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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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

 

 

1.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는 섬뜩한 문장은 보이지 않는다. 개 같은 날들은 끝난 것일까?(DOG DAYS ARE OVER, 우고 론디노네) 존재와 죽음, ‘虛’,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의 제물론’, ‘부운몽(浮雲夢)’ 이런 단어들이 눈의 띈다. 달관일까 비관일까 다짐인가.

 

* 메모

 

 

 

- 환갑 46쪽

 

제 나이도 모르던 아이가/ 환갑을 맞아 그걸/ 잊지 않으려 애쓰는 모양이/ 더 아이 같다// (어느 날 죽음이 내 방 문을 노크한다 해도 읽던 책장을 황급히 덮지는 말자)

 

- 군밤 88쪽

 

하루 묵혀/ 이틀 묵혀/ 오늘 밤에는/ 군밤이 잘도 익는구나

 

- 모국어 99쪽

 

누구에게나 모국어는 슬픔의 제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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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즐거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양억관 옮김 / 에이지21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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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 양억관 옮김, 고독의 즐거음, 에이지21



1. 일본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이중 번역한 책. 소로의 여러 저서와 글에서 문구를 발췌했다. 《월든》《시민의 불복종》에서 보았던 문구가 많다. 명언집이나 발췌록은 간결하지만 원전의 문맥이 생략되어 있어 동떨어진 느낌이 나는데, 《월든》의 생태학적 관점에 따라 쉽게 읽힌다.



* 메모

- 그들에게는 찢어진 바지를 입고 걸어 다닐 바에는 부러진 다리를 끌며 다니는 것이 나은 것이다. 신사는 자신의 다리에 사고가 일어나면 고치지만 바짓가랑이에 사고가 일어나면 눈길도 주지 않고 내버린다. 21쪽



- 나도 아주 섬세한 바구니를 짠 적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살 만한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바구니를 짜는 일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할 만한 방법을 연구하는 대신 바구니를 팔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93쪽



- 그루터기는 도끼로 쪼갤 떄와 난로에서 타오를 때 두 번 나를 따스하게 해준다. 이보다 더 효율 높은 연료가 어디 있을까. 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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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대하여 마지막 왕국 시리즈 2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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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 옛날에 대하여, 문학과 지성사



1. ‘옛날’은 언어 이전의 세계이므로 언어로 설명이 불충분한, 나아가 설명이 불가능에 가까운 세계다. 태양 별 동물 인간의 생성 이전의 시원적 세계다.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마지막 왕국’을 사는 우리에게 태아의 시기인 ‘최초의 왕국’과 수태 이전의 ‘옛날’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시간에 대한 집요하고도 고집스런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저자의 『은밀한 생』을 흥미롭게 읽었다면 이 책 또한 매우 친숙하지만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 메모

- 과거(passè)는 바꿀 수 있지만 옛날(Jadis)은 바꾸지 못한다. 시대에 이어 국가, 공동체, 가족, 생김새, 우연, 즉 조건이 되는 무엇이 끊임없이 과거를 좌지우지한다. 질료, 하늘, 땅, 생명은 영원토록 옛날을 구성한다. 19쪽



- 옛날은 과거에 비해 반드시 우리가 살았던 적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 첫 번째 특성이다. 옛날이 존재하는 자들의 수나 존재했던 자들의 수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계속해서 솟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은 과거 전체보다 더 거대한 우물이다. 162쪽



- 일정한 햇수가 흐르면, 성년(盛年)은 노인으로 변한다. 노인이 더 늙은 노인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더 늙은 노인이 죽은 자가 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하지만 고대 프랑스인들이 vieillonge(최고령 노인)라 부르던 것 가운데서도 원(圓)은 완성되지 않는다. 아직도 세 가지 장례를 치러야 한다. 죽은 자가 고인이 되게 돕고, 고인이 조상이 되게 돕고, 조상이 비개인화되고 신의 질료로 환원되어 햇살 속을 떠도는 먼지를 통해 귀환할 때까지 도울 필요가 있다. 그제야 비로소 완전히 지워진 그의 이름이 갓난아기처럼 새로운 이름으로 이름의 원천에서 태어날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혼불이 나돌아 다니므로 얼굴에서 광채가 사라진다. 광채는 시간 속을 떠돌다가 다른 얼굴, 즉 갓난아기의 얼굴에 가서 닿는다. 갓난아기의 얼굴이 노인의 얼굴보다 더 쪼글쪼글한 것은 그래서이다. 40쪽



- 우리는 시각적 근원이 전무한 내면의 이미지들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에 살았고, 보기도 전에 꿈꾸었다. 대기(大氣)의 존재가 되기 전에 들었다. 호흡하기 전에 언어와 접했다. 제대로 발성하기도 전에 이름과 단어의 지배를 받았다. 단어를 분절해서 발음하고, 언어를 옹알거려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중략) 우리는 비가시적 선행성에서 움튼 새싹들이다. 31쪽



- 물고기들은 고체 상태의 물이다. 새들은 고체 상태의 바람이다. 책들은 고체 상태의 침묵이다. 48쪽



- 언어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의 집이다. 56쪽



- 겐코 법사는 시간에 관련된 두 가지 역설을 제시했다.

첫 번째 역설. 기원은 축적된다. 최초의 고대인들은 가장 최근의 사람들보다 덜 오래되었고, 옛날의 밀도도 낮다. 최근의 사람일수록 더욱 박식한 자, 더욱 전문성이 있는자, 더욱 농축된 자, 더욱 도취된 자이다. 겐코 법사는 1340년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여름을 불러들이는 것은 봄의 쇠퇴가 아니라 그보다 강력한 무엇이다. 결코 쇠하지 않는 무엇이 있다. 중단을 모르는 발아가 있다. 시작하는 것들에는 종말이 없다.” 시간은 기원에 존재하는 종말의 부재를 규정한다. 순전한 출발이다. 옛날이란 완결될 수 없는 출발이다. 51쪽



- 꿈은 부재하거나, 먼 곳에 있거나, 사라졌거나, 죽은 사람들을 이곳에 있는 것처럼 나타나게 해주는 것이다. 이곳에 있기는 하나 그들이 머무는 ‘이곳’은 공간의 차원(살아 있는 자들의 경우)도 시간의 차원(죽은 자들의 경우)도 아니다. “그는 꿈속에서 이곳에 있다.”라는 말은 시간 이전(그가 꿈속에 있으므로) 이며 공간 이전(그가 꿈속에 있으므로)의 어느 이곳을 가리킨다. 171쪽



- 속담은 시간의 내벽에서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린다. 사람들이 입을 갖다대면서 차츰 언어가 벽 위에 응고되었다. 중얼거림이 반향되면서 소리의 안개가 쌓여갔다.


속담은 언어의 종유석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세계에서 흘러내린 방울이다.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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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 빛과 색채의 화가
박규리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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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리,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빛과 색채의 화가), 미술문화


1. 2017년 1월 22일 오후,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근대미술거장 시리즈 중 마지막 순서였던 유영국 작가의 『절대와 자유』를 관람했다.


빨강 파랑 녹색의 삼원색과 굵은 선 분할로 대표되는 강렬한 이미지와 함께 눈길을 끈 것은 여러 번의 덧칠을 통해 그림의 입체감과 질감, 심리적 변화까지 드러내 준 마티에르였다.


1916년 4월 7일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2002년 11월 11일 영면할 때까지 그의 일관된 관심은 ‘추상’이었고 대표 주제는 ‘산’이었다. 고향에 있는 응봉산과 멀지 않은 죽변항에서의 기억이 예술적으로 승화되었을 것이다. 형식이 추상이라면 정서는 고향이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처럼, 출근노동자처럼 성실하게, 심지어 아들 결혼식날에도 식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서, 심장수술 한 번과 심장박동기 수술 일곱 번, 고관절수술 두 번 등 열두 번이 넘는 수술, 여덟 번의 뇌출혈 뇌출혈 그렇게 총 38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누구를 괴롭히거나 일체 아픈 내색을 하지 않고(209쪽) 작업을 이어갔다.



2. 이 책은 그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연대기 순으로 담고 있다. 1916년생이니 일제강점기, 미군정, 군부독재, 민주화과정까지 오롯이 몸으로 겪어낸 분이다.


책에서 일제치하 예술가로서의 자의식, 이념대립에 대한 비판의식, 소위 ‘국전’으로 대표되는 한국미술계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역사가 생생하다. 일본 유학시절 도쿄문화학원 동문 김병기, 이중섭, 경성 제2고보 동기 장욱진, 아내 김기순, 자식들(리지, 자야, 진이, 건이) 까지, 그는 말수가 적고 교우관계가 넓지는 않았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곁의 사람들을 살뜰히 챙겼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작업과 전시를 이어갔던 그의 예술혼이 읽어나가면서 그 모든 것이 그의 ‘선택’에 의해 이뤄낸 것이었으므로 그는 참 행복했을 것이다.



“한 작품은 다음 작품을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던 유영국, 시대를 그를 심어놓고 흐른다. 꽃은 열매를 보지 못했다.



* 메모



- 김환기와 장욱진이 자연에서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추상으로 변모하였다면, 유영국은 처음부터 추상에서 시작하여 점차 자연적 요소를 반영한 추상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는데, 67쪽




-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산’을 주요 모티브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유영국의 산은 그의 가슴에 사는 산이었다. 산에는 다 있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면, 다채로운 색! 실로 조형의 원리를 실험할 수 있는 모든 요소뿐 아니라, 어둠과 빛, 구름과 바람, 적막과 풍요, 사계절의 풍부한 변화 속의 심오한 원리가 산에는 모두 다 담겨 있었다. 119-121쪽



- 유영국의 산은 밖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있는 산이었다. 자신이 잉태하고 자신이 기른 산,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산속에 들어가 산을 못 보고 내려오듯이, 산속에 들어서면 산을 그릴 수 없다. 산을 내려와서야 비로소 원거리의 산이 보이듯이, 멀리서 바라봐야만 산을 그릴 수 있다. 결국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123-124쪽




- 만년의 유영국은 이렇게 말했다.

60세까지는 기초를 좀 해보고 자연으로 더 부드럽게 돌아가 보자는 생각으로 그림을 했었다. 현재 나에게는 노인으로서 노년의 흥분이 좀 더 필요하다. 요즈음 내가 그림 앞에서 느끼는 팽팽한 긴장감, 그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고 새로운 각오와 열의를 배운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긴장의 끈을 나의 내면에 바싹 동여매고 작업에 임할 것이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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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민음의 시 221
서윤후 지음 / 민음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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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후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민음사



1. 파스칼 키냐르는 “과거(passè)는 바꿀 수 있지만 옛날(Jadis)은 바꾸지 못한다.”고 했다(『옛날에 대하여』)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윤색되고 변형되다가 어두운 바닥에 침전된다. 잊고만 싶은데 자꾸만 기억해야만 잊혀질 수 있다는 역설. 지금의 나가 그때의 나로 되돌아가는 과정은 아프지만 시원하다.



서윤후 시인의 첫 시집에 자주 등장한 가족(아버지, 동생)이라는 그물은 성기지만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옛날’의 다른 이름이다.


* 메모


- 퀘백 16-17쪽 부분

나와 동생, 차례를 기다리며 이곳에서 귀한 검은 눈알을 꺼내 두었다// 중략// 불 꺼진 벽난로 앞에서 그날 밤 한 개의 그림자를 나눠 덮고 잠에 들었다



- 나의 연못 18-21쪽 부분

1.
우리는 아직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은 동생

3.
내가 자주 가는 연못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물방개 튀어 오르고 발을 담가도 혼나지 않을 깊이, 연못을 잊은 사람들은 오랜 잠수 시합을 하고 있거나 저수지에 갔을까 바다가 되기엔 담가야 할 발목들이 부족한 이곳은

6.
나는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처럼/ 책상 밑에 숨는, 아직은 작고 연약해서/ 이불이 너무 커 밤새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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