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올로구스 - 기독교 자연 상징사전
피지올로구스 지음, 노성두 옮김 / 지와사랑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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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기독교 자연 상징사전 <피지올로구스>, 독특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다양한 동식물과 사물이 기독교적 상징물로써 중세 미술사에 단골로 등장했다. 책은 55개의 동식물과 광물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기독교의 성경적 메시지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그림에 등장하는 동식물이 표징 하는 의미를 파악하고,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의미가 더 풍성하게 다가온다. 중세의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자연의 사물들이 뿜어내는 고유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다. 그 속에서 그들이 신앙했던 신의 존재와 계시를 묵상했고, 믿음의 교훈과 삶의 실천으로서의 진의를 캐냈다.


'피지올로구스'는 '자연에 대해 박식한 자'라는 의미로서 작자 미상의 책 이름임과 동시에 그 자체가 익명 저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혼용되었다. 초기에 민담으로 전해지다가 AD200년 경 근동지역에서 문자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후 독자들의 염원으로 23년 만에 복간됐다. 중세를 뒤흔든 베스트셀러가 가진 가치와 지위는 이렇다. 중세 기독교 도상학의 등장과 중세 유럽 기독교 건축, 장식물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문헌의 가치는 높다.


성경을 읽다 보면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인류의 조상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만든 뱀이 있다. 그에 반해 성경 곳곳에 등장하는 양이 있다. 사탄을 상징하는 뱀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어린 양과 같이 자연의 피조물은 창조주의 탁월한 메타포다.


자연의 피조물을 통해 창조주의 창조 섭리와 사역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중세의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발견한 자연적 대상들을 그들의 미술 작품 속에 형상화시켰고, 그것을 통해 그들이 신앙한 신에 대한 경배를 완성했다.


반면 종교 서적인지 인문학 도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장르의 모호성은 책을 읽으며 살짝 혼란스러웠던 부분이다. 기독교 자연 상징사전이라는 부제답게 성경적 메시지로 연결되는 책의 내용과 표현 때문에 그렇다. 다소 상상적인 요소가 혼재하기에 온전히 성경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인용문 또한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했기에 가톨릭적 느낌이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적 메시지와 색채가 강한 인문학 장르로 결론 내렸다. 그렇기에 예비 독자들에게 무겁게 볼 필요 없이 가볍고 흥미롭게 독서하길 권한다.



책에 등장하는 55가지의 동식물과 광물 중에는 세상에 없는 상상의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시레네(사이렌)나 켄타우로스, 유니콘과 같은 존재가 그렇다. 그렇기에 책은 중세 기독교가 가진 신앙의 혼합성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내용들도 많다. '살무사'를 통해 세레 요한이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비난하던 장면을 소환한다. 살무사(독사)의 특징이 이렇다. 어미 살무사의 배를 찢고 나오는 살무사 새끼들처럼 영적 부모인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잡아 죽이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살무사의 새끼들이라고 상징적으로 비유했다.


또한 악어는 마귀로 상징된다. 입을 벌린 채 잠자고 있는 악어의 입에 들어가 목구멍과 내장을 파먹는 수달은 마귀의 세력을 이기고 승리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다양한 형상과 회화로 중세 미술의 전성기를 이루어내었던 르네상스 시대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눈에 보이는 실재에 대한 감각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와 존재에 대한 믿음과 결부된다고 확신했다. 비가시적 절대자는 분명 가시적인 세상 속에 그의 존재 여부를 투영시켰을 것이며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임이 분명하다는 확신 속에 '피지올로구스'와 같은 저작이 구전으로 탄생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신뢰하고 신앙하는 나약한 인간의 믿음, 높은 문맹률의 대중에게 복음을 가시적으로 효과 있게 전하기 위해 고안된 중세 기독교의 다양한 형상들의 이해는 책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진리의 핵심을 전달하는 일은 수신자가 글을 모른다고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하는 송신자의 진실성과 투명함에 있다. 중세에는 그것이 없었고 지금의 시대에도 그것이 부족하기에 우리는 중세의 것들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떠한 반성도 없다.


책을 통해 생각이 짙어진다. 작은 기독교 도상학 책 한 권을 통해 중세의 기독교를 돌아보고 지금의 기독교를 성찰한다. 위에서 가볍고 흥미롭게 읽기를 권했다. 하지만 책이 쓰이고 전해진 의미를 조금만 깊이 숙고해 보면 더 많은 것을 건져낼 수 있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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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 현대지성 클래식 43
벤자민 프랭클린 지음, 강주헌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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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업자, 정치가, 외교관, 발명가, 시민사업가, 군인 등 다양한 이력의 사람,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랭클린의 삶은 성실과 근면, 자기 절제라는 대표적 도덕성의 키워드로 대변된다.

18세기 초 미국 보스턴에서 출생한 프랭클린의 인생에서 배움은 초등학교 2년이 전부다. 거의 무학자라봐도 무방할 정도의 짧은 학력이지만 수많은 독서와 독학으로 글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갖췄고 이를 토대로 인쇄업자로서 큰 성공을 거둔다. 인생의 황혼기에 자신의 아들 '윌리엄 프랭클린'에게 편지 형식으로 남긴 자서전의 1부를 통해 프랭클린의 근면, 성실, 절제라는 도덕적 이상 실현의 참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근면함과 성실, 절제, 정직과 같은 덕목의 자기실현이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삶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 가난한 양초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성공한 인쇄업자로 큰 부를 이룬 삶은 이후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근면과 성실, 절제, 정직, 인내, 겸손, 절약, 중용, 질서, 평정과 같은 도덕 덕목이 가지는 가치의 진가를 각인시킨다.

프랭클린은 소위 전형적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었지만 순수한 노력과 자기 통제로 인생을 금수저로 바꾼 입지전적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자서전을 읽노라면 자기의 삶을 철저하게 간수한 프랭클린의 무서운 절제력을 만난다.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기에 남보다 10배, 100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그것이 부지런한 삶으로 체화되었다.

청교도 전통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철저한 이신론자였다. 자신의 세속적 성공을 위해 하나님과 친했던 도덕적 인본주의자. 18세기 자연신론의 시대정신 속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고 일구어야 한다는 인식이 프랭클린의 삶 속에 깊이 수놓아졌다. 


게으름과 나태를 경계하며 열심히 일했고, 절제했다. 그리고 드디어 성공 가도에 올랐다. 그러나 프랭클린이 찬사를 받는 이유는 그의 돈벌이가 일신의 행복과 쾌락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업적 성공과 명예는 이웃 돕기와 사회적 공공선의 실현이라는 선의의 목적을 지향했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프랭클린의 도덕적 훈계 속에는 공리주의적 지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물질적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1차원적 목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선한 삶의 목적이다. 프랭클린에게 있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돈 벌기의 끝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사회적 공익의 실현이다.

공공 도서관을 건립하여 시민들의 무지를 깨웠고, 필라델피아 대학을 세워 미국 사회에 지성적 토양을 일궜다. 자신의 주특기인 인쇄업을 통해 신문과 책을 출간함으로써 대중적 계몽을 실천했으며 탁월한 과학적 재능을 도구 삼아 시민 삶의 일상적 불편을 개선하고 해소하는데 앞장섰다. 의회 의원과 외교관으로서 뉴잉글랜드의 이권을 영국 정부로부터 보호하는 데 힘썼고, 군인으로서 뉴잉글랜드에 요새를 건축하고 방어하는 데 힘을 보탰다.

물론 천박한 자본주의자, 극렬한 도덕주의자라는 악의적 비판도 있다. 다양한 관점을 용인하는 관용의 시대이기에 한 인물의 평가가 상이함을 인정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사어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여의주가 아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야지만 용이 될 수 있다. 스스로의 노력과 근면, 성실, 정직, 인내와 같은 덕목의 가치는 빛을 바란지 오래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한들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과 같은 장벽에 의해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길은 요원하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 책에서 프랭클린이 강조하는 덕목은 한낱 도덕적 이상주의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교훈은 다르다. 도덕과 윤리가 실종된 지금의 세대 속에서 비단 프랭클린이 강조한 덕목은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살라는 동물적 교훈이 아니다. 짐승 같은 약육강식의 시대 속에서 최소한 인간답게 살라는 프랭클린만의 진심이 담긴 레토릭이다. 


그렇기에 인간보다 짐승이 더 많아 보이는 작금의 세상 속에서 프랭클린의 가르침은 빛을 발한다. 자기만의 성공을 위해 이웃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비정한 시대 현실 속에서 자신의 성공을 이웃의 공익과 사회적 공공선의 실현으로 승화시킨 프랭클린의 삶은 그 자체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아메리칸드림의 저변에 깔린 자본주의 정신의 기형적 열매를 굳이 프랭클린의 세계관과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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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기분파 버스운전자격시험 필기 - 상시복원문제 완벽분석 2023 기분파 시리즈
㈜에듀웨이 R&D 연구소 지음 / 에듀웨이(주)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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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날아다니고 KTX가 질주 본능을 뽐낸다 한들 여전히 여객 운송의 왕자는 단연 버스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버스를 운전하기 위해서 별도의 자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 또한 그랬다. 1종 대형 면허만 있으면 아무나 버스 운전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은 나의 무지에 기인한 생각이다.

2012년 버스운전자격시험이 도입된 이후 버스 운전을 원하는 사람에게 이 자격시험은 필수다. 이 제도는 수많은 승객들을 태우고 달리는 대중교통의 특성상 안전과 서비스 향상을 위해 시행되었다. 그렇기에 자격을 갖추기 위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상황 속에 있는 수험생들에게 버스운전자격시험을 위한 좋은 교재 한 권이 출간됐다.

수험서 전문 출판사 에듀웨이에서 <기분파 버스운전자격시험 필기>를 선보였는데 명불허전의 교재다. "출제되지 않는 이론에 시간낭비 하지 말자!"라는 전면 북 커버의 문구 하나가 에듀웨이 출판사가 뿜어내는 전문성의 포스를 보여준다. 이 자신감,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책을 펼치고 알았다. 북 커버의 문장이 허언이 아니구나! 정말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핵심 이론을 한 권에 슬림하게 담았다. 그렇다고 내용의 부실함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교통 운수사업 관련 법규는 물론이거니와 자동차 관리 요령, 안전운행 요령, 운송 종사자로서 갖추고 있어야 할 서비스와 자세까지 콘텐츠의 꼼꼼함이 그물처럼 촘촘하다.

각 섹션별 필수적인 암기를 요하는 기본 개념을 한눈에 보기 좋게 요약했다. 정말 출제되지 않는 이론에 제발 시간낭비 하지 말라는 출판사 편집팀의 외침이 생생하다. 각 챕터를 시작하며 메인 키포인트로서 이것은 반드시 암기하라는 강조 또한 예사롭지 않다. 그만큼 많이 출제되었다는 강력한 암시다.

수험생은 제시되어 있는 학습 내용을 차근차근 공부하기만 하면 된다. 정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 넣어준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 아닐는지...

다양한 자격증 시험을 공부할 때 느끼는 그 내용의 막막함과 막대한 분량이 가져다주는 중압감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커다란 장벽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누가 좀 간추려서 "이것만 공부하세요! 이것만 외우세요!"라고 코치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에듀웨이의 <기분파 버스운전자격시험 필기>가 바로 이와 같다. 친절함의 극치!



사진에서 확인되듯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가독성을 빼놓을 수 없다. 제법 큰 포인트의 글자 크기와 전체적으로 시원스러운 다단 나누기를 통해 수험생의 피로감을 줄였다. 지루한 이론은 표 하나로 깔끔하게 묶었다. 또한 에듀웨이 수험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각 단원별 기출문제 수록은 기본이다. 거기에 덧붙여 문제마다 붙어있는 ★은 문제의 중요성과 출제 빈도를 한눈에 보여준다. 수험생을 위한 깨알 배려다.

책을 보며 가장 크게 무릎을 쳤던 부분은 책의 마지막이다. 부록으로 수록된 <핵심이론 빈출노트>.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험 속에서 태어나 평생 시험당하다가 시험으로 죽는 소위 시험 공화국 대한민국 국민들은 알 것이다. 시험장에 들어가서 시험지를 받기 전까지 그 자투리 시간에 한번 훑어보는 교재의 중요성과 아쉬움을 말이다.

그 짧은 시간에 벽돌 수험서를 꺼내볼 것인가? 에듀웨이 출판사의 다년간의 노하우와 강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바로 <핵심이론 빈출노트>다. 상식적인 부분은 걸러내고 혼동하기 쉽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이론들만 체에 걸렀다. 그 짧은 시간에 빠르게 한번 훑어보며 역하지각을 실현한다. 신의 한 수임과 동시에 혜자스러움을 느낀다.

SF영화에서나 보았던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네 삶은 땅의 반동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도로 대중교통은 여전히 우리 삶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중앙에 버스가 있다. 버스 차장 언니가 '오라이'를 외쳤던 부모님 세대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대중교통 왕자의 자리를 물려준 적이 없는 버스.

이제 그 버스를 운전하기 위한 버스운전자격시험은 수많은 예비 기사들에게 있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통과의례와 같은 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험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한 길라잡이로 에듀웨이 출판사의 <기분파 버스운전자격시험 필기>야말로 합격으로 가는 핵심 관통의 고속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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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읽는 사도신경
윤석준 지음, 한동현 그림 / 퓨리탄리폼드북스(PRB)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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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일 교회에서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오랜 타성에 젖어 습관적으로 되뇌는 주문과 같이 되어버리지 않았는지를 점검케 하는 책을 만났다. <지하철에서 읽는 사도신경>

사도신경은 모든 기독 신자들의 신앙과 믿음의 총체요 정수다. 2천 년 전 초대교회 사도들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믿는 정통 신앙이 그리스도를 따랐던 사도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공교회적으로 밝히는 거룩한 행위다. 그런데 대체 지하철과 사도신경,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지하철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모든 인간 군상의 현실적 삶의 애환이 담긴 공간이다. 책을 읽고 스마트폰을 보며 화장을 고친다. 또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신문을 읽으며 사색에 잠기고 때로는 피곤에 지친 육신에 잠깐의 쉼을 제공한다. 이렇듯 지하철은 현대인들의 일상성의 표상이다.

저자는 조국 교회의 신자들에게 있어 일상적 삶의 공간인 지하철에서의 짤막한 묵상을 제공하기 위해 책을 집필했다. 본문은 사도신경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의 사도신경 묵상과 통찰이 참으로 명품이다. 12장으로 구성된 사도신경의 내용을 건강한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균형 있게 기술했다. 결코 어울리지 않을듯해 보이는 일상으로 대변되는 지하철과 사도신경이라는 믿음의 진수가 기막힌 하모니를 이뤄 명품 묵상으로 재탄생했다.



매 챕터의 내용이 깊다. 그렇기에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더디다. 그만큼 생각할 거리가 많은 수작이다. '11장 나는 육의 부활을 믿습니다'는 신자의 삶에서 부활이 가지는 참된 의미와 가치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습관적으로 고백했던 '다시 사는 것'의 비밀이다.

저자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시간을 조명했다. 과거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미래는 상상 속에만 있다. 그러나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다. 그렇기에 그분의 지배 속에 있는 신자 또한 과거와 미래에 영향받지 않는 현재성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러한 신자의 현재적 삶은 세례라는 과거와 육의 부활이라는 미래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세례를 통해 신자가 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세례를 통해 과거의 내가 죽고 현재의 나로서 살아간다. 반면 미래에 일어날 신자의 육의 부활은 장래 하나님 안에서의 온전한 부활을 소망케한다. 즉, 세례를 통해 과거가 신자의 삶의 지평 속에서 실존으로 꽃 피었고, 육의 부활을 통해 미래가 신자의 삶에 침투했다.

현재라는 실존을 관통하는 세례와 육의 부활이 없이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이 땅에서의 현재만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삶이 마지막인 것처럼 '카르페 디엠'에 열광한다. 하지만 신자들의 삶은 다르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 속으로 수렴될 때 신자의 삶은 현실의 삶에 대한 충실함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언약적 삶'이라고 표현했다.

주일 아침마다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육의 부활을 믿는다는 단순한 고백에 이런 어마 무시한 진리가 녹아져 있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육의 부활을 믿는 신자는 대충 살 수 없다. 그렇다고 현재가 전부라는 생각으로 이전투구하는 삶을 살아서도 안된다.



사도신경을 이처럼 멋지게 풀어내다니 놀라울 뿐이다. 저자의 성경적, 신학적, 지적 통찰에 박수를 보낸다. 결국 책에서 말하는 요지는 지하철이라는 일상의 공간에 침투하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다.

일상과 신앙의 간극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살아가기에 신자들의 삶은 힘이 없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유난 떨지 마!"라는 자조는 신자의 삶이 얼마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교회도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이기에 적당히 허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자기 합리화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에 대해 일갈한다. 거룩함과 구별됨을 포기하는 현대 교회 민낯에 대한 뼈아픈 질책이다.

사도신경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계적 암기가 아닌 매 구절이 신자의 삶을 뒤흔드는 엄청난 고백임을 생각하며 천천히 고백해 본다. 매 구절에 대한 의미가 우리의 삶을 관통할 때 느끼는 이질적 느낌이 사뭇 새롭다.

떠밀려감이 지배하는 관성의 지하철과 멈춤이라는 묵상의 조화, 일상성의 대표 아이콘인 지하철과 신자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사도신경의 하모니가 한 권의 책에 응축되었다.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불협의 주제다. 특별하지만 평범한 사도들의 고백이 평범한 삶의 현장에 풀어질 때 신자에게 있어 지하철은 더 이상의 지옥철이 아니다.


<문화충전200% 카페를 통해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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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5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5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쟈쟈 그림, 김정화 옮김 / 길벗스쿨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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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동 판타지 문학계의 거장, '히로시마 레이코'의 인기 시리즈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5>이 출간됐다. 시리즈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이 책에서도 레이코 작가의 마법은 빛을 발한다. 마치 아이들을 피리 소리 하나로 유혹했던 피리 부는 사나이의 현대판 버전 같다. 15권에서는 기묘한 아우라를 뽐내는 전천당의 주인장 '베니코'가 직접 손님들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입이 근질거릴 정도로 쏟아내고 싶은 비밀을 지켜준다는 '시크릿 알약', 단기간에 뚱보에서 근육맨으로 탈바꿈시켜주는 '근육질 라테 프리미엄', 지나간 세월의 아름다움을 되찾아 준다는 '복스러운 복숭아' 통조림까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신비스럽고 요상한 과자와 간식거리로 다양한 연령의 손님들을 유혹한다.

베니코는 길에서 만난 12세 '아이네'에게 먹기만 하면 어떠한 비밀도 누설하지 않고 잘 간직할 수 있는 시크릿 알약을 건넨다. 절친인 '아유미'가 좋아하는 남학생의 이름을 알려주었기에 그 비밀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아이네에게 비밀 간수는 곤욕이다. 그러나 시크릿 알약 덕분에 손쉽게 비밀을 지킬 수 있었지만 알약을 과용한 부작용으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데...

또한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해변에서 멋진 근육질 몸매를 뽐내며 즐거운 시간을 계획하고 있는 21세 대학생 '마사오'는 베니코를 통해 받은 근육질 라테 프리미엄을 마신 후 근육 짱짱맨으로 거듭난다. 해변에서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또래 여학생들에도 인기남이 되는 행복한 순간,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49세 '스즈코'는 세월이 가져 간 학창 시절 자신의 찬란했던 외모를 그리워하는 영락없는 보통의 중년 여성이다. 동창회 모임을 앞두고 참석을 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폭삭 삭은 자신의 외모 때문이다. 전천당의 주인장 베니코는 이런 고민 속에 있는 스즈코에게 빛나는 청춘 시절 외모로의 회춘을 가능케하는 복스러운 복숭아 통조림을 내민다. 그러나 동창회를 잘 마친 후 귀가하는 길에 문제가 생기는데...



책을 끝까지 읽으면 15권에 등장하는 베니코가 베니코를 사칭한 가짜임을 알게 된다. 또한 가짜 베니코가 손님들에게 건넨 과자들은 모두 전천당 과자의 유사품이나 불량 과자다. 그래서 효과가 사라진 과자로 인해 손님들은 낭패를 당한다.

독자는 전작과 동일하게 책의 내용 중 전천당과 베니코에게 해를 가하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5권은 전천당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려는 세력들에 대해 진짜 베니코의 분노와 응징을 예고하며 끝난다.

레이코 작가의 책은 재미로만 끝나지 않는다. 항상 아동 독자들에게 교훈 한 가지씩은 선사한다. 그렇기에 일본의 정령이 빈번하게 출현하는 책이지만 건질 것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 이번 15권에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딱히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집 1호에게 책을 넘겨받은 후 순식간에 완독했다. 그리고 물끄러미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껏 베니코가 전천당에서 팔았던 정품 과자들이나 가짜 베니코들이 판매했던 소위 '짝퉁' 과자들이나 어차피 효과 면에 있어서는 오십 보 백 보다.

정품 과자들 또한 그것을 먹는 손님들은 일시적으로 자신의 소원을 이뤘고 설명서에 나온 대로 행하지 않아서 낭패를 봤다. 가짜 과자를 먹은 손님들도 일시적으로는 소원 성취를 했으며 마찬가지로 설명서의 규칙을 무시함으로써 곤경에 직면했다.

어차피 인간의 욕망은 가짜가 없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간 누구에게나 욕망은 동일하게 정직하다. 남보다 더 갖고 싶고, 더 예뻐지고 싶고, 더 인기를 누리고 싶은 것... 인간의 욕망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그 욕망을 다스리는 사람의 마음 상태가 욕망의 성취를 아름답게 지속시켜 꽃 향을 피워내느냐 똥내 나는 거름통으로 만드느냐의 차이를 만든다.

가짜 베니코가 준 짝퉁 과자를 탓할 게 아니라 전천당 시리즈에서 줄기차게 강조하는 설명서와 규정을 준수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인간의 간사한 마음과 가증스러운 욕심을 정죄해야 한다. 재밌다.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15권에서도 레이코가 레이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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