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이름 -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
권근영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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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렸을 적... 무엇을 잘 했더라?...

얇은 나무 끝에 붙은 황을 마찰시키면 불이 붙는 성냥이 있었다. 그것을 정교하게 쌓아 올려 여러가지 문양을 만들어내고 색을 입혀 정사각의 모자이크를 만들어 나름 미술활동이라고 놀았던 시절이 있다. 혼자있는 시간에 성냥 한 박스만 있으면 몇 시간이고 시간가는줄 몰랐는데, 그때문에 부모님께 엄청 매를 맞았던 기억도 있다. 공부나 하지 쓸데없이 살림살이를 낭비하고 못쓰게 만든다고 말이다. 그때는 종이인형도 사주지 않으면서 그깟 성냥 한 박스때문에 혼이 났다는 것에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가난탓에 무엇하나 허투로 낭비를 할 수 없었기때문이었다. 그건 그렇다쳐도 늦둥이 남동생의 학업도 걱정해야 했던 내 삶은 매일이 전쟁과도 같았는데, 일찌감치 취업해서 살림에 보탬이 되야 했던 나는 나중에 남편 잘 만나 살림이나 하며 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완전한 이름>과 함께 기름종이에 새겨진 글귀는 여전히 불투명한 여성의 자리를 보여주는 것 같아 뭉클한 감정이 앞섰다. 저자가 말했듯이 여성 미술가에겐 거장이나 철학자란 호칭보다 살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취미삼아 그림을 그린다는 말에 여성은 지금도 세상과 대면하여 편견과 싸우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럼 책 속의 여성 화가의 작품 속에 그녀들의 삶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만나보도록 한다.

 

 

<완전한 이름>은 길을 떠나다, 거울 앞에서, 되찾은 이름들...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열 네명의 여성 예술가의 삶을 보여준다. 그녀들의 삶이 순탄치 않았음을 예상했지만 현실은 더욱 가혹하기만 했다. 자신의 위치에서 매일의 삶을 살아낸 그녀들은 편견이란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이 하고자했던 이상과 꿈을 좇았고 지금에야 누군가의 기록을 통해 이름이 새겨졌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누구나 입학 가능했던 바우하우스, 당시 남성보다 더 많은 여성이 입학하면서 인원을 제한하는 할당제를 도입해 정상적 교육보다 직조공법을 가르치는 차별을 두기도 했다. 후에 유대인 탄압이라는 절망의 시대를 보낸 프리들 디커브란다이스는 수용소에 수감되면서도 아이들의 그림을 만들고 지켜냈다고 한다. 어쩌면 이는 목숨을 건 사투였을지 모른다. 열정이 인간을 지배 가능하다고 하면 강압과 탄압은 죽음이 아닌 이상 인간을 지배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빈곤을 얘기해도 남루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는 정직성의 삶이 가장 인상 깊었다. 어렸을 때 공장 지대를 전전하며 살았다는 그녀, 두 번의 결혼은 가정폭력에 의해 무너졌고, 세 아이의 육아는 작업에 전념할 수 없는 주부란 이름의 삶에 가려졌다. 다행히 자신의 힘으로 땅과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직접 주문한 문패와 그의 옆을 지키는 자화상이 그녀에게 뿌듯하다고 했지만, 독자인 나는 마음이 시렸다. 쉽지 않았을 그녀의 삶이 머릿 속어 그려졌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그녀의 시간은 허투로 쓰이지않았기에 조용히 응원의 메세지를 남긴다. 또한 정직성의 작품, 서울 변두리 동네의 연립 주택은 내가 쌓아올린 성냥개비처럼 네모반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빛이 보이는 듯 하면서도 그늘진 창문은 왠지 여전히 가명을 쓰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대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그녀들의 이름이 완전하고 짙게 새겨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잘 했고 지금도 잘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잘 될거니까 말이다. 위대한 그녀들의 <완전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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