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일반판 (2disc)
김지운 감독, 이병헌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김지운 필모그라피
장화,홍련
커밍아웃
반칙왕
조용한 가족

어떤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이 감독이 만든 다른 영화들은 뭘까 궁금해진다. 그 이유를 두 가지 정도 꼽아본다면, 하나는 영화가 너무 재미나서 이 감독이 다른 곳에서는 어떤 식으로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가 궁금해지고, 다른 하나는 영화가 잘 이해가 안되서 다른 영화들을 보면 혹시 맥락을 잡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이다. 이 영화는 반반이다. 근데 저 필모그라피를 보고 있으니, '장화, 홍련'은 안봤으니 제껴두고, 어딘가 묘하게 다른 구석이 있어서 공통점을 찝어내기가 내 능력 밖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병헌이란 배우와 그 카리스마에 걸맞는 세련됨이 전면에 있고, 그 이면에는 아무리 돈을 쳐발라도 양아치로밖에는 볼 수 없는 백 사장(황정민 역) 같은 싸구려의 세계가 있다. 이렇게 영화는 믿음과 배신, 현실과 꿈, 냉혈함과 사랑에의 흔들림 같은 서로 반대되는 두 세계가 모호하게 교차되면서, 결국엔 버드나무 가지를 흔드는 바람결에 모든 것이 날아가버릴 수도 있는데, 인생의 저러한 갈등들이 뭐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내공부족 때문인지 살아가면서 사람을 믿고, 그러다 배신당하고, 죽을 것처럼 그 사람을 사랑하다가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어버린다. 이렇게 상처받은 사람은 그 상처가 너무 아프고 믿을 수 없어서 죽도록 피를 흘리며 싸우고, 심지어는 사람을 땅에 산채로 파묻는 이성을 상실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발광을 해봐야 얻는 건 원하지 않은, 또 비참한 죽음 뿐이다. 인생이란 마치 입속에서 달콤한 사탕을 음미하다가 잘못해서 혀를 깨물었을 때 뒤섞여버린 그 찝찌름한 피맛같다고나 할까.

영화는 바bar에서 벌어진 난투극 씬에서 기타연주와 박수소리가 어우러진 멕시코풍의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갑자기 로드리게즈의 '데스페라도'를 떠올리게 한다. 황토색 흙먼지가 날리는 사막 어딘가 혹은 이내 피바다로 변해버릴 총잡이들의 바는 환한 조명과 현대적 실내장식을 한 깔끔한 바로 대체된 것 같다. 단순히 음악적 효과 때문일까? 아무튼 이상하게도 이 유혈이 낭자한 장면이 내게는 이 영화에서 가장 따뜻하게 느껴졌다. 

'사랑니'라는 영화에서 김정은에 대한 오해를 벗을 수 있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이병헌의 오해를 벗을 수 있었다. 이것도 연기라면 그는 정말 천재적인 배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해가 갈수록 너무 가식적이라고 느껴졌던 이병헌에게서 희귀해져버린 꾸밈없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요즘 한국영화에서 그 존재감을 물씬 느끼게 해주는 중견배우들. '범죄의 재구성'이랑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맞나?)'에서는 천호진이 그리 좋더만, 이 영화에서는 김영철이 참 멋있게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미디언에서 영화배우로 거듭난 임하룡씨도 그렇지만 선굵은 연기로 영화의 깊이를 더해주는 중견배우들을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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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7-23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좋았어요.^^ 인생이란 입 속에서 달콤한 사탕을 음미하다가 잘못해서 혀를 깨물었을 때 뒤섞여버린 그 찜찌름한 피맛 같다고나... 이 글귀가 이 영화를 제대로 표현한 것 같아요 ^^

부엉이 2006-07-2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보고싶어지는 영화 중에 하나에요!

marine 2006-10-01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영철이 너무 멋졌어요 "범죄의 재구성" 에 나오는 백윤식씨도 대단하구요

부엉이 2006-10-02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블루마린님, 원래도 좀 아저씨 취향이긴 했지만 중년의 깊은 맛이 푹 우러나온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