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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의 책
고진석 지음 / 갤리온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미용실에 머리하러 갈 때마다 들르는 서점이 있다. 동생이랑 같이 간 날, 내가 먼저 끝나 서점 안을 서성이고 있다가 우연히 들춰보게 된 책이다. 답을 제시하기 위해 해 놓은 질문들이, 살면서 늘 궁금하게 생각했거나 한번쯤 의문을 품긴 했지만 어차피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이란 결론을 내렸기에 생각을 포기한 그런 질문들이었다.
목차를 주욱 훑다가 이런 질문이 눈에 딱 들어왔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인데, 어떻게 잘 거절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읽기 전에 머리를 스쳐가는 예상 답변은, 실제 거절을 해야만 할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멘트같은 정말 실질적인 해결책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답을 읽고 나니, 허를 찔렸다고 해야할까. 요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다지 뾰족한 답도 아니네 하고 혀를 찰지도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일견 이 시시껄렁해 보이는 대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거다.
생각해 보면 결국 거절을 하지 못하는 심리는, 거절을 했을 때 상대방이 상처를 받지나 않을까 혹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를 싫어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대부분은 가상의 시나리오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이 가상의 세계에서는 가능성이 반반인 확률에서 부정적인 경우가 늘 우세하다. 거꾸로, 거절 잘 하는(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의 기술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내가 거절했다고 나를 싫어한다면 그런 사람과는 관계가 끊어져도 좋다고 생각할만큼 강심장인걸까? 지나치면 자기본위적인 것일테고, 적절히 잘한다면 자신감 있는 사람이랄 수 있을까. 좀 다른 얘길지 모르지만,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는 영화 같은 데서 보면 늘 파멸에 이르러 한탄하는 인간에게, 악마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강요한 적 없노라고. 적당한 때 거절하고 적당한 때 물러섰다면 너는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참 얄밉기도 하지.
또 하나 눈에 띄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살을 뺄수 있을까?'였다. 빈곤한 여행을 다녀온 후, 한국에 오면 뭐든 잘먹어야지 하는 결심이 나잇살과 겹쳐져 도무지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비만 정도는 아니지만 스스로 게으름 때문에 찐 살이란 생각이 들어 늘 빼야겠다고 다짐만 하던 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심리적인 데서 원인을 찾고 있었다. 바로 욕구 불만족. 도파민은 만족과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데, 이 성분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들은 주로 설탕 같은 살을 많이 찌게 하는 것들이다. 그럼 도파민이 분비되서 즐거운 걸까, 즐거우면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는 걸까. 물론 답은 후자일거다. 배고픔은 위가 아니라 뇌가 느끼는 거라는데, 결국 정신적 허기증이 위의 허기증을 유발한다고 볼 수 있을 거다.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 책은 결국 인생의 허다한, 그리고 궁극적인 질문의 대답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게 아닐까 한다. 가장 먼저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군들 사랑해 줄 것이며, 내가 나를 들여다 보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들여다 봐줄 것인가.
어제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에서 슬쩍 흘려 들은 말. 사주와 궁합을 보러 가자는 병희(고현정)에게 철수(천정명)가 말했다.
우리가 결혼할 건데 우리가 알아서 해야지 왜 남한테 물어보냐고.
우린 스스로 너무나 불안한 존재들이라서 가끔 남의 도움이 필요한 때도 있지만 결국 해답을 찾아야 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