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품절


한 개의 적절한 주어가 얼마나 잠재력을 발휘하는가-9쪽

내 영혼에 마녀가 깃들어 있다는 걸 금방 깨달았어요.-11쪽

책들은 소리 없이 천연덕스럽게 늘어나 집안 곳곳을 점령했고,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종종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언제 들춰볼지 알 수도 없는 책을 왜 그리 보관하고 있느냐고. 전에 한 번 읽었을 뿐 지금 내 독서 취향과는 동떨어진, 그리고 몇 년이 지나도 다시 펼칠 일이 없을 듯한, 아니 어쩌면 영영 읽지 않게 될 책들 말이다. -16쪽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우리는 축적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
[...]
책을 잃어버리는 걸 달가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차라리 반지나 시계, 우산 따위를 잃는 편이, 다시는 읽지 않더라도 낯익은 제목만으로도 우리가 과거에 누렸던 감정을 일깨워주는 책 한 권을 잃는 것보다 훨씬 낫다. -17쪽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책들은 어느 정도라고 분명치는 않지만 나름대로 정해둔 한계선을 넘어 범람하는 순간에 이른다. 한때 우리의 자존심이었던 것이 이제는 짐이다. 무엇보다도 책을 둘 자리가 없다는 게 문제다. -18쪽

매년 이곳에 들를 때마다 나는 유년기의 책을 들춰보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22쪽

여기저기서 사들인 책들은 지금까지도 모두 다 기억할 수 있지요. 서가를 만드는 사람은 인생 전체를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거든요. 결코 아무 계획 없이 모아놓은 책들이 아니란 뜻입니다. [...] 사실은 서가의 주인이 특정한 주제를 선택하고 시간이 지나면 온전한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 가장 먼저, 가지고 있지 않은 책들의 목록을 작성합니다. 그리고 그 책을 구하게 되면 그 책에서 다음 책에 대한 지시를 얻습니다. -38쪽

그런데 브라우어는 강박적인 독서가 타입이었습니다.-41쪽

책들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인식번호를 붙여 목록을 작성하는 고달픈 작업...-53쪽

'우리는 수백 년 동안 진부한 시스템을 따랐네. 그러느라고 우리 자신의 감정이라는 진정한 질서는 아예 무시되어버렸어...-56쪽

또 우리는 독서의 즐거움을 촛불로 더욱 고상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 그때 읽은 책들은 전기가 발명되기 이전 것들이어야 합니다. -61쪽

그러니까 본문의 모양, 글자의 크기, 좌우상하의 여백, 종이의 질, 양끝이나 가운데에 매겨지는 쪽번호처럼 전체를 이루는 자잘한 모양새들을 어느 누구도 무시해선 안됩니다.-61-62쪽

나는 몇 주 동안 내 연구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방랑자를 상찬하며, 그와 함께 내 서가에 꽂혀 있는 오만한 책들을 향해 기상천외한 조롱을 퍼부었다. 그저 깨끗한 책상에서 간질이는 먼지떨이와 온갖 먼지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의 시중이나 받으며 느긋하게 잠에 취하다가 가끔씩 고자세로 자기 임무나 한 번 행사하는 주제에, 자연의 위력은 고사하고 폭력이 무엇인지, 비록 그 책들 안에 쓰여 있는 얘기일지라도, 꿈에도 알지 못한다고 비웃었다.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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