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의 어릿광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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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안경을 착용한다. 물체의 상이 망막의 앞쪽에 맺히는 근시란다. 안경 없이 바라보는 원거리 물체는 그야말로 초점 잃은 허상이다. 인간사의 모든 일에도 허상이 존재한다. 그것을 진실로 믿고 살아가기에 자족하고 때로는 분노한다. 초점을 잃고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과 사실로 여기며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일곱 편의 흥미로운 추리소설로 탄생시킨 '히가시노 게이고'의 <허상의 어릿광대>를 만났다.

일곱 편의 단편은 각기 다른 소재를 취한다. 예리한 수사력의 소유자인 경시청 소속 형사 '구사나기'와 그의 오랜 친구이자 대학 물리학 교수인 '유가와'가 일곱 개의 미궁 속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게이고 작품의 장점이자 특징은 전개가 빠르다는 것이다. 문장의 간결함과 호흡이 짧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그렇기에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를 사건의 현장 속으로 빨아들이는 작품 자체가 가진 흡입력이 대단하다. 속도감 있게 달려가는 미로와 같은 사건 현장 속 독자는 헤어 나올 수 없다. 게이고 작품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독자를 사건의 현장으로 초청한다. 그러고는 홀로 남겨두고 가버린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살인 사건의 현장 속 독자는 서서히 문학적 패닉에 빠진다. 독자가 방관자로 남지 않도록 계속적으로 물음표를 던지는 작가의 도발이 독자로 하여금 "내가 기필코 사건을 해결해 주마!"라고 다짐하게끔 만드는 오기를 발동시킨다. 독자의 능동적 참여,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게이고의 비범함이다. 게이고의 문학적 천재성과 탁월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동시에 그가 왜 현재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인지를 깨닫게 하는 부분이다.

염력을 보내어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순식간에 사람을 창밖으로 던져 사망케한다. 다른 이의 비밀을 훔쳐보는 투시가 급기야는 살인을 불러일으킨다. 환청이 사람을 죽이고, 텔레파시가 범인을 지목한다. 진실을 위장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도 하고, 살인 사건마저 연극의 무대로 탈바꿈시킨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가 입문 전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이러한 게이고 작가의 전공 관련 지식들이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다. 자신이 가진 과학적 지식을 소설 속 유가와라는 물리학 교수를 등장시켜 그에게 사건 해결자로서의 열쇠를 쥐여준다. 명백한 용의자 선상에 올려놓은 사람이 아닌 전혀 뜻밖의 인물이 범인으로 지목되는 일련의 과정이 게이고 식 추리 역학 속에서 빛을 발한다.

 

현혹, 투시, 환청, 오해, 텔레파시, 위장, 연기. 이 일곱 개의 키워드가 작품의 각기 다른 주제다. 하지만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는 바로 '허상'이다. 본서는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미묘한 심리를 제대로 꿰뚫어 본 게이고의 통찰이 빛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게이고의 작품들이 갖는 특징은 단순 추리 소설로서의 킬링타임용 팝콘과 같지 않다. 그의 작품 세계가 갖는 의미는 재미 속에 곁들여진 사회적 문제의식의 은은한 표출이다. 동시대의 사회상을 대변하는 문학이 가진 본연의 기능을 배신하지 않는다. 작품 속 인간과 사회의 아우성을 과하지 않은 터치로 묻혀내는 문학적 장치들이야말로 게이고 식 소설의 백미다.

믿고 싶은 것만을 믿기 원하는 취사선택의 세대 속에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스스로가 진실과 진리를 예단하는 판결의 주체자가 되기에 타인의 판단과 의견이 설자리가 없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이 타협할 수 없는 팩트임을 목에 핏발이 서도록 외치는 현대인들의 무지몽매함을 일곱 편의 단편 속에 예리한 창작의 조각도로 각인시켰다.

서두의 이야기와 같이 물체의 상이 망막에 제대로 맺히지 않을 때 초점을 잃는다. 초점을 잃은 채 자신의 생각 속에서 사실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사실로 인지하고 받아들인다. 오류와 오해가 난무한다. 이렇듯 진실이 아닌 것에 열광하고 진리가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 현대인들의 모습이야말로 책을 통해 게이고가 보여주는 허상을 좇는 어릿광대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수많은 어릿광대들이 보여주는 집단 광기의 현장 속에서 제대로 된 정신의 원형을 찾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한 명의 어릿광대다. 기괴한 웃음을 짓는 어릿광대의 가면을 벗어던질 그날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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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똥꼬는 힘이 좋아 국악 동요 그림책
류형선 지음, 박정섭 그림 / 풀빛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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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이야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웃는다. 똥, 방귀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집안은 난리가 난다. 우리 집 2호의 반응이다. 1호 때도 그랬지만 아마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의 웃음 포인트, 이슈는 아마 똥이나 방귀 같은 다소 지저분한 그 무엇이다.

새해 첫 도서 리뷰가 공교롭게도 똥과 관련된 아동 도서다. 똥에 관한 도서가 많지만 이 책은 <내 똥꼬는 힘이 좋아>라는 국악동요로 유명한 책이다. 저자인 류형선 예술감독은 예쁜 국악 동요 <모두 다 꽃이야>를 작사, 작곡하기도 했다. 노래의 제목이 곧 책의 제목이고 책의 내용은 노래의 가사 그대로다. 노래의 가사에 맞춰 작가가 재미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매칭했다.

저자는 이 책의 주제가 똥이 아닌 아이의 '똥꼬'임을 강조한다. 유아들의 쾌변과 독립된 배변습관을 위해 기획된 책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집 2호는 작년에 기저귀를 졸업했다. 유아 변기에 앉혀 독립적으로 배변하는 훈련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했다. 언젠가는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1호 때보다 조금 더딘 것을 보며 부모로서 조급함이 있었다. 이 책을 조금 더 빨리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물음 속에 드는 생각이다.

책에서는 예쁜 똥꼬를 가진 주인공 아이가 자신의 똥꼬가 힘이 좋음을 자랑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똥꼬를 거쳐서 배출된 다양한 똥의 모양과 크기를 자랑하듯 읊어댄다. 실제로 국악동요는 유튜브를 통해서 들었다. 국악 반주에 맞춰 마치 랩을 하듯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다양한 똥에 관한 이야기가 재미있고 유쾌하다. 듣다 보면 똥이 마렵다.

 

 

변비의 고통을 아는가? 쾌변의 쾌감을 아는가? 두 경험 모두 해보았다. 그렇기에 책이 유아 독자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십분 이해했다. 뭐든 골고루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뛰어놀고 옴팡지게 싸지르는 것이 건강한 유아들에게 있어서는 전부다. 똥, 방귀 같은 터부시되는 대상을 이처럼 재미있는 동화와 동요의 주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발상의 전환 같다.

 

우리 집 1호와 2호는 책을 받아서 깔깔거리며 몇 번 읽고서는 휙 던져놓는다. 책을 집어 들고 똥에 관한 나만의 사유를 펼친다. 아이의 책 한 권으로 다양한 생각을 제조한다.

 

근사한 레스토랑과 값비싸고 호화스러운 호텔 뷔페에 돈을 아끼지 않고 찾아간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산해진미에 넋을 잃는 것도 잠시 뿐 미친 듯이 음식을 쓸어 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 생각한 적이 있다. 저런 맛있는 음식들도 몸 안으로 들어가면 전부 똥이 되는데...

 

산해진미와 똥의 차이는 한 끗 차이다. 인간의 몸을 거쳤느냐 거치지 않았느냐의 차이. 그렇게 보면 인간의 육체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르는 선악의 준거가 아닐까? 뭔! 개똥같은 소리인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진미도 인간의 몸을 거치면 똥이 되고 똥은 몸에 들어오기 전 진미였다. 진미이기에 좋은 것이고, 똥이기에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의 전환을 말하고 싶었다. 개똥도 약에 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물론 똥은 더럽다. 그러나 그 똥을 만들어내는 것도 인간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더 더러운 존재다. 본성 상 더럽다. 그렇기에 똥을 터부시하며 더럽다고 손사래 칠 필요도 없다. 그래도 똥은 아이들의 웃음샘을 자극해 주는 소재로라도 쓰인다.

새해가 밝았다. 올 한 해는 또 얼마나 지저분한 인간 군상의 소식들이 들려올까?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지만 인간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이 서글프다. 아이의 똥꼬 책 한 권으로 개똥같은 생각의 나래를 펼친다. 아! 오늘도 미래의 똥을 위해 일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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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 종교 개혁 500주년 기념 개정판
롤런드 베인턴 지음, 이종태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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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1000년 암흑의 시대를 끝내고 종교개혁의 포문을 열어젖힌 인물, 개혁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마르틴 루터'

다양한 사관과 전기 작가의 종교적 배경과 관점에 따라 루터에 대한 평가는 천차만별이다. 오랜 시간 많은 신학교와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며 가장 탁월한 루터 전기라고 평가받는 루터에 관한 책을 올해의 마지막 책으로 만난다. '롤런드 베인턴' 교수의 HERE I STAND : <마르틴 루터>

 

1507년 7월, 벼락에 맞아 죽을 뻔한 사건 후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도사로서 끊임없는 고행과 참회 속에서도 결코 영혼의 안식과 만족을 얻을 수 없었던 루터의 삶은 고뇌의 연속이었다.

이후 로마서와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죄를 없는 것으로 여겨주신다"라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진리를 발견한 순간 이 유약하고 우울한 청년 루터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1517년 10월 31일. 성 베드로 성당 증축을 위한 면죄부 판매의 부당함에 대항하여 비텐베르크성 교회 정문에 내건 95개조 반박문은 이후 전 유럽과 세계를 상상할 수 없는 혼돈의 소용돌이로 이끈다. 로마 가톨릭의 부패가 극에 달했던 중세 교회에 대한 개혁의 신호탄이 변두리 이름 없는 한 탁발 수사에 의해 쏘아 올려진 것이다.

 

성경의 증거와 명료한 이성에 비추어 저의 유죄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저는 교황들과 교회회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중략) 저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취소할 수 없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 아멘.

여기 제가 확고부동하게 서 있습니다. 저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p255~256

 

1521년 황제 카를 5세와 수많은 귀족, 종교 지도자들이 모인 보름스 의회 앞에 홀로 선 마르틴 루터. 이단적인 믿음과 주장을 철회하고 나라와 교회를 평안케하라는 카를 5세의 엄위한 명령 앞에 루터가 보인 태도와 반응은 전형적인 종교개혁 1세대의 믿음과 신앙의 기개다. 신자로서 목숨을 걸고 행한 고백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영롱하게 빛난다.

 

 

저자는 루터 전문가요 탁월한 교회사가답게 루터의 생애와 신학을 다각도의 관점하에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을 통해 프로테스탄트의 관점으로 루터를 만날 수 있다. 반면 로마 가톨릭의 관점에서 본 루터의 모습 또한 새롭다. 사관의 공정성과 객관성이야말로 자칫 역사적 인물의 전기에서 무시될 수 있는 균형과 치우침의 문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슈다. 이 책이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수많은 루터 전기 속에서도 3판 2쇄를 찍어내며 팔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통해 다시금 루터를 만난다. 루터의 인생에서 전반기와 후반기의 삶은 확연히 다르다. 보통 개혁 전반기 루터는 진리를 수호하는 용맹한 투사였다. 그러나 후반기의 삶은 단순 방관자와 같다.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후반기의 루터는 썩 반길만한 인물이 아니다. 암흑의 중세 교회와 어둠의 시대를 끝내고 빛을 가져온 개혁의 사도! 프로테스탄트의 선구자! 로마 가톨릭교회와 교황에 대항한 이단자! 고집불통 돼지 같은 믿음의 소유자! 탁월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미완의 개혁가! 루터를 향한 다양하게 엇갈린 평가들이다.

비진리가 진리로 둔갑한 시대 속 굳건한 믿음과 꺾을 수 없는 불굴의 의지, 발견한 진리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에 대한 깊은 믿음, 성경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사랑이 타락과 부패, 무지몽매함으로 점철된 중세의 어둠을 끝낸 사실에 대한 평가는 부인할 수 없다.

역사의 주인이 펼쳐가는 드라마틱한 현장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루터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을 자신에게 요구된 삶의 지평 속에 그대로 구현했다.

다양한 삶의 고난과 아픔, 위기의 순간 속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신자에게 요구되는 것 또한 다를 바 없다. 믿음을 포기하고 싶은 우겨쌈의 상황 속에서 진리를 향한 변치 않는 사랑과 순전한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증명해 내는 것!

화형의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던 무명 수도사의 고백이 지금을 살아가는 신자의 고백이 되는 그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21세기 보름스 의회의 현장이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철회하라는 세속의 요구 앞에 신자가 보여야 할 단 하나의 고백!

"HERE I 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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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지압법 - 1분만 누르면 통증이 낫는 기적의 건강법
후쿠쓰지 도시키 지음, 김나정 옮김 / 길벗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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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술 고수가 상대의 급소와 혈도를 찍으니 몸이 굳어버린다. 몸이 굳어진 사람을 또 다른 무림 고수에게 데려가니 치유하는 혈도를 찍어 마비된 사지를 풀어준다. 오래전 빛바랜 중국 무협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인체에는 기(氣)가 흐르고 기가 출입하는 자리가 있다. 기가 흐르는 길을 '경락'이라고 하며 기의 출입구는 '혈자리'라고 칭한다. 이러한 경락과 혈자리를 손으로 누르고 문지르는 방식으로 자극을 주어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대체의학적 행위가 바로 '지압'이다.

 

지압은 앞서 이야기한 중국 무협영화의 혈도를 누르는 행위가 전혀 근거 없는 일이 아님을 증명한다. 즉 지압은 이미 2천 년 전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엄연한 의료 행위였다. 이러한 지압에 관한 매우 유익한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1분만 누르면 통증이 낫는 기적의 지압법>은 일본 침구술의 대가 '후쿠쓰지 도시키'원장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손쉬운 지압법을 소개한 책이다.

 

책은 총 6개의 주요 주제로 지압의 효과를 설명한다. 응급처치, 만성 질환, 정신 건강, 여성질환, 현대 질병, 미용과 다이어트라는 굵직한 건강 테마를 지압과 연결시켰다.

몸에 흐르는 14개의 경락과 경락의 길목에 있는 다양한 혈자리에 대한 내용이 자세한 인체 삽화를 통해 그려졌다. 지압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민간 치료법이다. 저자는 다양한 증상에 맞는 대증적인 혈자리를 포인트화해서 매우 상세하고 쉽게 설명한다.

흔히 우리는 과식 후 급체를 했을 때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이 연결되는 손등 부위의 움푹한 부분을 지압한다. 잠시 후 트림이 나오면서 거짓말처럼 속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한다. 이때 누르는 혈자리가 바로 '합곡'혈이다. 합곡혈의 주요 대증 효과는 고혈압과 저혈압이다. 그러나 합곡은 전신에 활력을 더하며 다양한 통증에도 효과적인 만능 혈자리이기에 소화를 촉진하는 기능도 있다.

이렇듯 우리네 일상에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의학지식 없이 행했던 민간요법과 같은 지압 행위들이 사실은 전부 중요한 경락과 혈자리의 하나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지압을 처음 시도하는 초보자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지압술을 잘 풀이해놓았다는 점이다. 지압의 효과, 경락과 혈자리 찾는 법, 지압의 강도와 빈도, 혈자리를 잘못 찾을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을 Q&A를 통해 해결해 준다.

또한 저자는 매 챕터가 끝나는 말미에 자신이 일하고 있는 침구원의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베스트 질환 5개를 선정하여 스트레칭을 이용한 질환 치유법을 설명한다. 마치 앨범의 보너스 트랙 같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생활 요통이 있다. 심각한 것은 아니기에 생활에 큰 지장은 없지만 오래 앉아 있으면 뻐근한 통증이 느껴진다. 책을 통해 요추 5번 양옆에 위치한 족태양 방광경의 '대장유'라는 혈자리가 요통에 효과를 보이는 혈점임을 배웠다. 골반 위에 위치하기에 손을 뒤로 돌려 충분히 셀프로 지압할 수 있다.

책을 보며 따라 했다. 신기하게 금세 허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적인 느낌! 저자는 혈자리를 일시적으로 눌렀다가 떼면 물이 흐르는 호스 끝을 막았다가 놓을 때와 같은 효과를 갖는다고 한다. 지압으로 인해 잠시 정체되었던 혈류가 손을 떼는 것과 동시에 힘 있게 방출됨으로써 혈행과 순환이 좋아지면서 다양한 증상들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14개의 경락과 361개의 혈자리를 모두 외우고 찾아서 짚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대표적인 증상들의 완화를 위해 필수적인 혈자리 몇 개를 알아두고 수시로 지압할 수 있다면 훌륭한 민간 대증치료법 하나를 습득하는 것이다.

소화불량, 멀미, 요통, 치통, 어깨 결림, 코막힘, 두통, 졸음, 딸꾹질, 코피, 눈 피로 등과 같이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일반적 질환과 증상은 다양하다. 이 책을 읽었다면 병원을 찾기 전 셀프로 해당 혈자리를 눌러보는 것도 해볼 만한 시도다. 서두에서 언급한 혈도 하나로 사람을 마비시킬 정도의 고수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과식 후 급체를 가라앉게 함으로서 주위 사람들에게 '무면허 명의'라는 기분 좋은 칭찬 정도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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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시민 불복종 (합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종인 옮김, 허버트 웬델 글리슨 사진 / 현대지성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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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월주의 철학자이며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근대 미국인들의 정신세계에 크고 작은 파동을 불러일으켰다. 인간 본성의 자연적인 면을 강조한 에머슨의 초월주의 사상은 이후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탁월한 젊은이에게도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 에머슨과의 만남은 소로의 인생에 있어 획기적 전환을 가져왔다.

1845년 소로는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스승 에머슨의 소유지였던 월든 호수 근처의 숲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집을 짓고 약 26개월의 시간을 숲속에서 홀로 생활한다. 레프 톨스토이, 마하트마 간디와 같은 거성들에게 깊은 영감을 불러일으킨 소로의 저작 <월든>은 이렇게 탄생했다. 월든 호수 숲에서 대자연과 함께하며 그 안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인간과 우주, 자연을 명상하며 깨달은 삶의 교훈이 고로쇠나무의 수액과 같이 진하게 흘러나온다.

소로는 <월든>을 통해 당시의 사람들과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삶의 자유를 강조한다. 문명에 묶임이 아닌 그 문명 속에서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문명의 발전을 향유하길 바라는 소로의 메시지는 담박하다. 욕심이 없고 인위적이지 않은 그의 숲속 생활이 날 것 그대로 묘사된다.

 

인간 세상의 번잡함과 고뇌를 월든 호수를 거닐며 깊은 호심 속에 던져 버리는 소로의 사유가 남다르다. 복잡한 기계 문명의 기름때에 찌든 현대인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자연 그 자체의 삶이다. 인간에게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가감 없이 비추는 거울은 문명의 톱니바퀴 속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소로는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월든의 숲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닐까?

 

이 지상에서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일은 고행이 아니라 오락이다.

우리가 검소하고 현명하게 살아가기만 한다면 말이다.

당신 일을 백 가지, 천 가지로 늘리지 말고 두세 가지로 단순화하라. p94, 123

 

소로의 사상과 철학을 위의 두 문장만큼 명확하게 밝혀주는 것도 없다. 동양 사상에 깊이 심취해 있었던 소로였기에 어쩌면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이 그의 사상에 알게 모르게 녹아져 있었으리라.

 

 

이번에 현대지성에서는 그의 또 다른 저작 <시민 불복종>을 합본으로 출간했다.

 

가장 적게 통치하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다. p447

 

소로는 당시 미국이 일방적 침공으로 벌인 멕시코 전쟁이나 노예제도에 반대했다.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정당한 사유 없이 옭아매고 억압하는 것은 불의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소로에게 있어서 영토를 빼앗기 위한 침략전쟁이나 인간이 같은 인간을 노예로 삼는 경악할 만한 만행은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행태였다. 

 

소로는 <시민 불복종>을 통해 정당하지 못한 국가 권력에 대해 행동하는 양심으로 자신의 인간성을 증명하라고 외친다. 실제로 소로는 도망친 노예들을 숨겨주고 그들을 캐나다로 안전하게 도피시키는 '지하철도' 계획에 동참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실천적인 삶으로 연결시킨다.

 

전체적인 주제는 인간 내면 안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초월주의 사상이다. 자연과 우주 만물에 깃든 신성이 인간의 내면과 영혼 안에도 동일하게 실재한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었던 에머슨의 초월주의와의 차이는 소로가 월든 호수에서 숲속 생활을 하며 체험한 자연이 조금 더 실재적이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자연 안에 깃든 신성을 보존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연과의 합일을 긍정하는 인간 내면의 신성을 고양하는 착한 일이다. 이는 인간성의 극대화로 이어진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세상은 문명이라는 지도자의 영도 하에 부수고 깨뜨리고 파괴한다. 욕심과 탐욕은 빼앗고 갈취함으로써 비극을 잉태하고 출산한다. 복잡다단한 현대 문명의 틈바구니에서 인간은 참된 인간으로서의 본성과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반추할 정신적 여백이 없다. 밀려오는 세속적 사고와 사상의 물결 속, 등 떠밀려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현대성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자기 성찰은 요원하다.

종교의 색을 떠나 목표와 목적을 상실한 채 달음박질하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의미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일깨우는 고전으로서 만나보기를 권한다. 날카롭게 비판적으로도 읽어보고 편안하게 수긍하며 읽어보아도 좋다. 소로가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자발적 로빈슨 크루소의 삶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수많은 디지털 소음과 미디어 공해 속 잠깐의 고독도 끔찍한 고문과 같이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책이 주는 메시지는 참신하다. 저작에서 풀냄새와 함께 이름 모를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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