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자유로운 삶을 위한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장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우리네 일상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사고와 반추의 기능을 앗아간 지 오래다. 세월의 속도가 심히 빠르다. 잠시도 쉼을 허락지 않는 시간의 재촉 앞에 오늘 맺지 못한 생각을 기억의 창고 한편에 억지로 쑤셔 넣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만이 사고의 회로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돌아볼 겨를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의 여유가 있음을 의미한다. 생각할 때 인간 본연의 가치 또한 빛난다. 혼돈과 야만의 시대를 살다 간 동양 철학의 거인 '장자'를 만나보아야 할 이유다.

새해 들어 마음먹고 펼친 책이다. 국내 중국 문학의 대가인 김원중 교수의 번역이라는 사실 하나로 주저함 없이 택했다. <장자>는 현존하는 총 33편의 글을 내편, 외편, 잡편으로 분류했다. 책이 가지는 외형적 특징은 역자의 깨알 주석이다. 거의 책의 매 페이지 하단에는 본문의 상세한 주석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장자>는 많은 이들이 스스로가 난세를 구할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믿으며 자웅을 겨루던 시절, 팽배해있던 인간 탐욕의 정신을 무위의 사유로 계도한다. 노자가 중국의 사상적 주류인 무위자연의 도를 배태했다면 장자는 노장사상을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발전시켰다. 노자의 <도덕경>이 매우 사색적인 반면 <장자>는 비유가 많은 한 권의 이야기책과 같다.

장자가 설파한 그의 사상적 핵심은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세상에의 거부다. 투쟁이나 전복과 같은 물리적 대립이 아닌 인간 개인의 본성과 스스로의 자각을 통한 정신의 자유를 추구했다. 세상은 인간의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며 이루고 성취하는 과정 속에서 찾는다. 그 안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도모하며 인간의 참된 가치를 설정해버리니 현대인들의 삶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정밀한 시계 속 부품과 같다.

한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인간 소모의 현장 속에서 만나는 장자의 가르침은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다. 자각과 이해가 생의 나락으로 밀어붙이는 우리의 현실에 카운트 펀치를 날리기에 속이 다 후련하다.



친구 '노담'이 죽었는데 곡만 잠깐 하고 나온 '진일'에게 노담의 제자가 물었다. "친구가 죽었는데 어찌 간략하게 곡만하고 나오십니까?" 진일의 대답 속 노장사상의 정수가 묻혀있다. "이 세상에 온 것은 올 때가 되어서이고, 세상을 떠난 것은 갈 때가 되어서이다. 올 때와 갈 때를 정확히 따른 것이기에 슬픔이나 즐거움이 끼어들 수 없다."

즉, 인간의 죽고 사는 것이 자연의 이치를 따른 것이니 크게 슬퍼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모든 것에 있어 인위적이지 않으며 자연의 순리를 따르기를 강조했던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이 장자의 문장 안에 그대로 숨 쉰다. 다만 장자의 글은 노자의 글보다 조금 더 풍자와 해학이 묻어난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어서 베어 가고, 옻나무는 쓸모가 있어서 잘라간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음의 쓰임을 알고, 아무도 쓸모없음의 쓰임을 알지 못한다." p138


말 그대로 쓸모 있음만이 갑으로 여겨지는 세대를 향한 일갈은 그 자체로 촌철살인이다. 쓸모라는 유용성으로 인간의 모든 것을 재단하는 미친 세대에 대한 냉소가 문학적 카타르시스로 다가온다. '쓸모없음의 쓰임'이라는 역설 또한 장자만이 펼칠 수 있는 언어유희임과 동시에 노장 철학의 정수다.

폭력과 광기가 일상이 된 군웅할거의 전국시대, 장자 선생의 가르침이 내뿜는 아우라는 범상치 않다. 하지만 현실 정치 무대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권력과 명예, 탐욕의 정신이 지배하는 세태 속 노장사상은 비주류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노장사상이 조금씩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물질만능과 배금주의라는 병든 시대정신에 대한 반대로 이해된다. 부와 권력과 명예만이 인간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김 받는 시대, 그렇기에 어떻게든 남을 밟고 일어서 성공해야만 한다는 약육강식의 시대 속 장자의 사상은 빛을 발한다.

얽매임이 없을 때 진짜 삶을 돌아볼 수 있다. 미련을 갖고 움켜쥔 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뭔가 자꾸 만들고 하려는 일 속에서 자아를 찾는 가련한 사람들, 비전과 명분이라는 포장지로 자신의 일을 아름답게 꾸미는 사람들, 공명심에 찌들어 뒤를 돌아볼 수 없는 성찰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사람들.

800여 페이지 벽돌 책의 뚜껑을 덮는다. 억압과 매임이 절대 자유의 자족함 속 담박한 삶으로 대치된다. 기운 베옷을 입은 채 호탕한 웃음을 웃으며 자신의 사상을 설파했을 장자 선생의 가르침이 사뭇 새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