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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옥루몽 1 - 대한민국 대표 고전소설
남영로 지음, 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이 지어진 19세기는 서구에서는 사실주의가 태동하고 인간의 적나라한 삶 자체가 문학의 현실로 묘사되던 시기였다. 이런 사실에만 익숙해져, 부끄럽게도 우리의 고전문학에는 더더욱 문외한인 내게 같은 시기의 우리 소설『옥루몽』은 차갑고 신선한 우물물을 한 바가지 퍼 마신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하늘의 별이 인간이 되어 지상의 온갖 희노애락을 경험한다는 얼개나, 언젠가는 누구나 죽음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우리의 삶은 한바탕 꿈에 불과하다는 설정은 정면에서 현실을 파고드는 서구의 방식과는 달리, 비유로 현실의 장막을 걷어내고 관조하는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이 소설의 큰 가지는 하늘의 문창성군이 인간으로 화한 양창곡이라는 남성인물의 삶이지만, 압권은 단연코 그가 만나는 곁가지 여성들의 활약상이다. 소설적 인물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완벽한 여성성과 남성적 지략으로 양창곡을 돕는 강남홍은 말할 것도 없고, 물에 빠진 그녀를 살리도록 미리 계책을 쓴 윤소저와의 끈끈한 우정은, 벽성선을 시기하는 황소저와 위부인의 암투와 같이 흔히 질투와 계략을 일삼는 여성들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긍정적 면모를 드러낸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외국문학 번역서에 길들여져 심지어『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으면서도 어색했던 내가 이 책을 포기하지 않고 잘 읽어낼 수 있을까 약간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 한 번 발동이 걸리기 시작하니 감칠맛 나는 문장들은 막힘없이 술술 잘 읽혀나갔다. 열 권, 스무 권이 넘는 무협지를 읽는 사람들을 내심 부러워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빠른 줄거리 전개와 산문 문장이지만 묘하게 드러나는 리듬 덕분이 아닌가 싶다. 상황에 따라 한 인물이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려 곤욕을 치르기도 하고, 한 문단이 멀다하고 튀어나오는 중국고사나 성어들 때문에 열심히 주석으로 눈을 돌려야 했지만, 그것은 어떤 면에서 소설에 입체성을 부여하고 게으른 독서를 방지하는 긍정적 측면이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오히려 긴장감을 풀고 가볍게 꿈을 꾸듯 즐길 때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나는 그저 재미없는 나일 뿐이지만 꿈 속에서는 그 무엇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소설 속의 강남홍이 되어 중국 땅 전역을 누벼보는 것도 건조한 일상을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