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 빛과 색채의 화가
박규리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규리,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빛과 색채의 화가), 미술문화


1. 2017년 1월 22일 오후,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근대미술거장 시리즈 중 마지막 순서였던 유영국 작가의 『절대와 자유』를 관람했다.


빨강 파랑 녹색의 삼원색과 굵은 선 분할로 대표되는 강렬한 이미지와 함께 눈길을 끈 것은 여러 번의 덧칠을 통해 그림의 입체감과 질감, 심리적 변화까지 드러내 준 마티에르였다.


1916년 4월 7일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2002년 11월 11일 영면할 때까지 그의 일관된 관심은 ‘추상’이었고 대표 주제는 ‘산’이었다. 고향에 있는 응봉산과 멀지 않은 죽변항에서의 기억이 예술적으로 승화되었을 것이다. 형식이 추상이라면 정서는 고향이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처럼, 출근노동자처럼 성실하게, 심지어 아들 결혼식날에도 식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서, 심장수술 한 번과 심장박동기 수술 일곱 번, 고관절수술 두 번 등 열두 번이 넘는 수술, 여덟 번의 뇌출혈 뇌출혈 그렇게 총 38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누구를 괴롭히거나 일체 아픈 내색을 하지 않고(209쪽) 작업을 이어갔다.



2. 이 책은 그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연대기 순으로 담고 있다. 1916년생이니 일제강점기, 미군정, 군부독재, 민주화과정까지 오롯이 몸으로 겪어낸 분이다.


책에서 일제치하 예술가로서의 자의식, 이념대립에 대한 비판의식, 소위 ‘국전’으로 대표되는 한국미술계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역사가 생생하다. 일본 유학시절 도쿄문화학원 동문 김병기, 이중섭, 경성 제2고보 동기 장욱진, 아내 김기순, 자식들(리지, 자야, 진이, 건이) 까지, 그는 말수가 적고 교우관계가 넓지는 않았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곁의 사람들을 살뜰히 챙겼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작업과 전시를 이어갔던 그의 예술혼이 읽어나가면서 그 모든 것이 그의 ‘선택’에 의해 이뤄낸 것이었으므로 그는 참 행복했을 것이다.



“한 작품은 다음 작품을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던 유영국, 시대를 그를 심어놓고 흐른다. 꽃은 열매를 보지 못했다.



* 메모



- 김환기와 장욱진이 자연에서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추상으로 변모하였다면, 유영국은 처음부터 추상에서 시작하여 점차 자연적 요소를 반영한 추상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는데, 67쪽




-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산’을 주요 모티브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유영국의 산은 그의 가슴에 사는 산이었다. 산에는 다 있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면, 다채로운 색! 실로 조형의 원리를 실험할 수 있는 모든 요소뿐 아니라, 어둠과 빛, 구름과 바람, 적막과 풍요, 사계절의 풍부한 변화 속의 심오한 원리가 산에는 모두 다 담겨 있었다. 119-121쪽



- 유영국의 산은 밖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있는 산이었다. 자신이 잉태하고 자신이 기른 산,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산속에 들어가 산을 못 보고 내려오듯이, 산속에 들어서면 산을 그릴 수 없다. 산을 내려와서야 비로소 원거리의 산이 보이듯이, 멀리서 바라봐야만 산을 그릴 수 있다. 결국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123-124쪽




- 만년의 유영국은 이렇게 말했다.

60세까지는 기초를 좀 해보고 자연으로 더 부드럽게 돌아가 보자는 생각으로 그림을 했었다. 현재 나에게는 노인으로서 노년의 흥분이 좀 더 필요하다. 요즈음 내가 그림 앞에서 느끼는 팽팽한 긴장감, 그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고 새로운 각오와 열의를 배운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긴장의 끈을 나의 내면에 바싹 동여매고 작업에 임할 것이다. 2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