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작년 12월 말, 육지에 눈이 펑펑 쏟아진 날 이 책을 손에 들었고 드디어 잡혔다. 그동안 몇 번을 들었다놨다 했는데, 이제야 속살을 보는 셈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이 유려한 첫 문장만 벌써 몇 번이던가. 그렇지만 읽어도 읽어도 참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글귀다. 거의 막판에는 고마코의 앙탈이 급기야 짜증스럽기까지 했지만, 문장 하나 하나가 또르르 또르르 소리를 내며 구를 듯 유려하다.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정말이지 다락방에 고다쓰를 하나 꼭 들여놓고 싶고 언젠가는 눈이 많이 오는 홋카이도로 여행을 가보고도 싶다.
사실 활자 보는 일을 업으로 하다 보니, 어느새 일을 위한 독서를 핑계로(정말 말도 안 되지만) 나를 위한 독서를 게을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뭔가 계속 읽고는 있는데, 자꾸만 바닥이 드러나고 한계가 느껴지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듯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한꺼번에 몰아닥친 일들을 끝내고 손이 비는 사이, 과거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앞날을 준비하기에는 새해만큼 적절한 시기가 없는 듯하다. 신간을 읽지 않고 자꾸만 과거에 쌓아둔 책들만 들추는 게 어쩐지 좀 게을러보이기도 하고, 뒤처지는 느낌도 있고, 해묵은 숙제에 연연하는 느낌도 들지만 올해에는 텅 하니 비어 있는 독서 목록이 완독한 날짜들로 차곡차곡 채워지기를 다짐하고 또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