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스 페르민 지음, 조광희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짧은 소설들만 읽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니까, 아마도 레몽 장 때문인 듯싶다. 그의 <책 읽어 주는 여자>로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충분히, 짧은 소설들이 내 조건상 맞아떨어지기 시작한 때. 바로 첫 아이를 임신하고서부터다. 벌써 15년이나 흘렀다. -ㅇ-; 짧다고 해서 울림까지 짧은 것은 아니라 그간 흡족했다. 그러나 이 책은 좀 미흡한 감이 있는 책이다.

프랑스 청년이 하이쿠를 다룬 소설을 썼는데 엔간히 신비롭게 썼다. 금발의 네이킹걸(네에쥬Neige;불어로 '눈', 나쓰메 소세키의 부인이랜다.)도 나오고, 그녀를 사랑하여 시를 쓰게된 일본의 유명한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등장한다. 주인공 유코의 스승이기도 하다. 읽으며 웃긴 좀 웃었다. 프랑스 애들....이란... 쯧!

프랑스의 아를레아 출판사가 1999년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한 첫 기획으로 선택한 작품이라는데 독자들은 이 소설에 열광했다 한다.

하이쿠시집을 읽노라면 그 열일곱자보다 각주가 더 마음을 붙잡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각주 없이 읽는 하이쿠는 이미 하이쿠가 아니라는 점을 언제나 명심하고 있다. 또한 그런 시가를 즐기는 문화, 교환하며 읊는 문화가 은근히 부럽기도 하다. 정말 등따시고 배부를 때 하는 놀이이겠으나 길 위에 누워있지 않은 마당에랴!

길 위에서 하는 놀이는 긴 울림을 가진다.

-얼어붙은 물항아리에 금가는 소리

(오늘 밤엔 물이 얼었다)

내 잠을 깨웠다             -바쇼

어느 날 아침, 얼어붙은 물항아리에 금가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릴 때, 물방울같은 한 편의 시가 맺혀서 영혼을 일깨우고, 그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순간을 말하는 순간이다. 그것은 이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은 채 저곳으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그것은 시인이 되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꾸미지 말 것. 말하지 말 것. 바라보고 그리고 쓸 것. 몇 개의 낱말, 열일곱 음절만을. 한 편의 하이쿠. 어느날 아침, 우리는 깨어난다. 그때, 세상의 놀라움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마침내 세상에서 비켜앉아야할 시간이 온다. 어느 날 아침, 우리는 자신의 삶이 어떤 무늬를 그리는가를 천천히 바라보기 시작한다. 

; 그래, 그런 순간이 있다. 나비가 잠깐 꽃 다 진 철쭉 이파리 위에 앉을 때 그 때일 수도 있고, 빗줄기 하나에 흰 꽃이 툭 떨어질 때 그 때일 수도 있고,  내가 한밤 자다 일어나 귓전을 어지럽히던 모기 한 마리를 탁, 파리채로 때려눕힙 때 그 때일 수도 있다. 어느 순간에 갑자기 물고기를 잡은 것 같은 느낌. 나도 모르게 그 물고기가 된 느낌의 날. 그러나 이는 이상하게도 아직 삶과는 멀다.

-일곱은 마술적인 숫자이다.

그 숫자는 사각형의 균형과 삼각형의 현기증을 닮아 있다.

시인의 길을 택했을 때, 유코는 열일곱 살이었다.

그는 열일곱 음절의 시를 썼다.

유코에게는 일곱마리의 고양이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겨울마다 일흔일곱 편의 하이쿠를 쓰겠다고 말했다.

그 나머지 계절에는 집에 머물러, 눈을 잊을 것이다.

;유코는 눈에 대해서만 쓴다.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사실은 자꾸 오버랩이 되긴 했다. 각자의 장점이 다 있었는데 유난히 이 '눈'은 정말 읽고난 후가 눈맞고 집에 돌아온 듯했다. 탈탈 털지도 않았는데 곧 녹아버렸다.

첨.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저 책표지는 어울리지 않는다. 눈이 그냥 녹아버릴 듯한.. 눈송이도 아름다운데, 혹은 그저 100% 백지도 있는데.. 하필! 쯧.

저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은 영화도 있다. 가브리엘 번 주연인데... 책의 무게를 제대로 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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