼 침묵을 꿰뚫는)에 비해 책은 조용한 편이다. 그래도 들리기는 들린다. 검지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가며 급하게 원하는 페이지를 찾느냐, 아니면 엄지손가락으로 잡고 페이지들을 훑어나가느냐에 따라 폭풍이 몰아치기도 하고, 콧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기도 한다.-71쪽
보기 싫은 겉표지를 벗겨버리기 쉬운 만큼, 띠지는 성가시긴 하지만 버리기가 영 찜찜하다. -79쪽
향수나 기저귀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렇지가 않다. 그 경우에도 바코드는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포장지에 있다. 그런데 책에는 직접 새겨져 있다. 생살에, 낙인처럼.-85쪽
외부의 권유에 솔깃하는 얇은 귀가 내 독서의 논리적 혹은 무질서한 흐름을 부분적으로 설명해준다.-119쪽
책의 경우에는 수없이 많은 접근 방법과 선택 동기가 있다. 작가, 나라, 만남, 장르, 정황, 판형, 순간적인 기분, 계절, 집 증등. 수없이 많은 것들. 모든 것이 구실이 된다. 관계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121쪽
나는 사람들이 내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을 흘낏거리는 것을 참아내질 못한다.-160쪽
책의 성격이 남에게 보이기에 창피한 것이든 아니든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다.-161쪽
이 모든 게 사납고 새침한데다 히스테리만 늘어나는 노처녀나 하는 짓 같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다.-162쪽
그런데, 날 소름 돋게 하거나 모욕감을 주는 이 모든 행동들을 정작 나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한다. 거리낌 없음에 완벽한 위선까지 더해서.-163쪽
그리고 백과사전도 하나 싣고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차를 타고 여행할 때 서로에게 엉뚱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잦으니까.-175-176쪽
차례를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고, 미국식으로 차례를 서두에 위치시키는 최근의 관행이 날 돌아버리게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184쪽
아름다움이란 사람이나 물건이 자신의 못난 부분마저 좋아하도록 만들 줄 알 때, 그것을 자신의 개성과 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놓을 때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191쪽
정상적인 두께로 분권한 책 두 권과 엄청나게 두꺼운 책 한 권은 다르다. 그것은 팔레르모에 가기 위해 밀라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과 같다. 감정적인 몰입에 단절이 생긴다.-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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