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세트 - 전4권 (양장)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래곤 라자>를 읽던 시간의 기억이 참 오래간다. 이영도는 참으로 출중한 소설가다. 아무리 뒤집어놓고 봐도 이만한 소설가를 찾기 힘들구나, 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각권당 500페이지를 넘기고야 마는 이 긴 소설을 읽는 데 일주일도 안 걸렸다. 환타지장르를 토착화하기 위해 이만큼 노력하는 작가도 드물다. 그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지 읽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여기에는 다섯 개의 종족이 나온다.

-나가:발자국 없는 여신(물)의 선민 종족. 아라짓왕국을 멸망시킨 장본인들로 심장을 적출하여 반 불사의 몸이 되었으며. 말보다는 니름이라는 정신적 의사소통수단을 사용한다.

-레콘: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땅)의 선민 종족. 숙원의 추구자들이며 강대한 힘과 체력을 갖고 있으나 물을 두려워 한다.

-인간:어디에도 없는 신(바람)의 선민 종족. 자신들을 이끌어줄 왕을 찾아 헤매거나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다.

-도깨비:자기를 죽이는 신(불)의 선민 종족. 두번 죽는 자들. 불을 사용하며 불을 주로 세상에 희극적 요소를 부여하는 데 사용하길 즐긴다. 모든 도깨비는 거의 완벽한 씨름꾼이다.

-두억시니:자신을 보지 못하는 신의 선민 종족. 첫번째 종족. 자신들의 신보다 더 위대해진 첫번째 종족이 남기고 간 찌꺼기. 왜 자기 종족이 신을 잃었는가를 탐구하는 찌꺼기들.

전설의 형태로 드러나는 새로운 세계. 기반이 튼튼해뵈는 전설은 이야기의 토대가 되고 수수께끼의 열쇠가 된다.

-키탈저사냥꾼들의 옛이야기:

네 마리의 형제새가 있소. 네 형제의 식성은 달랐소. 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독약을 마시는 새, 그리고 눈물을 마시는 새가 있었소. 그 중 가장 오래 사는 새는 피를 마시는 새, 가장 빨리 죽는 새는 눈물을 마시는 새요. 피를 마시는 새가 가장 오래 사는 건, 몸 밖으로 절대 흘리고 싶어하지 않는 귀중한 것을 마시기 때문이지. 반대로 눈물은 몸 밖으로 흘려 보내는 거요. 얼마나 몸에 해로우면 몸 밖으로 흘려 보내겠소? 그런 해로운 것을 마시면 오래 못사는 것이 당연하오. 하지만 눈물을 마시는 새가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하더군.(2권 366)

왕은 눈물을 마시는 새요. 가장 화려하고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빨리 죽소. ...... 왕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마시는 사람, 저 토디 시노크(자칭 왕)는 이제 선지자(왕을 추대한 자)가 흘리는 눈물을 받아먹지 않아도 되니 살아남을 수 있을 거요.(2권 430)

이제 왕은 없다. 그리고 왕이 이 모욕에 사과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왕이 없으리라. 당연히 사과의 왕과 귀환의 왕은 다른 인물일 수밖에 없다. 과거를 정리할 왕과 미래로 나아갈 왕은 다르다.(4권 525)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유료도로당이었다. 이들의 정체성은 시사하는 바가 큰데...

-여행자와 유료도로당:

'여행자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그럼 우리 유료도로당은 무엇인지 말해주겠소?'

'우리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를 위해?'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3권 118)

삶에 대한 시각이 드러났다 생각되는 부분이다.

-도망치는 토끼:

토끼가 표범에게 不殺의 도덕을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토끼도 웃을 것이다. 태어난 대로 생긴 대로 살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죄다. 자기가 약하니까 표범에게 먹혀야 된다고 믿는 토끼다. 토끼는 자신을 부정의 대상이 아닌 긍정의 대상으로 바꾼다. 표범보다 약한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자신을 선택하는 대신 표범보다 작아서 잽싸게 토끼굴로 뛰어들 수 있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자신을 선택한다. 도망치는 토끼는 아름답다.

지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 자기 자신이라는, 세상에서 완전히 긍정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상에게 족쇄를 두르는 것은 죄다.(6권 315) 

메모량이 스무페이지가 넘는다. 읽어 보니, 독서 중 이영도의 이 새로운 세계를 그리는 데 열중했던 듯.  책을 읽으면서 그가 무엇을 집요하게 탐구해가고 있는가가 보였다. 아직 정돈되지 못한 이 세상이 오히려 난관이었을 것이다. 이리 삐죽 저리 삐죽, 자꾸 드러나는 세계의 예각들. 그 예각들 하나하나를 모조리 다루고자 하는 마음이 보였으나 아마도 스스로 만족하진 못했으리라.

문체의 문제도 좀 얘기하고 싶은데. 입담이 좋아지면 문체는 개성을 잃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개성이다 말할 수도 있겠으나, 미리 단정하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은 문장이 힘을 잃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소설가는 조용히 조곤조곤 바라보고 있는 것이 가장 독자를 편하게 할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