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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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문학동네



1. 지난 여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를 봤다. 영화에 대한 기억은 서너 달이 지나 금방 잊혀졌다. 11월 25일 - 28일까지 베트남 다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을 책으로 내가 왜 이 책을 골랐을까. 5시간 동안 행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상황에서, 두께가 얇아 부담이 덜하고 여백이 많은 책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2011년 5월부터 7월 13일까지 니시니폰 신문에 게재된 ‘걷는 듯 천천히’에 몇 편의 원고를 더해 엮은 책이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앞서 겪은 산업화, 고령화 같은 사회제도적 변화 외에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매년 일본이 겪는 지진과 해일, 태풍에 관한 글에서 자꾸 우리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경주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 세월호 사건, 너무나 끔직하여 생각하기도 싫은, 일어날지 모르는 원전사고.

아무리 가볍게 읽으려 해도 자꾸 무거워지는 책, 검은 색 글자보다 흰 바탕의 여백에 가려 보이지 않는 말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막상 태풍의 눈은 잠잠하다.



- 지진에 비해 태풍에 관한 기억은 선명하다. 우리집은 낡고 기울어진 두 동짜리 목조 연립주택이었던 터라 매년 태풍 때가 되면 온 가족이 난리가 났다. 지붕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밧줄로 묶거나, 창 전체를 함석판으로 둘러막기도 했다. 그것은 평소엔 집에서 별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던 아버지의 역할이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빨래건조대 너머 펼쳐진 옥수수밭이 훤히 보이던 창문이 함석판으로 가로막히면서 6조 다다미 방은 갑자기 어두워진다. 밖에서 못을 치는 쇠망치 소리가 울린다. 이것이 나에게는 태풍의 소리다. 바람이 거세지면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기 위해 세숫대야가 방안에 늘어선다. 여섯 가족은 언제든지 근처 유치원의 교회로 도망칠 수 있도록 주변의 물건을 배낭에 채워 방 한가운데에 모인다. 덜커덕덜커덕 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멀고도 가까운 기억이다. 100쪽

- 도쿄에서 태어나 자란 내게 원풍경으로 불릴 만한 것이 있다면, 태풍이 지나간 뒤 쓰러진 옥수수밭, 가마쿠라와 그 안의 정적, 그리고 이사 후 오랫동안 함께하게 된 무기질의 주택단지, 세 가지다. 103쪽

- 연출은 연기 지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감독이 열 명 있으면 열 가지가 존재하는 애매한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 목표로 하는 한 가지만은 명백하다. 영화 속에 그려진 날의 전날에도 다음날에도 그 사람들이 거기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영화관을 나온 사람으로 하여금 영화 줄거리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내일을 상상하고 싶게 하는 묘사. 그 때문에 연출도 각본도 편집도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0-121쪽


- 우리가 4개월 전에 경험한 것은, 일본 어느 곳에 사는지에 관계없이, 지금까지 우리가 중요한 것을 외면하고 잊은 척하며 내달려온 문명을 근본부터 되묻는 사건이었다. 그 풍경을 앞에 두고, ‘미래’나 ‘안전’보다도 ‘경제’를 우선시하는 가치관이 경멸스럽다. 사태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댐과 도로가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그것이 쓸데없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돈이 움직인다는 식의 구도가, 원전을 둘러싸고도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눈을 흐리는 큰 원인 중 하나는, 신문과 방송이라는 미디어가 벌써 망각 쪽으로 방향키를 돌렸다는 사실이다. 그들 대부분도 역시 기득권층의 이익 안에서 눈이 흐려져버린 것이다. 229-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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