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하디가 나오는 영화를 찾다가 그만 이 영화에 반해버렸고 책도 구입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저 제목을 발음할 때 통통 튕기는 혀의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그게 우리나라에 오면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정도가 된다는 것도 넘나 웃기고.) 

책과 영화는 느낌이 좀 다르다. 책은 사실 인명이며, 서커스에서 쓰는 용어며 해서 진도가 잘 안 나가지만, 영화는 분위기가 정말 압도적이다. 홍보 문구의 말마따나 아주 우아하다. 처음에 이 영화를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화면으로 봐서 그런지 시각적 효과보다는 청각적 효과가 더 컸던 것 같다. 나른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배경음악과 게리 올드만을 비롯한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톰 하디의 영국식 영어. 비록 내가 좋아하는 톰 하디의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의 실망쯤이야 상쇄되고도 남을 만큼 근사한 영화다. 

사실 영화의 연결고리들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내 머릿속에서 아직 매듭지어지지 못한 부분들은 책이 해결해주겠지.


  


길럼은 토비의 뒤를 따라가면서 무수히 많은 토비가 복제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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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큰아이가 아더왕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그리고 나는 책장에서 두 줄로 꽂아둔 칸의 뒷부분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이 책을 다시 소환했다. 다시 읽어도 '참 좋다'라는 탄성이 나왔다. 2005년에 나왔으니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전혀 빛바래지 않는 책이다.  

그리고 <데미안> 이후 가장 멋진 서문도 볼 수 있다.


인간 존재들이, 다른 문화, 때로는 정반대로 충돌하는 논리,

다른 피부 빛깔, 역사적 불화에도 불구하고,
인류란 하나이며 분할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류의 미래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존재와 사물들을 
경계 없는 형제애 안에서 이어주는 
보편적 사랑의 부활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기를 바란다.


<아발론 연대기> 1권은 처음에 '아더왕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었다가, 2권까지 나온 뒤 <아발론 연대기>로 멋지게 타이틀을 바꾸어 출간된 걸로 기억이 난다. 수많은 인,지명을 나름대로 정리해가며 읽느라 여러 군데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데, 바로 전 장에서 읽었던 인물 이름도 가물가물하니 이 몹쓸 기억력을 어이할꼬. 

1권의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자면 멀린의 탄생과 아더왕의 출현이겠다. 멀린은 인간이나 인간이 아니며, 악마이나 악마가 아닌 중간계의 존재다. 멀린의 아비는 악마일지 모르나, 그 어미는 한없이 순수한 인간이며 그의 누이와 아내 역시 비슷한 속성을 지님으로써 멀린의 악마성을 계속해서 정화시키고 있다. 그는 인간이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지혜를 지니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약점과 본분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자신이 왜 이런 존재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오묘한 신의 뜻은 무엇인지, 신의 도구로서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으며 단 한순간도 흔들림이 없다. 


이 책은 부록이 부록이 아닌 듯하다. 줄을 안 칠 문장을 찾기 힘들 정도로, 신화에 대한 해박하고 핵심적인 해설이 읽는 내내 감동을 자아내게 했다. 신화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진다고 할까. 특히 김정란 선생님의 해제는 원래 시인이셔서 그런지 시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이, 이분께 글쓰는 법을 배워보고픈 소망이 생길 정도로 유려하다. 김정란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이 정신없는 연대기가 이렇게 술술 읽히지는 못했을 거다. 10년이 넘은 책인데 전혀 낡은 느낌이 없다. 그냥 어제 출간된 책을 읽는 듯한 신선함이 느껴진다. 

무협지는 어쩐지 늘 1권을 넘지 못하는데, 사람마다 궁합이 맞는 책이 있기는 한가 보다. 이 책을 구입했을 당시 3권인가 4권까지 읽고 말았는데, 올해는 종횡무진 세상을 누비는 켈트 신화와 함께 용감하게 살 수 있기를. 나는 인디언 이름으로 '용감한 불꽃의 왕'이니 말이다.

  

    

"...게다가 악은 무엇이고 선은 무엇인가? 우리는 때로 선을 위해 행동하지만 결과는 악이 되기도 하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선이라고 부르는 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악한 것처럼 여겨지는 행동을 해야 할 때도 있지. 나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네. 왜냐하면 나는 악령에 의해 잉태되었으니까. 만일 신께서 나를 근원에서 뽑아내지 않으셨다면, 나는 땅 전체에 죽음과 한탄을 뿌리고 돌아다녔을 것이네."

"... 탈리에신, 우리는 죽음에 대항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네. 죽음이란 생명이라는 긴 여행에서 잠깐 들르는 곳에 불과하기 때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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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책장을 살펴보다 내가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세 권이나 갖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의 열성팬이 결코 아닌 나는, 더더군다나 이렇게 사놓고는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작정하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2010년 전면개정판 <이기적 유전자>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 옮긴이의 말부터 서문과 권두사까지 무려 다섯 개의 관문을 넘어야 본문으로 진입할 수 있다. 다 생략하고 바로 본문을 공략할 수도 있지만 융통성 없는 나는 어쩐지 그런 걸 잘 극복하지 못한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무신론적 성향들이 은글슬쩍 고개를 든다는 점이 약간 우려되긴 한다. 간간이 이 책을 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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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표지가 검은 바탕이었을 때 양장본으로 구입했던 책을 참 오래도 묵혔다. 그리고 어느 핸가 이 책의 페이퍼백이 사은품(?)으로 딸려와 책장에는 이 책이 두 권 있다. 
어떤 책이 양장본과 페이퍼백 두 종류로 나와 있을 땐 단연코 페이퍼백을 고르게 된다. 가볍기도 하고 손에 잘 들리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은 술술 읽히고 마음에 메다꽂지 않는 구절을 찾기 힘들 정도였는데, 어쩐지 이 책만은 예외였던 것 같다. 다행히 올해에는 이 책과 잠시 소홀했던 인연이 다시 닿았는지 이제 중반을 넘어 후반을 향해 가는 중이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국적인' 세계의 안내자인 플로베르다. 과거 19세기 소설 시간에 배웠고 작품도 읽었지만, 난 정말 플로베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구나.. 그가 평생 이집트를 동경했고, 그곳에 직접 방문했으며, 콧수염의 아버지 '아부 차나브'라는 이름을 가졌었다는 것. 프랑스를 경멸했고 부르주아를 혐오했으며, 사춘기 이후 자신이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는 것. 플로베르는 자신이 실은 여자이며, 낙타이고, 곰이라고 고백하기까지 했다고 한다.역시 책장에서 이제나 저제나 내 손길을 기다리는 <통상관념사전>이 저열한 부르주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음도 부끄럽지만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늘 그 깔끔한 목차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일상적인 주제에 문학과 철학을 잘 버무리는 재주는 말할 것도 없고.  


이사를 이유로 새로운 책을 많이 들이지 못하고 있어, 지금 책장에 있는 책들은 어느새 연수가 10년을 넘겨가고 있다. 그래도 책장에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묵묵히 나를 기다려주는 책들. 어쩐지 기쁘고 고마운 마음이다.  

아. 그렇지만 알랭 드 보통 책의 흑백 도판들은 정말 곤란하다...  



사실 목적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었다. 그가 결론을 내린 대로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어디로라도 떠나는 것.

"너희는 언제 행복을 향해 돛을 올릴 것이냐?"

어떤 장소로부터 돌아오자마자 기억에서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이 바로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생각하며 보낸 과거의 많은 시간, 즉 우리가 있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낸 과거의 많은 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사랑이라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사랑할 때는 우리 자신의 문화에는 빠져 있는 가치들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도 따라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거의 환멸을 느끼지 않았다네. 환상이 없었기 때문이지.."

외로웠다. 그러나 부드러운, 심지어 유쾌하다고 할 만한 외로움이었다. 웃음소리와 동료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외로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외로움은 모두가 나그네인 곳,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사랑을 향한 좌절된 갈망이 건축과 조명에 의해 인정을 받고 또 잔인하게 기념되는 곳.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 밑에 줄을 그을 수 있다. 우리 경험에서 이제까지 무시해왔던 넓은 영역 위를 날아볼 수도 있다. 일상적인 일 속에서는 이르지 못했던 높이로부터 우리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일을 할 때 우리는 주의의 낯선 세계로부터 은근한 도움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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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st of the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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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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