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배틀! 공룡 컬러링북 카드배틀! 컬러링북
귀엽곰 지음 / 베어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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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린이 특히 남자 유아들의 공통 관심사 중 하나는 로봇과 공룡입니다. 거의 다르지 않더군요. 남아들 대부분이 공룡 좋아해요. 우리 집 2호도 예외가 아니고요.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공룡 컬러링북을 만났습니다.

<카드배틀! 공룡 컬러링북>은 36종의 다양한 공룡 일러스트가 수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육상, 해상, 공중을 망라한 다양한 공룡 일러스트가 좌측면을 채웁니다. 그리고 반대 페이지는 옆면과 동일한 일러스트의 공룡을 아이들이 직접 색칠할 수 있도록 빈칸으로 남겨놓았어요.

공룡 백과사전에서 보았던 낯익은 공룡들이 등장해요. 살았던 시대와 크기, 체중, 식성, 발견된 곳과 같은 기본 프로필과 함께 소개되어 있어요. 부모가 어린이 독자들에게 각 공룡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일종의 팁이지요.

똑같은 색으로 색칠해도 되지만 아이가 마음대로 창의력을 발휘하며 색칠하고 그려도 돼요. 파란 공룡을 빨간색으로 칠한다 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이의 상상력이 나래를 펼치는 시간이지요.

책을 보며 어린 시절 보았던 공룡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공룡의 제왕이자 무법자 '티라노 사우루스', 지금의 코뿔소와 닮은 '트리케라톱스', 고슴도치처럼 등에 뾰족한 가시들이 촘촘히 박힌 '스테고사우루스', 진화론을 가르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시조새'까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공룡들이 제법 많이 등장해서 반가웠어요.

공룡 백과사전, 과학 교과서 그리고 <쥬라기 공원>같은 영화를 통해서 공룡의 존재와 외모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세대이기에 <카드 배틀! 공룡 컬러링북>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워크북이라고 생각돼요.



그런데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아요. 이 책은 컬러링북 외 또 하나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요. 바로 공룡 카드를 통한 배틀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책의 후반부에 공룡 배틀 카드 73종이 부록처럼 탑재되어 있어요. 가위로 페이지를 잘라서 카드를 전부 오려줍니다. 공룡 카드 장수가 상당히 많아서 가위로 전부 오리는 과정이 조금 번거롭긴 해요. 점선을 뜯어내는 방식으로 제작이 되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살짝 남아요. 하지만 카드 배틀이라는 기획은 탁월해요!

73종의 공룡 카드를 잘라서 배틀 게임을 할 수도 있고, 컬러링북 해당 공룡 페이지의 빈칸에 붙일 수도 있어요. 책이 도착하자마자 우리 집 2호는 카드를 오려달라고 성화였어요.

유아 그림책이라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1호가 공룡 카드를 보더니 달려옵니다. 그리고 셋이 앉아서 공룡 배틀 카드 게임을 시작했어요. 앉은 자리에서 보드게임이 시작된 것이지요.

카드 배틀의 규칙은 단순해요. 모든 카드를 잘 섞은 후 뒤집은 채로 가운데에 쌓아 놓고 플레이어들이 순서를 정합니다. 그러고는 순서대로 쌓인 카드를 뒤집는 것이죠. 각 카드에는 해당 공룡의 HP가 기록되어 있어요. 최저 50부터 최고 500까지의 HP가 그 공룡의 파워를 의미해요. 당연히 파워가 높은 공룡이 이기는 것이죠.

같은 수치의 HP를 가진 공룡이 나오면 카드 아래쪽에 기록된 공격력, 방어력, 속도의 순으로 수치를 비교해서 승패를 가립니다. 카드를 뒤집어서 이긴 사람이 나머지 사람의 카드를 가져가고 게임이 종료되었을 때 가져간 카드의 숫자가 가장 많은 사람이 승리하게 돼요.

또 하나의 게임 규칙은 우리 집 1, 2호가 창의적으로 만들었어요. 한 사람이 카드를 전부 동일한 숫자로 나눕니다. 각자 패(?)를 갖고 전략을 짭니다. 어떤 카드를 먼저 낼 것인가에 대한 적절한 카드 제시 순서를 배분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머지 방식은 위의 1번 게임 방법과 동일해요. 그러나 아이들이 나름대로 HP가 낮고 높음에 따라 순서를 정해 상대방의 카드를 짐작하고 예상하며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지요.

컬러링북이 어린이 독자들의 창의력과 상상력 증진에 도움을 줘요. 카드 배틀은 게임의 규칙을 창안하고 배우며 HP 숫자를 계산하고 비교하는 등의 수리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줍니다.

우리 집 1, 2호의 성화에 못 이겨 하루에 평균 3회 이상은 꼭 카드 배틀을 하고 있어요. 게임을 하다 보면 은근 승부욕이 발동해서 나도 모르게 게임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해요.

아이들의 기나긴 겨울 방학이 이어지고 있지요. <카드배틀! 공룡 컬러링북>은 부모님들이 자녀들과 함께 공룡 배틀 보드게임을 할 수 있기에 매우 강추하고 싶은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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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자유로운 삶을 위한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장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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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우리네 일상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사고와 반추의 기능을 앗아간 지 오래다. 세월의 속도가 심히 빠르다. 잠시도 쉼을 허락지 않는 시간의 재촉 앞에 오늘 맺지 못한 생각을 기억의 창고 한편에 억지로 쑤셔 넣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만이 사고의 회로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돌아볼 겨를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의 여유가 있음을 의미한다. 생각할 때 인간 본연의 가치 또한 빛난다. 혼돈과 야만의 시대를 살다 간 동양 철학의 거인 '장자'를 만나보아야 할 이유다.

새해 들어 마음먹고 펼친 책이다. 국내 중국 문학의 대가인 김원중 교수의 번역이라는 사실 하나로 주저함 없이 택했다. <장자>는 현존하는 총 33편의 글을 내편, 외편, 잡편으로 분류했다. 책이 가지는 외형적 특징은 역자의 깨알 주석이다. 거의 책의 매 페이지 하단에는 본문의 상세한 주석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장자>는 많은 이들이 스스로가 난세를 구할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믿으며 자웅을 겨루던 시절, 팽배해있던 인간 탐욕의 정신을 무위의 사유로 계도한다. 노자가 중국의 사상적 주류인 무위자연의 도를 배태했다면 장자는 노장사상을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발전시켰다. 노자의 <도덕경>이 매우 사색적인 반면 <장자>는 비유가 많은 한 권의 이야기책과 같다.

장자가 설파한 그의 사상적 핵심은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세상에의 거부다. 투쟁이나 전복과 같은 물리적 대립이 아닌 인간 개인의 본성과 스스로의 자각을 통한 정신의 자유를 추구했다. 세상은 인간의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며 이루고 성취하는 과정 속에서 찾는다. 그 안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도모하며 인간의 참된 가치를 설정해버리니 현대인들의 삶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정밀한 시계 속 부품과 같다.

한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인간 소모의 현장 속에서 만나는 장자의 가르침은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다. 자각과 이해가 생의 나락으로 밀어붙이는 우리의 현실에 카운트 펀치를 날리기에 속이 다 후련하다.



친구 '노담'이 죽었는데 곡만 잠깐 하고 나온 '진일'에게 노담의 제자가 물었다. "친구가 죽었는데 어찌 간략하게 곡만하고 나오십니까?" 진일의 대답 속 노장사상의 정수가 묻혀있다. "이 세상에 온 것은 올 때가 되어서이고, 세상을 떠난 것은 갈 때가 되어서이다. 올 때와 갈 때를 정확히 따른 것이기에 슬픔이나 즐거움이 끼어들 수 없다."

즉, 인간의 죽고 사는 것이 자연의 이치를 따른 것이니 크게 슬퍼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모든 것에 있어 인위적이지 않으며 자연의 순리를 따르기를 강조했던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이 장자의 문장 안에 그대로 숨 쉰다. 다만 장자의 글은 노자의 글보다 조금 더 풍자와 해학이 묻어난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어서 베어 가고, 옻나무는 쓸모가 있어서 잘라간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음의 쓰임을 알고, 아무도 쓸모없음의 쓰임을 알지 못한다." p138


말 그대로 쓸모 있음만이 갑으로 여겨지는 세대를 향한 일갈은 그 자체로 촌철살인이다. 쓸모라는 유용성으로 인간의 모든 것을 재단하는 미친 세대에 대한 냉소가 문학적 카타르시스로 다가온다. '쓸모없음의 쓰임'이라는 역설 또한 장자만이 펼칠 수 있는 언어유희임과 동시에 노장 철학의 정수다.

폭력과 광기가 일상이 된 군웅할거의 전국시대, 장자 선생의 가르침이 내뿜는 아우라는 범상치 않다. 하지만 현실 정치 무대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권력과 명예, 탐욕의 정신이 지배하는 세태 속 노장사상은 비주류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노장사상이 조금씩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물질만능과 배금주의라는 병든 시대정신에 대한 반대로 이해된다. 부와 권력과 명예만이 인간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김 받는 시대, 그렇기에 어떻게든 남을 밟고 일어서 성공해야만 한다는 약육강식의 시대 속 장자의 사상은 빛을 발한다.

얽매임이 없을 때 진짜 삶을 돌아볼 수 있다. 미련을 갖고 움켜쥔 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뭔가 자꾸 만들고 하려는 일 속에서 자아를 찾는 가련한 사람들, 비전과 명분이라는 포장지로 자신의 일을 아름답게 꾸미는 사람들, 공명심에 찌들어 뒤를 돌아볼 수 없는 성찰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사람들.

800여 페이지 벽돌 책의 뚜껑을 덮는다. 억압과 매임이 절대 자유의 자족함 속 담박한 삶으로 대치된다. 기운 베옷을 입은 채 호탕한 웃음을 웃으며 자신의 사상을 설파했을 장자 선생의 가르침이 사뭇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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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쩌미 2 민쩌미 2
김기수.권수영 그림, 최재연 글, 서후 콘티, 민쩌미 원작 / 샌드박스스토리 키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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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1호와 함께 재미있는 너튜브를 본 적이 있어요. 1인 다역하는 여자 너튜버였는데 혼자서 다양한 캐릭터를 장면을 바꿔가며 촬영을 했더라고요. 콘텐츠가 흥미로워서 몇 번 봤습니다.

얼마 전 그 너튜브의 콘텐츠를 소재로 책이 나왔습니다. <민쩌미>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였어요. 책이 도착하자마자 1호가 순삭 완독을 하더라고요.

내 차례가 되어 차분히 앉아서 읽었습니다. 책은 민쩌미라는 여중생 캐릭터가 주인공이고, 민쩌미를 둘러싼 친구들과 가족들의 요절복통 일상의 이야기들을 다룬 만화책이에요.

생활밀착형 유머가 적절히 뒤섞인 스토리가 초등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만하더라고요. 이미 너튜브에도 많은 콘텐츠들이 올라와 있는 상태이기에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는 데 큰 무리가 없겠다 싶었어요.

벌써 1권이 나왔고 이번에 <민쩌미 2>가 출시되었는데 총 10화의 단편 스토리가 수록되어 있고 중간에 흥미로운 퀴즈가 삽입되어 있기에 만화와 함께 약간의 액티비티까지 이용할 수 있는 기능적인 아동 만화책입니다.

민쩌미는 예측불가의 말괄량이 소녀로서 초긍정 성격의 소유자예요. 그리고 그녀의 단짝 친구들인 효율과 심소해는 민쩌미와 함께 학교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인물들이지요. 그 밖에 남자 사람 친구들인 공차두, 운태니, 강한잼, 궁궐 등은 민쩌미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인물들이고요.

또한 민쩌미의 아빠와 엄마, 언니 민서니와 남동생 민일은 민쩌미 가족의 단란함을 상징하는 인물들로 등장해요.

이번 2권에서는 민쩌미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남자 사람 친구들과 그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몇 편 등장해요. 새롭게 정해진 동아리에서 자리를 배정하는 시간에 남자 사람 친구들이 서로 민쩌미의 짝꿍이 되고 싶어서 경쟁하는 모습을 보며 민쩌미는 행복해하죠.

그러나 민쩌미는 그것이 모두 남자 사람 친구들이 저마다의 이유가 있기에 그랬다는 속 사정을 모르고 혼자만의 착각 속에서 행복해하는 것이었어요. 나름의 개그 반전이 있는 대목에서 빵 터집니다.

또한 혈액형별 성격의 유무와 MBTI 별 주말 보내는 법과 같은 에피소드는 역시 중학생들이 가질만한 현실적인 관심과 즐거움을 정확히 집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혈액형으로 성격을 논하고 MBTI로 성향을 나눴던 경험이 있기에 더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지요.



4화는 민쩌미 가족의 리얼 일상을 다루었기에 더 재미있습니다. 민쩌미 집 화장실에 누군가 큰일을 보았는데 그만 변기가 막혀버렸어요. 민쩌미 삼남매는 난리를 칩니다. 누가 범인이냐고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그만 아빠가 범인으로 지목되고 말아요.

아빠는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변명을 대는 순간 눈치 없이 새버린 방귀로 인해 더욱더 범인의 누명을 벗을 수 없게 되었어요. 아빠는 자기의 응가가 아님에도 범인으로 몰리는 수모를 당한 후 진범을 찾기 위해 수사망을 좁혀 갑니다. 과연 아빠는 진범을 찾을 수 있을까요?

또한 2화에서 민쩌미가 축구공에 맞아 잠시 보건실에 가게 된 사건이 일어나요. 그 와중에 점심을 거른 민쩌미를 위해 민쩌미 자리에 누군가가 삼각김밥과 딸기 우유를 가져다 놓지요. 민쩌미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사람 친구를 떠올려봐요. 본 에피소드에서는 민쩌미를 위해 간식을 준비한 사람을 밝히지 않고 끝내요.

그런데 책의 마지막에 쿠키 만화라고 해서 2화에서 민쩌미를 위해 간식을 가져다 놓은 인물이 누구인지를 밝혀주죠. 마치 마블 시리즈 영화에서 마지막에 쿠키 영상을 남겨놓듯 민쩌미 시리즈에서도 쿠키 만화로 독자들에게 깨알 재미를 선사하네요.

책은 3권 출시를 미리 보기로 공지하듯 끝납니다. 3권 출시를 기다리게 만들지요. 우리 집 1호도 3권 나오면 또 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반응이 좋아요.

누구나 간직한 학창 시절의 깨알 일상 속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너튜브와 만화책으로 다시 소환한 출판사의 기획이 돋보입니다. 부모들은 "나도 학교 다닐 때 저런 일이 있었는데 요즘 애들도 비슷한 관심사를 갖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읽게 돼요. 어린이 독자들은 자신들이 경험하는 현실의 이야기들이 책 속에서 재미있게 펼쳐지기에 더 흥미롭게 다가갑니다.

무거운 머리를 식힐 겸 꺼낸 만화책 한 권으로 잠간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아이들 또한 학교와 학원 숙제들로 복잡한 머리를 쉬게 할 때 이런 만화책 한 권이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아요. 3권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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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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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주의로 대변되는 에피쿠로스 철학이 가장 많이 받는 오해와 누명은 이들의 사상이 현대의 질펀한 변태적 향락으로 이해되기에 그렇다. 하지만 철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독자라면 에피쿠로스 학파가 주장한 쾌락의 참된 본의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주장한 쾌락의 관념은 모든 고통의 부재를 말하는 '아포니아'와 마음이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참된 평안을 갖게 되는 '아타락시아'로 표출된다. 세계와 인간 욕망, 고통에 대한 바른 지식을 통해 얻게 되는 아포니아와 아타락시아는 필연적으로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다.

고무적인 즐거움과 날아갈 듯한 기쁨, 미칠 것만 같은 환희는 동적인 쾌락이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인간 고통의 부재, 그냥 평안과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에 대한 관점으로 기술했다. 매우 소극적이고 정적이며 수동적 의미에서의 쾌락 관념이 탄생한 것이다.

인간의 불행은 어떻게든 외부적 고통에 기인하며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불안과 흔들림으로 인도하는 요인이다. 그렇기에 에피쿠로스에게 있어 참된 기쁨과 즐거움은 어떠한 고통도 없이 지속 가능한 평정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며 이것이 그가 추구한 참된 쾌락이며 최고 선이다.

본서 <에피쿠로스 쾌락>은 너무나 많은 오해 속에 가려져있던 에피쿠로스 철학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저작이다. 이번에 에피쿠로스의 현존하는 8편 원고 전체의 헬라어 완역본이 독자들을 만났다.

주목할 점은 에피쿠로스 철학에 대한 이해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에피쿠로스는 유물론자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물질적인 것이라는 데 동의하며 모든 신화적 개념에 대한 배격이 그의 철학적 사유의 기저다.

신 존재에 대한 배제는 죽음 너머 내세에 대한 부정으로 표현되었고, 감각에 의한 인지, 지성에 의한 인식을 토대로 실제 눈에 보이고 피부에 와닿는 것만이 사실이며 진리임을 의심치 않았다. 어찌 보면 매우 인간 중심적이다.

또한 그는 쾌락, 즉 행복은 이성에 의해 절제되고 지도 받아야 함을 말한다. 관능적이며 방탕한 쾌락에 탐닉하는 것이 그의 쾌락주의가 가진 본의가 아님을 알기에 인간 이성은 더욱더 중요하다. 어찌 보면 그의 사상과 대척점에 있었던 인간 이성을 강조한 스토아 철학과 결을 같이 한다고도 느껴진다.

실제로 말년에 방광결석으로 인한 배뇨장애로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죽음을 맞이한 그가 죽음의 침상에서 스토아적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는 그가 추구한 쾌락주의의 일면이 스토아 철학과 완전히 이질적이지만은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고통 없이 마음이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이 진정한 즐거움, 쾌락임을 강조한 고대 철학자의 가르침은 불확실성의 시대 속 앞을 향해 달려가는 복잡한 현대인의 심성을 건드리기에 매우 매력적인 철학이며 세계관이다.



성경 사도행전 17장에는 사도 바울이 아덴(아테네)에서 에피쿠로스, 스토아 철학자들과 변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부활을 전하는 바울의 메시지가 신 존재와 내세를 배제한 이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실존의 문제를 매우 라이트 하게 만든다. 이 세상에서 고통 없이 근심 없고 평온한 행복을 추구하라! 그것이면 족하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현대인이 추구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가 녹아있다. 고통 없이 마음이 평안한 삶을 소박하게 추구하는 것.

이쯤 되면 인위적인 것을 거부한 채 무위자연을 설파한 노자를 소환케 한다. 서양의 노자, 에피쿠로스.

고통의 부재 속 마음을 지속적으로 평온케하는 쾌락주의가 무분별한 방종을 일삼는 향락의 추구가 아님을 배웠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인간사에 고통이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고통은 인간 실존에 있어 필연이다.

우리는 모두 고통받게 되어있고, 고통받으며 죽을 것이다. 근본적인 고통의 부재는 없다.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에피쿠로스는 고통과 죽음을 굳이 현세에 소환하지 않는다. 그것을 씻어낼 수 있는 사람은 평온을 얻을 것임을 말할 뿐.

적은 분량이지만 책을 펼친 열흘간 지적 고문의 시간이다. 머리를 바이스에 넣고 쥐어짜는 것만 같다.

쾌락주의는 분명 현대인의 소모적 욕심과 끝이 없는 물질적 욕망, 중독적 쾌락에 대해 바른 길라잡이가 되어 줄 수 있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소박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에피쿠로스 쾌락>은 현대인에게 깊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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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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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학의 권위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인간의 죽음과 임종에 관한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평생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곁에서 목도한 그녀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의 고백이 새롭다.

"타인의 죽음이 철창 안에 갇힌 호랑이라면 나의 죽음은 그 철창을 뛰어넘어 나온 호랑이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죽음을 절대 타자화하고만 싶은 인간의 숨겨진 본능이다.

죽음이란 이처럼 모든 숨 쉬는 존재에게 있어서 거부하고만 싶은 영원한 불청객이다.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침상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한때 웰빙의 중요성이 세찬 바람처럼 온 세상에 휘몰아쳤다. 이후에는 웰다잉이라는 인문학적 개념이 호숫가의 파동과 같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잔잔하게 퍼졌다. 인간으로서 품위 있게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 잘 먹고 잘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인생의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요 며칠 나의 영혼에 잔잔한 정동을 일으킨 저작 <죽음이 물었다>는 잘 죽는 것에 대한 깊은 통찰이 녹아있는 인문 에세이다. 브라질의 완화의료 전문가 '아나 아란치스'는 20여 년간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고통에 응답하며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끝을 살폈다.

완화의료란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줌과 동시에 남은 시간 인생을 의미 있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도록 돕는 모든 의학적 노력으로 정의된다. 이야기는 저자가 어떻게 완화의료라는 생소한 의학 분야에 발을 내딛게 되었는지부터 시작된다.

결국 잘 죽는 것은 남은 삶을 잘 사는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이처럼 반어법적 정설이다. 책이 우리에게 주는 명징한 진리는 두 가지다. 첫째는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어떤 인생길, 어떤 인생 이야기이든 그 끝에는 예외 없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p145


둘째는 죽음을 매일의 일상에서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지혜로운 삶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다. 염세주의자가 되라는 의미가 아니다.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유행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문구가 가진 진의는 겸손이라는 삶의 덕목을 내포한다. 죽음을 기억할 때 지금의 삶 앞에서 겸손할 수 있으며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의식이 가지런히 정렬된다.



인생의 끝자락, 우리의 삶에 참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감당할 수 없는 재물이나 뽐낼 수 있는 명예, 움켜쥔 권력인가? 저작 속에 빠져들수록 그러한 외적 조형물이 뿜어내는 가공된 가치가 사뭇 역겹다.

잘 살아온 삶이 잘 죽는 죽음을 정의한다. 책이 말하는 요지다. 우리의 마지막은 우리의 삶이 대변한다. 고통 속 의식이 혼미해지며 모든 오감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을 향해 불꽃처럼 타오르는 순간 남는 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쌓아 올린 업적, 재물과 같은 폐기물이 아니다.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왔느냐에 대한 짙은 물음만이 남는다.

우리의 인생과 삶이 유한하다는 인식의 제고가 사라진 시대, 폭주 기관차와 같이 브레이크 없는 인생을 내달린다. 이후 어느 순간 더 이상 달릴 철로가 없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한다. 실존의 유한성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 세대가 가진 아픔이다.

저자는 죽음의 침상 곁 환자들을 마주하는 완화의료의 일을 인생의 마지막 기차에 올라탄 이들을 배웅하는 플랫폼에 서 있는 것으로 비유했다. 지금은 함께 타고 떠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 모두 그 열차에 승객이 될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삶이 눈부시게 투명해진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의 차이다. 누구도 동행할 수 없는 마지막 여행을 기다리며 오늘이라는 삶의 결을 보듬는다. 죽음에 관한 깊은 사유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더 잘 살아야겠다는 인생에의 의지로 부활한다.

저자는 완화의료라는 생소한 의학 분야를 통해 자신이 만난 다양한 인생과 죽음의 이야기를 부드러운 필치로 전달했다. 죽음을 직시할 때 삶은 더 맑아진다. 저자는 환자들을 배웅하며 자신과 우리의 끝을 미리 본다. 삶의 끝자락에서 후회함 없는 완벽한 마침표를 찍는 것!


모든 것은 죽지만 사랑은 예외다. 오직 사랑만이 당신 안에서 불멸의 가치를 지닌다. p262


저자의 결론,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일뿐이다.

책의 부제를 내 마음대로 정했다. '죽음이 묻고, 삶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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