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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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출간된 책인데 그 당시 조국 교수(현 민정수석), 변호사 문재인(현 대통령)의 정치입문과 대권도전을 예견하고 있어서 놀랍다. 2017년 정권교체 이후에야 비로소 집중적으로 언론이 보도하는 BBK사건의 개요를 알기 쉽게 요약적으로 설명해주고, 경제권력인 삼성 이건희 일가의 편법 세습 과정도 역시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주장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삼성을 바라보는 국민의 욕망에 관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삼성의 편법 세습과정을 비판하면서도 대한민국을 장악한 삼성에 누구나 입사하고 싶어하고, 자기 자식도 기왕이면 삼성 같은 대기업에 입사시키고 싶어하는 욕망이 충돌하는 경우 개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같은 문제 말이다.




‘아큐’식의 정신승리법이 아니라, 문제는 삼성이 아니라 삼성을 편법과 탈법으로 장악하고 경영하는 이건희 일가이다. 따라서 우리 국민은 삼성이 더 일류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감시와 비판하고 국민의 뜻을 실행할 정부를 선출하는 것에 하나의 방안이 있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다. 이는 마치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개인과 국가의 분리와 마찬가지로 이해하면 된다. 개인의 욕망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본능에 가까운 욕망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방법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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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의 턱 J.H Classic 10
오현정 지음 / 지혜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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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정 시집, 몽상가의 턱, 지혜

 


한 편의 호흡들이 긴 시집이다. 여행을 통해 구체성이 살아있는 시어들을 전편에 고루 배치하고 있다. 사물을 집요하게 바라보려는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결과물이다.

 

‘턱’이라는 단어에 집중해서 동음이의어를 발랄하게 사용하며 변주해나가는 표제작「몽상가의 턱」은 말놀이를 넘어서는 철학이 담겨 있다. 의외로 내가 좋았던 시들은 여백이 많은 시였는데 첫 시인「오늘」물구나무서기를 형상화 한 「하늘치기」, 콩의 입장에서 진술하는 「시루 속의 검은 콩」등이었다.

 

 

- 오늘 12쪽

 

지금이 가장 좋은 때

 

첫 해산 후 숲길 걷는/ 지금이 가장 좋은 때

 

이제까지의 부끄러움 다 가려주는/ 활엽수가 친구하자는/ 지금이 가장 좋은 때

 

오후의 햇살이 남은 꿈을 찾아드는/ 지금이 가장 좋은 때

 

나는 어리석었지만 고통의 詩를 빚는 행복한 시간

 

먼 길 돌아 다시 출발점에 서있는/ 지금 여기 그대 함께라면

 

오늘이 내 가장 좋은 때

 

 

- 하늘치기 54-55쪽 부분

 

피가 거꾸로 쏟아질 것만 같은 날/ 나는 물구나무서기로 머리를 식힌다 (중략)

 

어깨넓이로 벌린 팔꿈치에 힘을 주고 누른다/ 뻗은 두 다리를 곧게 하늘 향해 차오르면/ 꺾인 발끝은 다시 나를 보며 중심 잡는다 (중략)

 

- 몽상가의 턱 57-58쪽 부분

 

잠 없는 몽상가들은 얼굴 중앙에서 아래쪽까지/ 이어지는 부분에 손을 괴고/ 오늘밤도 그럴 턱이 있나/ 주억거리던 생각을 발음하다 턱이 빠질 때쯤/ 한 턱 낼 일, 터트리지

 

김수영의 거침없는 기개의 턱은 풀을 일으키고/ 아고리의 섹시한 턱은 불멸의 그림을/ (중략)

 

레드카펫의 문턱에는 몽상가의 삶이 턱을 괴고 사유중이지/ 버릇과 인상을 턱이 빠져라 하초에 힘을 주고 씹을수록 열리지 않는 궁/ 꿈꾸는 자의 턱살을 만지려 훗날의 맥을 짚었지/ 기둥을 세우려 동시교정에 들어간 문리의 턱뼈/ 턱tuck잡힌 날렵한 턱시도 언제 입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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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량의 위험한 물질이다 모:든시 시인선 3
유정이 지음 / 세상의모든시집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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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이 시집, 나는 다량의 위험한 물질이다, 세상의 모든 시집


시집의 첫 번째 시 「온유한 독서」부터 흥미롭다 배수아의 소설집 『뱀과 물』이나 에세이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에 나오는 중국·러시아·몽골의 국경지대인 ‘알타이 지방’처럼 들풀이 바위틈에 낮게 피는 초원의 나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 첫인상을 안고 읽어나가니 이란성 쌍둥이 같은 시 「국경 너머의 잠」과 「잠 너머의 국경」이 눈이 들어온다.



또 어둡고, 단절된 ‘골목’의 이미지도 좋다.“아버지의 골목은 검은 도화지처럼 어둡다”(「경비원 아버지」)) “저녁의 방향으로 어깨를 기울이는 골목”(「골목의 이유」) 같은 구절이 맘에 와 닿는다. 그 시들의 화자처럼 나한테도 많은 골목이 생겨버렸는지도 모르겠다.




- 온유한 독서 13-14쪽

밤새워 읽은 책은// 이본異本이었어요// 밑줄 그어 두었던 문장은 모래화석이 되었죠// 눈으로 읽은 글자는 귀로 모여// 버스 터미널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내거나// 바퀴를 굴리며 떠나갔어요// 질문 없는 나라에 도착한// 선박이 밤새워 읽은 것은 두꺼운 안개였습니다// 새벽에 깨어나면 우리는 어두운 색깔,// 내가 읽은 페이지는 찢어진,// 아니죠, 찢긴// 너무 더러운 바닥이었어요


- 고독은 골목과 같아서 42-43쪽 부분

검은 커튼을 사방으로 쳐놓고/ 당신은 너무 깜깜하지/ 멀거니 서 있던 가등街燈이 뭐라 뭐라 주억거렸다는 것을 알아/ 그 가녀린 불빛으로/ 어떻게 당신을 속속들이 누빌 수 있겠어

한결같이 당신에게는 골목이 많고/ 우리는 한결같이 어두웠어/ 계속해서 막아서는 양파껍질처럼/ 당신은 벗겨도 벗겨도 골목이라는 것/ 벗어날 수 없는 골목이라는 것

내 생을 골목의 한 때라고 말하지 않겠어/ 골목은 골목이어서 거기 있었고/ 당신이 골목이어서 나는 걸어 들어갔던 것/ 골목이어서 어둡고, 무겁고, 고요한 것/ 당신이 골목이므로/ 더 이상 당신을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것


- 국경 너머의 잠 22쪽

티벳 북부 상그릴라는 어디를 딛어도 변방이다 수요일을 종일 걸어 수요일에 도착하는 설산 아래, (중략)

바로 앞줄에서 낮이 끊기면 캄캄한 어둠을 이어 붙이고 걸어야 한다 한 발씩 걸으면 한 발씩 어두워지는 길, 앞서간 시간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혀를 대보면 사지로 뻗어오는 시큼한 별빛들 이국의 밤을 맛있게 구워 놓는다 더는 갈 수 없을 때 거기가 정상이다 (중략) 서울에서 잠들면 북안까지가 국경이고 네 옆에 누우면 너 이전이 국경이다 오늘 밤은 너 이후에서 잠든다


- 잠 너머의 국경 23쪽

네 시가 지나면 마른 빨래들이 돌아왔다/ 바람의 기별을 하나씩 개켜 두는 동안/ 구부정한 저녁이 처마 밑으로/ 마른 흙 툭툭 털면 들어선다/ 밤은 낮게 내려깔리고 나는 값을 지불하듯/ 하나씩 세어보던 초록 잎사귀를/ 검은 하늘에 떨어뜨린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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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쏜살 문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사노 아키라 지음, 박명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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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사노 아키라 소설, 태풍이 지나가고, 민음사




동명의 영화를 극장에서 본 지 꽤 되었다. 영화를 떠올려보면 몇 장면만 끊어진 필름처럼 드문드문 머리에 박혀 있었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기억이 떠올랐고 멀리 떨어진 곳에 사시는 부모님과 같이 사는 아내와 딸이 생각났다. 소설가이면서 십오 년 째 소설을 쓰지 않고 도박에 가진 돈을 탕진하는 ‘료타’.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이혼한 부인과 그들의 아들 ‘신고’.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걷는 듯 천천히’ 보여준다. ‘분양’단지와 ‘임대’단지의 부의 불평등문제와 노인빈곤문제, 점점 옅어져 가는 가족의 끈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이야기다. 태풍으로 비바람이 쏟아지는 밤에 세 가족이 문어 모양의 미끄럼틀에서 쪼그려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과 료타의 어머니가 베란다에 기르는 귤나무에 찾아오는 청띠제비나비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메모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것은 교코가 늘 소중하게 지켜 왔던 것이었다. 절실한 언어로 주고받는 대화가 자아내는 인간의 우매함과 잔혹함, 아름다움 그리고 희미한 희망. 교코는 이 이야기를 사랑했다. 언젠가 자신도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바랐던 시절도 있었다. 료타가 생활인으로서는 실격이었다고 해도 『무인의 식탁』은 그런 교코에게 목표와도 같은 책이었다. “잘 모르겠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88쪽




- 베란다에서 귤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근처에 있는 잡목림 속에서 녹나무를 먹고 자란 것이, 베란다 귤나무에 들어서 귀고 있었을 뿐이었던 청띠제비나비. 그게 어쩌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료타는 생각했다.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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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 전속 사진사의 부치지 못한 편지
장철영 지음 / 이상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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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영 글·사진,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이상

 

 

부제가 노무현 대통령 전속 사진사의 부치지 못한 편지.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서 인수인계를 위해 퇴임 후에도 계속 청와대에 남아있어야 했던 심경을 인터뷰한 장면을 본 적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안타까움이 묻어 나온다.

 

책의 형식은 대략 10-15줄 정도 대통령과 관련된 에피소드 다음에 사진이 배치되어 있다. 평소 잘 볼 수 없었던 담배 피는 모습이나 소파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손녀를 자전거나 카트에 태우고 다닐 때 그의 표정이 제일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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