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의 1/4 - 2004 제2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한수영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광고문구가 그럴 듯했다. 게다가 따끈따끈하고.

날도 마음도 더워 시를 읽는 것이 공부 수준이 되어 버리고 근래 소설에 눈길이 돌려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그저 따끈따끈하다, 라는 것이 이 책을 든 이유였다. 실망을 했다기 보다 지겹다,라는 것이 우리소설 읽기 중단의 이유였으므로 근래 나는 그 지겨움에서 많이 빠져 나온 듯하다. <공허의 1/4>. 재밌다기보다는 잘 썼다.  

제28회 <오늘의 작가상> 공동 수상작
생의 고통과 그것을 응시하는 작가의 깊이 있는 시선이 엿보이는 완성도 높은 소설

오늘날의 기성 작가들 속에서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역량, 특히 단 한 군데서도 허점을 드러내지 않는 확고한 안정감을 보여준다. ― 김화영(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매우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삶의 신산스러움에 대한 이해도 깊고, 문장도 정확하고, 문학적인 재능도 보이고, 구성력도 뛰어나다. ― 이남호(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선정자들의 말 또한 맞다. 빨리 읽어나갈 수 있게 쓰는 것은 재능이다. 단문으로 서술되는 이야기는 읽는 사람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뒤에 수록된 단편 두 개는 그런 점에서 좀 미흡했지만 그걸 뛰어 넘어 버렸다는 점에서도 이 작가 한수영을 높이 산다. 허점이 없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허점이 없으므로 잘 읽히는 것이고 빨리 읽을 수 있는 것.

바하를 닮아버린 삼십대 독신여자, 류머티즘 관절염에 걸려 지독한 통증에 시달리는 못생긴 여자의 이야기가 재미있을 리는 없다. 유머러스하다는 광고는 그래서 허위다. 그러나 블랙유머라고 한다면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 아파트에서 한 한 달 정도 단지를 벗어나지 않고 살아보면 그 안의 일은 여기 빠삭하게 드러나 있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형상화 면에서 빈틈이 없다.

관절염과 10년도 넘게 비가 오지 않기도 한다는 룹알할리사막의 연계, 살찐 엉덩이와 사구沙丘의 유사성, 서로 이유야 다르지만 공동의 목적일 수 있는 한 개 이상향의 상정. 이것은 작가의 스토리장악력을 뜻한다. 나는 스토리를 장악한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 다만 그 안의 생활이 여전히 고통스럽다는 것이 읽기의 최대 난점. 환타지를 사랑하는 이유가 거기 있음을 생각한다면 내가 전적으로 만세를 부를 수는 없는 소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좋은 소설가 하나 만났다는 사실 하나로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다.

- 심수봉의 노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어떤 사람이 정말 클래식 애호가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시험지. 아무리 열렬한 클래식광이라 해도 비 오는 날 바흐나 쇼팽의 음악보다 심수봉의 노래에 더 가슴이 찡해지면 그 사람은 꽝. (p.170)

; 나는 클래식광도 아니고 그런 날 심수봉의 노래에 찡하지도 않는다. 그런 날이면 동사서독 OST를 듣는 편이다. 그러나 심수봉의 노래가 심사를 아주 긁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 레토릭이 없는 그의 가사가 거슬리는 점을 빼면 그런 대로 들어줄 만한 날도 있긴 하다. 어쨌거나 저 리트머스 시험지는 나를 시험하지 못한다. 물론 주요인은 내가 클래식광이 아니라는 것.

-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인터넷을 타고 룹알할리로 간다.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룹알할리 사막의 석양 무렵 풍경이 깔려 있다. '공허의 사분의 일'이라는 이름답게, 모니터에 뜬 룹알할리는 텅 비어 있다. 온통 붉게 물든 모래언덕뿐이다. 언젠가는 꼭 저곳으로 가야지.(p.12)

; 왜 주인공이 그곳으로 가야 하는지는 읽어봐야 알고.(스포일러는 좀 삼가야지) '공허의 사분의 일'이라는 이름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가끔 공허가 무섭지만 공허가 세상 모든 생명체의 절대적인 조건이라는 게 빈번하게 마음을 가볍게 한다. 언젠가는 꼭 가야지, 하는 '저곳'이 없는 나로서는 현재의 삶이 공허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찾아야 하는 걸까, 저곳이라는 것을? 매번 문학작품을 통해 '저곳'을 엿보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내게 '저곳'은 없다. 이는 풍경에 어린 상처가 없음일 것이고, 그만큼 내가 무심하게 세상을 거치고 보내 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에 대해 불만도 만족도 없다는 것이고. 그럼 나는 왜 사나? 어째 이런 물음, 꽤 낯익다. 왜, 라는 것은 집어쳐 버린지 오래됐고 대신 '어떻게'를 집요하게 파보자고 했던 기억도 난다. 그 '어떻게'가 공허에 닿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같은 여름날이야말로 참으로 공허를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릴없이, 치우침도 없이, 아무것도 없이 공허의 날이, 사막같은 나날이 흘러간다. 이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내 몸 속의 물은 적당하다.

룹알할리를 검색 중에 이런 책이 나왔다. 어쩌다 생각나면 읽어 봐야지. 그래서 포스트잇한다.

절대를 찾아서 / 윌프레드 세시저 지음


아라비아의 남동부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 사막인 엠프티 쿼터(Empty Quarter) 건조하고 광대한 이 사막을 저자가 1945년에서 1950년까지 5년간의 아랍 유목생활에 대한 저자의 체험여행 기록한 보고서이다.
낮과 밤의 극심한 온도 차, 타는 듯한 갈증, 때로는 낙타를 죽여 식량으로 삼아야 할 만큼 혹독한 배고픔, 아랍 부족들 간의 습격과 약탈, 그에 따른 추적과 보복 등 그 사막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배두인들의 생활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들어있다.
영화「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원작인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 - 국내에서는 <사막의 반란>과 더불어 아랍 여행기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5년간의 아랍 유목생활 체험이 과장없이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때묻지 않은 거대한 사막과 더불어 아랍의 문화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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