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디디며 헛짚으며 모악시인선 1
정양 지음 / 모악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언제나 좋다고요.



언제나 재밌고 언제나 촌철살인하시죠.


좀 아픈 부분도 있고요.


'토막말'이던가... 이후로 난 정양시인의 팬.


토막말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 놓고 간 말

썰물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씩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조각을 녹이며 견디던

시리디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심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

.........

- 정양, 『눈 내리는 마을』(모아드림 刊, 200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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