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하의 야생학교 - 도시인의 생태감수성을 깨우다
김산하 지음 / 갈라파고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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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산하의 야생학교, 갈라파고스, 2016



저자를 알게 된 것은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서다. 서문 등에서 밝히고 있진 않지만 이 책에 담긴 글 중 몇 편을 신문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연재한 글을 모아 다듬은 것 같다. 저자는 인도네시아에서 자바 긴팔원숭이를 연구한 영장류학자다. 인간중심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뭇 생명’의 눈으로 세상을 인식해야한다는 관점, “일관되게 反 환경적인 사람보다는, 非 일관되게 친환경적인 사람”이 되자는 말에 공감한다. 다루고 있는 주제는 매우 다양하지만(스마트폰, 케이블카, 정글의 법칙, 동물원 등) 생태학적 시선에서 하나의 꼬챙이로 꿰어냈다고 생각한다. 짧은 호흡으로 시간날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




* 정글의 법칙 249-450쪽 요약

1) 종이 무척 다양하다는 것
2) 단일종이 절대 한 가지 삶의 방식을 우점하지 못한다는 것
3) 가장 창조적이고 독특한 생물이 산다는 것, 라플레시아는 수분을 위한 매개자로 벌이나 나비가 아닌 파리를 사용한다. 그러기 위해 악취를 내뿜는데, 실제로 라플레시아는 꽃이 피자마자 신체가 썩는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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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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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문학동네



1. 지난 여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를 봤다. 영화에 대한 기억은 서너 달이 지나 금방 잊혀졌다. 11월 25일 - 28일까지 베트남 다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을 책으로 내가 왜 이 책을 골랐을까. 5시간 동안 행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상황에서, 두께가 얇아 부담이 덜하고 여백이 많은 책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2011년 5월부터 7월 13일까지 니시니폰 신문에 게재된 ‘걷는 듯 천천히’에 몇 편의 원고를 더해 엮은 책이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앞서 겪은 산업화, 고령화 같은 사회제도적 변화 외에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매년 일본이 겪는 지진과 해일, 태풍에 관한 글에서 자꾸 우리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경주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 세월호 사건, 너무나 끔직하여 생각하기도 싫은, 일어날지 모르는 원전사고.

아무리 가볍게 읽으려 해도 자꾸 무거워지는 책, 검은 색 글자보다 흰 바탕의 여백에 가려 보이지 않는 말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막상 태풍의 눈은 잠잠하다.



- 지진에 비해 태풍에 관한 기억은 선명하다. 우리집은 낡고 기울어진 두 동짜리 목조 연립주택이었던 터라 매년 태풍 때가 되면 온 가족이 난리가 났다. 지붕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밧줄로 묶거나, 창 전체를 함석판으로 둘러막기도 했다. 그것은 평소엔 집에서 별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던 아버지의 역할이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빨래건조대 너머 펼쳐진 옥수수밭이 훤히 보이던 창문이 함석판으로 가로막히면서 6조 다다미 방은 갑자기 어두워진다. 밖에서 못을 치는 쇠망치 소리가 울린다. 이것이 나에게는 태풍의 소리다. 바람이 거세지면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기 위해 세숫대야가 방안에 늘어선다. 여섯 가족은 언제든지 근처 유치원의 교회로 도망칠 수 있도록 주변의 물건을 배낭에 채워 방 한가운데에 모인다. 덜커덕덜커덕 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멀고도 가까운 기억이다. 100쪽

- 도쿄에서 태어나 자란 내게 원풍경으로 불릴 만한 것이 있다면, 태풍이 지나간 뒤 쓰러진 옥수수밭, 가마쿠라와 그 안의 정적, 그리고 이사 후 오랫동안 함께하게 된 무기질의 주택단지, 세 가지다. 103쪽

- 연출은 연기 지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감독이 열 명 있으면 열 가지가 존재하는 애매한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 목표로 하는 한 가지만은 명백하다. 영화 속에 그려진 날의 전날에도 다음날에도 그 사람들이 거기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영화관을 나온 사람으로 하여금 영화 줄거리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내일을 상상하고 싶게 하는 묘사. 그 때문에 연출도 각본도 편집도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0-121쪽


- 우리가 4개월 전에 경험한 것은, 일본 어느 곳에 사는지에 관계없이, 지금까지 우리가 중요한 것을 외면하고 잊은 척하며 내달려온 문명을 근본부터 되묻는 사건이었다. 그 풍경을 앞에 두고, ‘미래’나 ‘안전’보다도 ‘경제’를 우선시하는 가치관이 경멸스럽다. 사태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댐과 도로가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그것이 쓸데없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돈이 움직인다는 식의 구도가, 원전을 둘러싸고도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눈을 흐리는 큰 원인 중 하나는, 신문과 방송이라는 미디어가 벌써 망각 쪽으로 방향키를 돌렸다는 사실이다. 그들 대부분도 역시 기득권층의 이익 안에서 눈이 흐려져버린 것이다. 229-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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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하기 -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설득과 소통의 법칙
윤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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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영, 대통령의 말하기(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설득과 소통의 법칙), 위즈덤하우스 2016



1.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봤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두 도시 이야기》이야기의 첫 단락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부산 지역구 국회의원, 부산시장 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는 고 노무현 대통령과 2016년 여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백무현 후보의 이야기. 부산과 여수, 백무현과 노무현, 1990년대와 2016년.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두 도시와 인물과 사회적 배경. 그때를 살았고 지금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연설기획비서관이자 제1 부속실장이었던 윤태영 씨가 쓴 ‘대통령의 말하기’를 읽었다. 같은 시절 청와대 참모였던 강원국 씨가 쓴 ‘대통령의 글쓰기’의 또 다른 버전처럼 느껴졌다. 요리사는 다르지만 요리의 주재료가 같기에 같은 맛과 같은 향이 나는 책이었다. 말하기든 글쓰기든 주제에 대한 깊은 사색 없이 양념만 많이 넣는다고 감동이 있는 요리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또 한 번 되새겼다.



2. 같은 이름, 다른 도시 (박동민)

이름이 같은 푸른 도시에서
이름이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이름이 같은 비를 맞으며 걸었던 기억이 있다

비에 젖은 책과
비는 피했지만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뒤집힌
치마의 주름만 남았다
한쪽 눈만 깜빡이는 형광등 아래

해독할 수 없는 너의
뭉개진 글자 같은 비밀의 페이지는 넘기고
다른 것을 틀리다고 생각했던 나의
빌미의 귀퉁이를 접어둔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가 뿌려진 곳
깊숙이 뿌리박힌 못들이 불쑥 튀어나오는 밤
접히지 않는 우산의 그늘에서 검푸른 버섯이 자라고 있다
이름만 같았던 한 사람이
이름만 같은 붉은 도시로 건너오고 있다




3. 메모

- 2001년 12월 ‘노무현이 만난 링컨 출판 기념회 연설 176쪽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패가망신했습니다. (중략)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독재자는 힘으로 통치하고 민주주의 지도자는 말로써 통치한다.’ 111쪽

- 비유가 사물을 비추는 조명이라면, 수사는 가치를 높이는 포장이다. 295쪽


- 하나의 연설문이 아니라 한 편의 시를 쓴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한 편의 시는 대체로 몇 개의 연으로 구성된다. 각 연의 시작이나 끝 부분에 핵심적인 문장을 동일하게 배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편에 걸쳐 일정한 운열과 리듬을 준다. 146쪽

- 토론에 이기는 것은 말재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토론에서도 밀리지 않도록 처신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토론에 나가지 말아야지요. ‘잘못했다, 미안하게 됐다’ 하고 그 토론에 나갈 것도 없이 ‘내가 미안하다’ 하면 토론 안 할 수 있거든요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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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486
이장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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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학과지성사, 2016




1. 이 시집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영원회귀’였다. 이 시집에 동명의 시가 있고, 시집 제목에도 ‘영원’이라는 단어가 있다.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해
1) 허무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형식이라거나, 2) 시간은 늘 새로운 사건을 발생시킨다는 그 사실일 변함없이 반복된다거나, 3) 생성의 상태, 즉 힘에의 의지들의 힘겨루기 상태가 영원회 반복된다는 등 수많은 해석이 있지만, 적어도 ‘삶의 단순한 반복이 영원회귀는 아니다.’는 것에는 일치한다.


‘오늘 아침은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하다’(「얼음처럼」)
‘당신에겐 매일 먼 곳과 가까운 곳이 생기고/나는 자꾸 일치하는 밤’ ‘리드미컬하게 다가오는 건 언제나/가까운 곳과 먼 곳이 바뀐다는 뜻/이제 가능해진다는 뜻’(「음악에게 요구할 수 있나」)


-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오늘 아침’이 오늘이 끝나면 ‘오늘 아침’이 아닌 ‘내일 아침’이 된다. 변화에 대한 감각하든 무감각하든 시공간은 변화하고 있고, 변화하는 시공간 속에 가능성이 태어난다는 뜻으로 읽었다.



2. 변화의 가능성만으로 진정한 변화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식과 행위의 영역이 다른 것처럼 인식하는 주체가 어떤 방향으로 행동할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가 남는다. 시인은 ‘정중동(靜中動)’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 겨울을 조금만 하려고 한다. 그것이 움직이는 만큼만.’ ‘머리는 꿈속에 있고 몸통은 굴러가기로 한다. 밤새 조금씩 움직이는 것만이 겨울이기 때문에.’(「아직 눈사람이 아닌」) ‘결국 발바닥이 온몸을 지탱하는 것이다. 발끝은 아니지만 발끝에서 시작되는 것이다.’(「표백」) ‘이것이 우리의 끝은 아니기 때문에/나는 너의 모든 것을 품고 싶은 것이다’(「괄호」)


‘전봇대 뒤의 세계’ 가녀리고 약한 존재, 어둠이 웅크린 곳에 시인의 시선이 멈춘다.
‘조용한 의자를 닮은 밤하늘’을 쳐다보며 시인의 목소리를 닮은 존재들이 겨우 발설하는 호흡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지만 자신이 그들을 위해 해줄 것이 마땅히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곧 불가능의 영역을 기억하고 되새기며 ‘기린과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의 사이에서’ 거닐 뿐이다.


‘기린은 기린인 것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이 도시의 골목들을 거닐 뿐/ 담장 바깥으로 넘어온 나무줄기를 느리게 씹으며 기린과/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의/ 사이를’ (「기린과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의 사이에서」)


3. 이 시인은 거대한 교각을 설치하기보다 흐르는 시내에 징검다리를 놓는 방식으로 독자가 건너편에 이르게 한다. 치밀하고 세세한 묘사 대신 길지 않은 호흡으로 이정표를 세우며 본질에 다가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깔끔하고 여백이 많은 작품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추천드린다.




- 얼음처럼, 12-13쪽

나는 정지한 세계를 사랑하려고 했다.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세계를.
나는 자꾸 물과 멀어졌으며
매우 견고한 침묵을 갖게 되었다.

나의 내부에서
나의 끝까지를 다 볼 수 있을 때까지.
저 너머에서
조금씩 투명해지는 것들을.

그것은 꽉 쥔 주먹이라든가
텅 빈 손바닥 같은 것일까?
길고 뾰족한 고드름처럼 지상을 겨누거나
폭설처럼 모든 걸 덮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가위바위보는 아니다.
맹세도 아니다.

내부에 뜻밖의 계절을 만드는 나무 같은 것
오늘 아침은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하다
는 생각 같은 것
알 수 없이 변하는 물의 표면을 닮은.

조금씩 녹아가면서 누군가
아아,
겨울이구나.
희미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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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성동혁 시집 민음의 시 204
성동혁 지음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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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동혁 시집, 6, 민음사, 2014
#성동혁



1. 이 시집의 첫 번째 시와 마지막 시의 제목이 「쌍둥이」다. 영어로는 twins. 부모님을 뜻하는 parents처럼 복수를 써야 쌍둥이 모두를 지칭하게 된다. ‘s’를 빼면 쌍둥이 중 한명을 가리킨다. 탄생부터 나와 다른 무엇을 전제하는 존재. 내가 있어야 그가 있고 우리가 있다.



‘6’의 쌍둥이는 ‘9’다. 같은 이치로 ‘OK'의 쌍둥이는 ‘돈'(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위로 세우면 전자, 아래로 떨어뜨리면 후자). ’6‘에 대해 조금 더 연상해 보자. 육손이는 다지증의 일종인데 대개 엄지 두 개가 한쪽 손에만 발생하는 경우가 흔하다. 새끼발가락이 2개인 경우도 있다.



육손이의 쌍둥이는 한 손가락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곰배팔이(팔이 꼬부라져 붙어 펴지 못하거나 팔뚝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애꾸눈이, 절뚝발이, 딸깍발이, 절름발이 같은 ‘외돌토리들’이다. 동서남북상하 ‘육합(六合)’을 보아도 내 편이 없을 것 같은 그들에게 오감에 대한 욕구를 넘어 ‘생각하는 욕망’의 끄트머리, 지푸라기라도 되어주고 쌍둥이의 마음.




2. 시인은 세심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묘사보다는 서사와 대화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풀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교적인 시어가 많다. 시집 초반보다 2부, 3부의 시들이 좋았다.




- 나의 투우사 46-47쪽
- 식사기도

누가 나의 투우사에게 소를 풀었나

붉은 헝겊을 걸치고 복사뼈를 땅에 묻고
움직이지 않는 나의 투우사

사람들이 발등에 망치질을 한다
저녁이 온다
소가 온다!

나를 이를 악물고 식탁보를 뺀다
저녁이 온다고
소가 온다고!

저녁은 눈두덩 위로 떨어지는 유황 가루인가
아니면 무릎 위로 떨어지는 붉은 스프인가

궁창을 찌르는 철탑
뿔이 관통한 그의 손바닥에서 빛이 터져 나온다

검지를 관자놀이에 붙이고 투우사의 구멍 안으로 달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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