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 '바람 구두'를 신은 당신, 카뮈와 지드의 나라로 가자!
김화영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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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99년은 프랑스의 작가 발자크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원주 박경리 문학기념관에서 열린 발자크 학회에서는 국내 발자크 연구자들 및 은희경, 김원우 같은 작가들이 모여 발표 및 토론회를 가졌다. 그당시, 카뮈 연구가이기도 하지만 발자크 작품으로 석사논문을 쓴 김화영 선생을 뵐 수 있었는데, 그 온화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저녁 만찬 시간에는 낮동안 진지한 토론의 긴장을 한 잔 와인으로 풀고, 약간 취기가 오르자 역시 한국인이 모인 곳에 빠질 수 없는 노래자랑(?) 시간이 이어졌다. 몇 분 선생님들은 샹송을 부르기도 하셨는데, 김화영 선생은 노래도 한 곡 하셨던 것 같고 앙코르로 시를 한 편 낭송해주셨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들어있는 '조응 Correspondances'이라는 시였던 것 같다. 보통 시낭송이라 하면 왠지 몸이 근질거리고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선생님의 시낭송은 순간 숨이 턱 막히게 하는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누군가의 의자 등받이에 두 손을 받치고, 이국의 언어로 상징으로 가득한 시를 읊는 중년남자의 쓸쓸함과 여유, 불문학자로서의 기품이 완연히 배어나왔다.  
김화영 선생에 대한 남다른 기억을 안고, 아니 실은 이 책을 읽다보니 잊혀졌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감각으로 충만한 보들레르의 시처럼 물기가 촉촉히 스며있는 선생의 문장들 사이사이를 오가다 보니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알제리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아침마다 시골집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카뮈의 불어판 『결혼,여름』 몇 페이지를 암송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 인기척이 없다. 나는 혼자서 소리 내어 그 몇 줄을 다시 읊어본다." (p.67)

그 고즈넉함과 고독을 깨고 싶지는 않지만, 기꺼이 그 청중이 되고픈 생각이 간절한 순간이었다. 이 책이 단순한 알제리 여행집이 아닌, '카뮈(그리고 지드)'라는 분명하고도 절실한 목적을 지닌 여행기라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최근 백은하의 『안녕 뉴욕』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뉴욕이라는 도시와 그 도시 속에 살아숨쉬는 영화적인 것을 탐색하는 한 발랄한 여성의 좌충우돌 여행기랄 수 있다.  이 책이 즉자적이고 톡톡 튀는 젊음의 날선 감수성을 무기로 하고 있다면, 김화영 선생의 책은 오랜 동안 갈망해온 카뮈의 나라 알제리에 대한 느긋하면서도 설레임으로 충만한 모순적 감수성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서로 다른 연배의 이 두 작가는 분명 대상에 대한 지침없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이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의 빛깔은 아무래도 알제리의 눈부신 태양과 그와 선연히 대조되는 시리도록 푸른 하늘, 혹은 황토빛 폐허와 그곳에 핀 들꽃들의 부조화의 조화로 인해 더욱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사진 속의 드문 인적과 적막한 풍경 때문인지 알제리는 아직도 '금지된' 땅 같은 이미지가 풍긴다. '사진'이란 원래 정지된 이미지를 포착하는 매체이긴 하지만 어떤 사진들에선 생동감이 느껴지는 반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알제리의 모습은 마치 실제로도 그곳의 시간이 정지해있을 것만 같은, 혹은 그 시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은 자유롭게 들고 나기 힘든, 그래서 외지인들의 때가 덜 묻은(프랑스 식민 지배의 잔재들은 묻어두고라도) 알제리의 순수함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이러한 정지와 순수 속에서 카뮈와 지드의 열정은 더욱 빛을 발한다. 특히 김화영 선생의 적절한 인용으로부터 두 작가의 작품은 또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해준다.

좋은 책이란 정신을 자극하고, 삶에 대해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지금 내 "마음속에 있던 내면적 무대장치를 부숴버리"(28쪽)라고 말한다. 진정으로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게으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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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구판절판


학예회가 있던 그날, 아마도 이 세상에 마르슬랭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친구가 멋지게 바이올린을 연주한 후 정말로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이다.-54쪽

또 르네는 마르슬랭이 부드러운 어조로 또박또박 훌륭하게 시를 읊어 내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기쁨을 느꼈다. -56쪽

또 전혀 놀지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전혀 지루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59쪽

마르슬랭은 감기에 걸릴 때마다 그의 친구처럼 기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 했다. 그리고 르네 역시 햇볕을 몹시 쬔 어느 날, 그의 친구가 가끔씩 그러는 것처럼 얼굴이 빨개져 버린 것에 아주 행복해 한 적이 있었다.-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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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 상자
파울로 코엘료 외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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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은 어른이 되는 과정의 일부이면서, 신기하게도 그 자체로 완전한 세계를 이루는 독립적 시공간이다. 과거를 떠올릴 때 분명 기억의 저 먼 끝자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면서도 현재의 나와 어린시절의 나 사이에는 엄청난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은, 그것이 단순히 시간적으로 가장 먼 곳에 위치해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곳에는 지금의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한때 우리 안에서 찬란히 빛을 발하던 보석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 책의 열 일곱가지 이야기는 바로 어린 시절의 그 보석들이 어떻게 아름답게 보존되거나 볼품없이 훼손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프랑스의 에이즈 아동 보호 연대(Sol en Si)가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와 그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쓰였다.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 넓게는 부모의 부주의나 유전적 요인에 의해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쩌면 그 태생부터 어른들에 의해 망가진 보석을 갖고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름답게 가꿔줄 수 있는 것 역시 어른들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이 책은 다양한 어린시절의 경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무심한 아빠의 사랑과 진심을 담은 뽀뽀가 결국은 아이에게 충만한 생명력을 불어넣고('뽀뽀상자'), 아이의 소중한 꿈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어른들의 배려는 죽어가는 아이를 살려낼 수도 있으며('기차를 기다리는 아이'), 어린시절에 대한 작은 이해는 아이의 삶의 색채를 결정할 수도 있다('선생님은 여자'). 
반면 지나친 관심과 개입, 인내심과 믿음의 부족은 자칫하면 아이의 순수한 작은 낙원을 짓밟을 수도 있다('작은 낙원')고 경고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아이들에게 사랑만큼 중요한 것은 없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위나 앞에서가 아니라 옆에서 그들의 걸음걸이를 방해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걸어야함을 일깨워준다. 

아이들을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겠지만, 자유와 방치 사이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는 것은 역시 참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린시절에 대한 부분기억상실증에 걸렸기 때문은 아닐까. 누구나 갖고 있었지만 이내 그때의 꿈과 빛나던 보석을 묻어놓은 채 견고한 안개의 성채를 쌓아올려, 애쓰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그런 곳에 우리의 어린시절이 유폐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그 안개를 걷고 어린시절의 성채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와 방치 사이에서 가장 알맞은 위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라는 말이 있다. 에이즈에 걸려 언제 우리 곁을 떠날지 모르는 아이에게 조기 영어교육을 강요하고 수많은 학원에 보내려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어린시절은 짧고 그래서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모자르다. 아이들의 꿈이 다치지 않도록 애틋한 마음으로 호밀밭의 끝에 서 있는 파수꾼이 된다면, 우리 역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린시절의 보석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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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생각하면 왜 눈물이 나지?
백은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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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때 고막수술을 받으셨다. 나중에서 인공고막을 해 넣어야만 했던 이유를 알게되었는데, 그때 친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의 시어머니가 참 미웠다. 억척스러우셨던 할머니의 시집살이를 견디며 밤마다 모로 돌아누워 흘린 눈물이 귓속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 눈물이 고막을 녹여 없앤 것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울면 고막이 다 녹을까. 할머니도 밉고 아빠도 미웠다. 그래도 엄마는 할머니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셨을 때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병수발을 드셨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의식을 잃으신 할머니를 목욕시키고 대소변을 받아내셨을까 생각하면 나 역시 만감이 교차한다. 그것은 미움의 찌꺼기를 걷어낸 용서였을까, 이제는 지나가버린 과거에 대한 초탈이었을까. 아니면 맏며느리로서의 의무감이었을까.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7년, 엄마는 그 후유증으로 거의 치료법이 없다는 '이명'을 얻으셨다.  최근 한 1년 전부터 엄마와의 의사소통이 부드럽지 못하다는 걸 빨리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그저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탓이려니 했다. 한 번에 정확히 말을 잘 못알아듣는다거나 자꾸만 물어본다거나 하는 일들이 어떨 땐 짜증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잔소리하는 일이 더 많아지고 더 나쁜 경우는 핀잔을 주거나 무시를 하는 일도 생겨났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는 엄마에 대한 '걱정'을 핑계로 엄마를 혼내고 있었던 거다. 주위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나이들어가는 딸들은 나이들어가는 부모님께 다들 자기도 모르게 부모노릇을 하게 된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부모의 모습은 내 어릴적 자상하고 따뜻한 부모의 모습이 아니라, 내 부모가 나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괴팍한 모습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을 가장 아프게 내리쳤던 부분은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는 아이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해주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이상한 걸 물어도 '그것도 모르냐'며 무시한 적 한 번 없는 엄마. 그렇게 따뜻한 관심 속에 자란 아이가 이제 좀 머리가 컸다고 엄마는 그런 것도 모르냐며 대드는 아이러니란. 내 딸이 그랬다면 머리를 한 데 쥐어박았을텐데. 정말로 정말로 엄마의 질문에 이제 성심껏 답변하리라, 인터넷에 들어가면 뭐든지 다 알아낼 수 있다고 믿으시는 엄마의 환상을 나의 게으름 때문에 깨버리지는 않으리라, 절로 다짐이 되었다.

그리고 또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생 멋부릴 줄 모르고 관심도 없다고 생각했던 엄마에게서 엄마는 젊었을 때부터 옷욕심이 있었다는 얘길 듣고, 마치 나는 우리 엄마가 내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인간에겐 누구나 그런 허영심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우리 엄마도 그 광범위한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 틀림없는데 나는 엄마가 무슨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 줄 알았는가 보다. 그럼 그 긴긴 세월동안 멋부릴 줄 몰랐던 게 아니라 안부리고 참아왔다는 거 아닌가, 엄마가 좀 독한 면이 있다고 생각은 해왔지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슴 한켠이 저려온 게 사실이다.

눈치없고 무던한 딸이 이제라도 알았으니 예쁘고 우아하게 늙어가시도록 해야지...  그리고 공부하는 거 좋아하시는 우리 엄마에게 편안한 책상과 의자가 딸린 공부방, 온전히 엄마만을 위한 방을 마련해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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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2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6-12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엉이님, 어머니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저에겐 눈물처럼 뜨겁게 느껴져요.. 정말 마음 고생 많이 하신 분 같아요. 백은하의 글이면 온기가 있을 거란 기대가 되네요..

부엉이 2006-06-1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 엄마 세대는 참으로 인내심이 강하신 것 같아요. 무조건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이제는 조금 마음 편히 사시길 바랄 뿐이지요.
 













p, 51. 폴 델보, '대화 The Dialogue'



p.52,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희생The Sacrifice'




p. 68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상상도)



p.75 카두세우스(Caduseus)





p. 81 마부제, '넵튠과 암피트리테'

Jan Gossaert (Mabuse) (1478-1536)
Neptune and Amphitrite
Oil on wood, 1516
74 x 48 5/8 inches (188 x 123.8 cm)
Staatliche Museen, Berlin


p.81 미켈란젤로,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무덤

Tomb of Giuliano de' Medici
1526-33
Marble, 630 x 420 cm
Sagrestia Nuova, San Lorenzo, Florence


p. 82 미켈란젤로, 줄리아노 데 메디치 무덤의 디테일  '낮'

Day
1526-33
Marble, length: 185 cm
Sagrestia Nuova, San Lorenzo, Florence

p. 81 미켈란젤로, 로렌초 데 메디치의 무덤

Tomb of Lorenzo de' Medici
1524-31
Marble, 630 x 420 cm
Sagrestia Nuova, San Lorenzo, Florence


p. 82 미켈란젤로, 로렌초 데 메디치의 무덤 디테일 '새벽'

Dawn
1524-31
Marble, length: 203 cm
Sagrestia Nuova, San Lorenzo, Florence


p. 82 미켈란젤로, 로렌초 데 메디치의 무덤 디테일 '황혼'

Twilight
1524-31
Marble, length: 195 cm
Sagrestia Nuova, San Lorenzo, Florence


p.84 로렌초 로토, '두개골에 월계관을 씌워주는 에로스', 1521년 경



p. 84 독일, '죽음의 무도'





'La danse macabre', 마리엔 교회, 베를린, 1480-1500



p.103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디테일.





p.105 로소, '성모자와 성인들'

Madonna Enthroned with Four Saints
1518
Oil on wood, 172 x 141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p.123, 돌턴, '원소들의 무게표' (John Dalton, Table of atomic weights)



p. 125 프락시텔레스, 헤르메스 상

Statue of Hermes and The Infant Dionysus, BC 330.


p.128, 카트린 드 메디시스



프랑수아 뒤부아, '성 바르톨로메우스의 대학살'

François Dubois (1790 - 1871). Massacre sainte Barthelemy
Musée Cantonal Des Beaux-Arts, Lausanne Switzerland


p.129 장 클루에, 프랑수아 1세



p. 158 연금술사 생 제르맹 백작



p.164 한스 홀바인, 헨리 8세

1536, Thyssen-Bornemisza Collection, 마드리드


티치아노, 카를 5세

1548,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티치아노, 프랑수아 1세

루브르 소장


프랑수아 1세의 문장, 살라맨더




p.169 menora



p.215 라파엘, 시스틴 마돈나

c. 1512-14, Gemäldegalerie, Dresden


p.217 프라 안젤리코, Coronation of the Virgin Altarpiece from San Domenico

Detail of predella: Saints Peter and Paul Appearing to Saint Dominic
c. 1434
Tempera and gold on panel
83 7/8 x 93 1/8 in (213 x 211 cm)
Musee du Louvre, Paris


p.224, 페르낭 크노프, 내 마음의 문을 잠갔네 세부

p. 361, 보티첼리, '스메랄다 브란디니의 초상'

1475년


p. 362, 보티첼리,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1485년


p.364, 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

1482년, 우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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