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어머니는 언젠가 그에게 그를 밴 것은 결혼 첫날밤이었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는 늘 그 사실에, 자기가 처음 존재하기 시작한 순간을 꼭 집어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끌려서 여러 해를 두고 그날을 자기의 생일로 은밀히 자축했었다. -17쪽
사물과 그 이름은 서로 교환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는 더 이상 그렇지가 않아서 이름이 사물로부터 분리되고 말았다. 언어는 임의적인 기호의 집합체로 바뀌었고 언어는 신으로부터 단절되었다. 그러므로 낙원의 이야기는 인간의 타락에 관한 기록일 뿐 아니라 언어의 타락에 관한 기록이기도 한 것이다.-54쪽
만일 인간의 타락이 언어의 타락을 수반하기도 한다면, 언어의 타락을 원상 복구함으로써, 에덴동산에서 쓰였을 언어를 재창조하려고 노력함으로써, 타락을 원상복구하고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을까?-58쪽
<이 상품은 농아를 위한 것입니다. 값은 되는 대로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꼬리표 다른 쪽은 <당신의 친구를 위해 수화를 배웁시다>라는 뜻의 수화 알파벳 그림 - 26개의 글자 하나하나에 대한 손 모양을 보여주는 - 이었다. -63쪽
하지만 댁도 알다시피, 언어는 변할 수 있는 거요.[...]
우산은 사물일 뿐만 아니라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물건, 다시 말해서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는 물건이오. [...]
어떤 물건이 더 이상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가? [...]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서 변화의 개념을 구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 길을 잃게 될 거요.-90-91쪽
"벌써 아는 사이가 된 모양이구나. 대니얼, 이 분은 대니얼 아저씨란다." 그리고 다음에는 퀸을 돌아다보면서 똑같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고 말했다. "대니얼, 이 아이는 대니얼입니다." 아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가 다 대니얼이네!" "그렇구나." 퀸이 말했다. "나는 너고 너는 나고." "그러니까 빙글빙글 도는 거네요!"-119쪽
그는 언제나 보이는 대로의 세계에서, 거기에 있는 것 이상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즐거움을 얻어 왔다. 또 지금까지는 그것들이 밝은 햇살에 새긴 듯 선명히 부각되어 그 속성을 명확하게, 그처럼 완벽하게 드러냈으므로 그로서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걸음을 멈추고 두 번 다시 쳐다볼 필요가 없었다.-164쪽
고찰이라는 말은 거울, 또는 체경을 뜻하는 라틴어인 speculatus에서 온 말인데, 길 건너편에서 블랙을 염탐하는 일이 블루에게는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고, 그래서 자기가 그저 남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165쪽
말이라는 것이 반드시 효과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말 때문에 오히려 실제로 말하려는 내용이 모호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169쪽
그 죽은 남자는 아직 젊었다. 지금 그의 아들보다도 더 젊었다. 그리고 블루는 거기에서 뭔가 섬뜩한, 자기 아버지보다도 더 나이가 들었다는데서 이상야릇하고도 소름끼치는 기분을 느끼고 그 기사를 읽는 동안 실제로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야 했다. -172쪽
작가에게는 자기의 삶이 없다고도 할 수 있어요. 설령 있다고 해도 실제로는 없는 거죠. 또 다른 유령이로군. 맞습니다.-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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