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 남들보다 튀는 여자들의 목을 쳐라
모나 숄레 지음, 유정애 옮김 / 마음서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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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독서모임에서 디즈니 명작동화의 원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현대의 시각으로 본질을 들여다보면 아동의 인권 유린이나 가정폭력, 노동력 착취 등 흥미로운 말들이 나왔었는데 그중 내가 제시했던 소재로 기나긴 토론을 벌인 적이 있는데, 바로 '헨젤과 그레텔'... 이 이야기의 원작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다시 한번 설명하자면 책에 나오는 남매의 어머니는 계모가 아니라 친어머니였다는 점... 가난한 부부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아이를 유기한 것인데, 내가 제시한 문제는 노동력의 부재인 엄마 vs 능력있는 마녀의 진상을 파헤쳐 보자는 것이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던 엄마와 아이들의 눈을 현혹시킬정도로 멋진 과자 집을 만들 줄 아는 마녀의 능력은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누구도 찾지 않는 곳으로 도망쳐야 했는지... 이 제시가 마녀사냥으로 연결되어 열띤 토론을 벌인 기억이 있다.

저자는 마녀의 이미지가 자신이 나아가야 할 이상적 방향을 제시해 주면서 모든 지배와 제약에 얽매이지않는 절대적 여성의 상징이라 말하고 있다. 현실에서 보여주는 마녀의 실체는 그렇지 않지만... 불명예의 낙인을 찍고 과거 남성우월주의로 집단의식을 만들어 내 마녀사냥을 자행하기까지 이 책은 그렇게 박해받았던 여성의 역사를 보여주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특히 이 책에서 말하고자하는 중요핵심은 결혼한 여성이 남편과 자식을 위한 삶이 아닌 독립을 원하는 삶을 추구하고, 여성으로서 당연한 임무인 자손을 증식하지 않거나 나이가 들어 여성성을 상실한 여성의 모습을 예시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복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억압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사상이 엉뚱한 사상으로 퇴색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페미니즘의 개념이 여성혐오나 남성혐오로 패를 나누지않고 그저 권리에 의한 기회의 평등만을 놓고 판단하는 것이 옳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페미니즘 작가라 하면 리베카 솔닛을 떠올리는데, 최근 그녀의 그림책 '해방자 신데렐라'를 보고 과거 여성이 신분상승을 위한 일종의 전쟁과도 같은 경쟁을 벌였다면 현재는 여성의 독립적 자유를 통해 자신만의 삶을 실현하는 나의 본 모습을 찾는 이야기를 보며 목적과 가치에 따라 변화된 세상은 인간의 인식 또한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마녀>를 만나보시길...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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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공적인 연애사 - 당신을 사랑하기까지 30만 년의 역사
오후 지음 / 날(도서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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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계산에 의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역사를 만드는게 어딧어!라고 생각했지만 티비 속 드라마를 보면 사랑없이도 계획적이 접근이 가능하고 의지에 따라서 사랑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사랑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으로 나만의 이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장 공적인 연애사>를 보며 고질적인 생각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 역사상 존재하는 연애사란 사적인 개념에 앞서 공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과 목적에 따라 연애의 개념이 진화했다고 하니 이 책은 너무나 생소하게 다가왔다.

이 책을 만나기 전, 연애에 관한 어학적인 개념부터 익혀야 할 것 같아 찾아봤는데, 연애란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게 되어 사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저 서로에게 관심이 생기고 마음이 이끌려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성적인 매력에 이끌린다는 전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하는 연애사의 세계를 알 수 있었다.

달콤 쌉싸름한 느낌의 연애사가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소재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역사서로서 인간의 진화와 함께 변화된 연애사 그대로를 대면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페미니즘의 문제를 시사할 수 있을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동안에 접하지 못했던 연애학을 만나 듯 동물적 욕망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성적인 연애의 역사로 만날 것이다.

 

 

 

 

<가장 공적인 연애사>에서는 과거를 보낸 인간의 연애사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발달을 통한 진화는 우리의 신체와 뇌를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가부장적 씨족사회였던 원시시대에는 당시 무규율의 성교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증명된 바 없는 추론이지만 무규율의 성교란 가족, 형제자매, 자식에 상관없이 성행위에 규칙이 없다는 뜻인데 신화에서 말하듯 태초에 천지를 창조해 아담과 이브를 내리신 창조론과 직립보행을 하면서 일류의 진화가 시작되었다는 진화론을 옅보면 극소수의 인간이 번식을 통해 인류의 발전을 가져온 사실은 확고한 듯 하다. 어쨌든 과거에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것 만큼은 확실하므로 모계사회를 유지했다. 하지만 권력은 남성으로부터 탄생되었는데, 그 이유는 근친상간을 금지하면서 만나는 상대가 한정되었기에 부족간의 결합이 요구되었고 중계적인 역할을 남성이 주도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기원전 3000년경의 이집트 신화였다. 흔히 신화라고하면 그리스로마 신화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집트 신화는 다소 생소한 느낌이어서 더욱 호기심을 느꼈다. 암흑뿐이었던 세계에 최초의 바다의 신이 탄생했는데 그 신의 이름은 아툼이었다. 태어나 존재하긴 했으나 혼자뿐이어서 너무 심심했었고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자위를 했는데, 아툼의 존재가 너무나 신성한 나머지 자위만으로도 새 생명이 탄생하였고 그렇게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막달라 마리아가 연상될 것이다. 당연히 이 책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언급했는데 그 또한 무척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어 혈연에 의해 연결된 종족의 의미가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옅볼수 있었다.

중세사회로 들어가 가부장적인 혈족을 보호하기 위한 연대를 만나면서 가족(family)의 어원이 노예(famulus)라는 것, 한 사람이 집 안에서 거느리는 노예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고 과거 오래도로 이어진 남성 우월사상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인류의 발전을 거듭하며 인간 사상 또한 변화를 가져오고 연애사를 통한 페미니즘의 문제점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다. 현재의 연애는 개방적이고 자유롭다 하지만 보이지않는 힘과 삐뚤어진 사랑은 여전히 문제시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줄 알면서도, 왜 우리는 계속 연애에 골몰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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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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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다보면 이야기 중간중간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몇 페이지 중에서...라며 생뚱맞고 특별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틈새 지식으로 무척 유쾌하고 신기한 역사, 과학, 진화 등의 내용이 들어있는데 읽는내내 "설마~" "진짜?"라며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사실... 열세 살 때부터 특이한 이야기를 들으면 잊기전에 기록을 해 놓았다던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TV, 신문, 학교, 그리고 일상에서 들은 특이한 이야기들의 자료를 찾아 확인하고 이것들을 수집했다고 한다.

저자의 천재적인 면은 엉뚱함에서 발현된 것으로 그의 소설 '개미'도 20년간 개미들의 움직임과 습성을 파악하여 만들었는데, 그 호기심이 여전하다는 것읏 역시나 그의 머릿속은 공상의 보물창고가 아닐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게 되었다. 그동안 한 페이지씩 만나던 지식창고를 이번 기회에 개정판으로 만나게 되어 너무나 반가웠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같이 읽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잡다한 백과사전"이라 말하고 싶다.

총 12장의 소주제로 문명의 시작과 마지막을 연결하는 인문학적, 과학적, 신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폭넓은 지식의 향연을 보여준다. 특히 '죽음'의 폭스 자매에서 신의 말씀을 전한다는 목사의 딸들이 들은 귀신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고 발견했다는 뼛조각은 진실과 거짓에 있어 인간이란 이성을 가진 이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고 영혼의 존재를 물질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맥두걸 박사의 21그램 이론'도 무척 흥미로웠다. 또한 '초소형 인간'에서 소개한 종들의 소형화는 세기가 지나면서 축소된 생물의 진화를 보여주는데 이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미국의 생물학자가 가설을 내세웠다고 하는데 가설은 가설일뿐... 하지만 인류의 발달을 통한 간소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예로들면 왠지 설득력있는 주장인듯도 했다. 책에서 말하듯 500개가 넘는 기묘한 지식의 향연은 아마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만나면 이야깃거리가 많아진다. 가끔 유명인사들을 보면 천재성을 타고난 인간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쩌면 왜?라는 질문과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호기심의 발현은 무엇을 시작하기에 발돋움의 계기가 되기도 하고 관심을 통해 찾아내고 연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의 상상력을 마음껏 훔쳐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다.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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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 자존감, 나르시시즘, 완벽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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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를 처음 마주하는 순간, 미국 찰스 쿨리가 제시했던 '거울 자아 이론'이 생각났다. 거울 자아 이론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애초에 자아는 사회적인 것으로 인간은 타인의 의견에 반응을 하며 자아를 형성한다. 나 자신의 의지보다는 타인이 반응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행위에 의해 비춰지는 자아로 크게 세가지로 분류하는데, 그 첫번째는 다른 사람에 비친 나, 두번째는 나의 모습을 타인이 보면 어떠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 마지막 세번째는 그로 인해 느끼는 수치심 등의 감정으로 나 중심적인 자아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받는 사회적 자아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 책을 마주하면서 거울처럼 비춰지는 내가 진정한 모습의 나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타인의 행복한 일면을 보고 나만 불행한 사람이다 느끼진 않는지, 그로인해 삶의 의욕이 없어 의기소침해 있진 않은지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이 바로 '셀피'다. 최근 누구나 사용하고 일상이 되어버린 SNS를 통해 이상향을 찾고 그것을 따라하며 나도 똑같이 소확행을 느낀다면 그것은 나의 행복이 아닌 한 컷의 SNS 속에 있는 한 컷의 사진을 따라 행복해 한 척 한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보면서 자아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완벽한 세상 속에 살아남기 위해 싸워 이겨야 할 사람이 나 자신인지 아니면 타인의 모습인지 신중히 고민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아는 정신과 사회, 그리고 문화를 모두 흡수시킨 것으로 '셀피'에서는 심리사회학자, 정신분석학 학술자료와 사례, 보고서, 인터뷰 등을 통해 다양한 자아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자기혐오로 인해 자살을 시도했던 데비와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자아가 붕괴된 존의 사례였다. 두 가지 사례가 다른 점은 스스로 벼랑끝에 선 자아와 사회적으로 무너진 자아다. 데비는 살아있는 것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극도로 높은 행복의 기준을 결정한 그녀는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껴 자살을 시도한 사례로 자아의 붕괴를 가져왔다. 이상적인 모습은 비교대상이 되어 문화적 자아가 무너졌던 사례를 보여준 존은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았다 느꼈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자아...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살고 엄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존에게 망각이 지배하는 분풀이를 하게 되는데, 그로인해 존에겐 분노만이 남았고 절도와 범죄, 폭력과 마약에 손을 대면서 어둠에 물들게 된다. 저자는 자아가 무너져 문화의 지배를 받는 상황을 보면 결국 자아와 문화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럼 현대인들에게 근접한 문제적 자아는 무엇일까? 완벽한 인간 창조를 위한 케임브리언 지노믹스의 사례를 보면 DNA설계를 통한 영원한 인간의 삶을 만드는 것인데 대표의 발표자료가 논란이 되자 그의 자아는 균형을 잃게 된다. 여기서의 문제점은 집단이 반응하면 그에 순응해야 하는 압력이 있는가하면 또 그에 반박하는 집단이 생기기때문에 균형을 갖춰야 한다고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말하는 자아는 사전적 의미는 있으나 형태가 없어 손에 잡히지 않고 보이지도 않기때문에 여전히 어렵다. 마치 나 자신과의 끝없는 투쟁같다. 이 책을 통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말한다면 이상적인 누군가는 동경하며 그의 삶을 따라하고자 할 때, 무조건 따라하기보다 나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고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이 아니라 나의 길은 이것이라는 확신을 얻을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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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이름 -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
권근영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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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렸을 적... 무엇을 잘 했더라?...

얇은 나무 끝에 붙은 황을 마찰시키면 불이 붙는 성냥이 있었다. 그것을 정교하게 쌓아 올려 여러가지 문양을 만들어내고 색을 입혀 정사각의 모자이크를 만들어 나름 미술활동이라고 놀았던 시절이 있다. 혼자있는 시간에 성냥 한 박스만 있으면 몇 시간이고 시간가는줄 몰랐는데, 그때문에 부모님께 엄청 매를 맞았던 기억도 있다. 공부나 하지 쓸데없이 살림살이를 낭비하고 못쓰게 만든다고 말이다. 그때는 종이인형도 사주지 않으면서 그깟 성냥 한 박스때문에 혼이 났다는 것에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가난탓에 무엇하나 허투로 낭비를 할 수 없었기때문이었다. 그건 그렇다쳐도 늦둥이 남동생의 학업도 걱정해야 했던 내 삶은 매일이 전쟁과도 같았는데, 일찌감치 취업해서 살림에 보탬이 되야 했던 나는 나중에 남편 잘 만나 살림이나 하며 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완전한 이름>과 함께 기름종이에 새겨진 글귀는 여전히 불투명한 여성의 자리를 보여주는 것 같아 뭉클한 감정이 앞섰다. 저자가 말했듯이 여성 미술가에겐 거장이나 철학자란 호칭보다 살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취미삼아 그림을 그린다는 말에 여성은 지금도 세상과 대면하여 편견과 싸우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럼 책 속의 여성 화가의 작품 속에 그녀들의 삶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만나보도록 한다.

 

 

<완전한 이름>은 길을 떠나다, 거울 앞에서, 되찾은 이름들...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열 네명의 여성 예술가의 삶을 보여준다. 그녀들의 삶이 순탄치 않았음을 예상했지만 현실은 더욱 가혹하기만 했다. 자신의 위치에서 매일의 삶을 살아낸 그녀들은 편견이란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이 하고자했던 이상과 꿈을 좇았고 지금에야 누군가의 기록을 통해 이름이 새겨졌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누구나 입학 가능했던 바우하우스, 당시 남성보다 더 많은 여성이 입학하면서 인원을 제한하는 할당제를 도입해 정상적 교육보다 직조공법을 가르치는 차별을 두기도 했다. 후에 유대인 탄압이라는 절망의 시대를 보낸 프리들 디커브란다이스는 수용소에 수감되면서도 아이들의 그림을 만들고 지켜냈다고 한다. 어쩌면 이는 목숨을 건 사투였을지 모른다. 열정이 인간을 지배 가능하다고 하면 강압과 탄압은 죽음이 아닌 이상 인간을 지배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빈곤을 얘기해도 남루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는 정직성의 삶이 가장 인상 깊었다. 어렸을 때 공장 지대를 전전하며 살았다는 그녀, 두 번의 결혼은 가정폭력에 의해 무너졌고, 세 아이의 육아는 작업에 전념할 수 없는 주부란 이름의 삶에 가려졌다. 다행히 자신의 힘으로 땅과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직접 주문한 문패와 그의 옆을 지키는 자화상이 그녀에게 뿌듯하다고 했지만, 독자인 나는 마음이 시렸다. 쉽지 않았을 그녀의 삶이 머릿 속어 그려졌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그녀의 시간은 허투로 쓰이지않았기에 조용히 응원의 메세지를 남긴다. 또한 정직성의 작품, 서울 변두리 동네의 연립 주택은 내가 쌓아올린 성냥개비처럼 네모반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빛이 보이는 듯 하면서도 그늘진 창문은 왠지 여전히 가명을 쓰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대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그녀들의 이름이 완전하고 짙게 새겨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잘 했고 지금도 잘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잘 될거니까 말이다. 위대한 그녀들의 <완전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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