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 공부법>의 저자가 몸담고 있는 세인트메리스 칼리지는 고전 100권 공부법으로 유명한 세인트존스 칼리지와 아마도 재단이 같은 것 같다. 두 학교 다 인문교육을 중시하는 대학인데, 엄밀한 의미에서 고전적인 아카데미라는 차원에서 대학이 가장 기본적인 인문교육을 중점적으로 한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일 같다.
<인문고전 공부법>은 미국에서 20년간 인문교육 강의를 해온 중국인 교수가 쓴 책이다. 이러한 이중의 시선이 처음에는 조금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고,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느낌도 은근히 깔려 있다. 그러나 그런 시각들을 적절히 걸러 읽는다면, 다소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인류문화의 고전들을 읽을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는 곁에 두고 참고하기 좋은 책인 것 같다. 이 책은 저자가 진행해온 수업의 토론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서, 저자의 목소리보다는 여러 학생들의 다양한 견해를 들을 수 있다.
암튼 이 책의 효과를 온전히 누리려면 도서관의 도움이 절실하다. 물론 이 방대한 목록들을 다 섭렵하기는 어렵지만, 관련 부분을 발췌해서 읽는 것만으로도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이런 정교한 이론들을 읽으면 인간 정신의 진보는 이미 고대에 다 완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문고전 공부법>은 지난해, 정말 정치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읽어서 그런지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책이 주는 울림은 더 크게 다가왔다.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는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에 책에 실려 있다. 여기서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윤리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거짓말도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오디세우스와 거짓말로 인한 수치심을 견딜 수 없어 하는 네오프톨레모스는 우리가 실상에서도 흔히 겪을 수 있는 크고 작은 딜레마들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에우리피데스의 <바쿠스의 여신도들>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2>에 실려 있다. 여기서는 '신이 정의롭지 않다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묵직한 물음을 제기한다. 분노에 차서 물불 가리지 않는 바쿠스(디오니소스)와 신보다 더 자비롭고 정의로운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는 카드모스. 절대자가 인간의 지식에 비추어 그 절대적 속성을 잃었을 때 과연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야 할까.
투키디데스의 <미틸레네 논쟁> <스파르타 논쟁과 전쟁의 선포> <멜로스인의 논쟁>은 모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실려 있다. 수천 년 전에 벌어진 이 논쟁들은 현재의 국제정세와 얼마나 닮아 있는지. 미국, 중국, 일본 사이에 끼어 북한과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우리 처지에서 크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군주론>은 유명한 만큼 번역서도 다양한데, 나는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다. <인문고전 공부법>에서 학생들은 마키아벨리의 정치학이 '부도덕'하다, ''비도덕적'이다, '상대적 도덕'을 담고 있다 등 의견이 분분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고 자란 우리로서는, 현실 정치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마키아벨리가 "정치적 성공을 이루려면 손을 더럽히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손을 더럽히지 않는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p.184)고 한 말에 즉각 동의하기 힘들다. 저자 역시 "정치에 대한 그의 견해는 간단하게 옳고 그름, 좋고 나쁨으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새로운 해답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고, 새로운 사유의 과정을 열었다는 데 그 의미와 역할이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정치적 성공도 아닌 사적인 이익을 위해 자신의 손은 물론 다른 사람의 손을 더럽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은 지도자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두고두고 곱씹어볼 여지가 있는 책인 것 같다.
원전의 완역본은 아니다. 어쨌든 <인문고전 공부법>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피부에 와닿을 정치인의 '부패' 문제를 다루고 있다. 홉스가 말한 부패는 "인간이 다시 본래의 '자연 상태'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했고, "인간은 정치의 힘을 빌려야만 자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고.. 문명 상태에 이른다"고 말한다. "자연 상태는 악한 본성의 부패 상태, 즉 '무정부 상태의 의미'를 갖는다. 인류가 강력한 정부를 원하는 것은 이러한 상태를 통제하고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것은 올바르고 강력한 정부를 전제로 한다.
<인문고전 공부법>에서는 파스칼의 <팡세>에서 '원죄'의 문제를 고찰하고, <캉디드>에서는 그와 대조적으로 '이성주의의 관점에서 성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문제를 다룬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레오 스트라우스'는, 우습게도 처음에 '레비 스트로스'를 잘못 쓴 것인 줄 알았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인문교육' 중심의 커리큘럼은 바로 이 레오 스트라우스를 철학적 배경으로 한다. 이 철학자가 나에게는 너무 생소해서 박성래 기자의 저 책을 조금 읽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스트라우스의 인문교육 철학은 "완벽하지 않은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도울 수 있고, 자기완성을 위해 우수함을 쌓아 '우수한 사람'을 양성할 수 있다. 인문교육은 원래 소수만이 지닐 수 있는 우수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확장'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할 수 있다. 대학 교육이 깊이 있는 인문교육을 외면하고 수박 겉핧기식의 교양교육으로 대체되는 현실에서, 이러한 고전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 언제나 문제의 해답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_플라톤(Pla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