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에 바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31
이선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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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우, 마음이 많이 안 좋을 때 시가 아주 잘 읽혀요. 그래서 누가 '나, 요즘 시만 읽어!' 그러면 마음이 좀 심란해져요. -_- 

그렇게 말한 사람은 떠나고 나는 여전히 시집을 들고 앉아 읽고 있다. 시집을 꺼낼 때나 읽고 있을 때 그다지 슬프다거나 마음이 안 좋다거나 불편한 적이 없어서 나는 그의 염려에 대해 걱정 말라고, 내 가슴을 탕탕 쳐보였다. 그러나 이 시집을 읽고 있을 때, 이 시인의 평범이, 이 비범한 평범이 은근히 슬프고 서러워서, 나의 평범 또한 그지없이 불편해져서 괜스레 시집에서 눈을 떼고는 정처없이 방 안이나 창 밖을 헤매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내게 무척 잘 읽히는 시집이었다.

요즘 나는 '시'를 쓰려고 노력한다. 매일 누군가의 시집을 들고 읽으며 내 졸렬한 글쓰기를 통렬해 한다. 하긴 어쩌다 나의 시에 스스로 만족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때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대개는 없다. 나는 그래서 시집을 텍스트로 사용하곤 했다. 그것은 이미 시집이 아니었던 것이고 매일 시집을 들고 읽고 있더라도 나는 시를 읽는 것이 아니었다. 그간 시집을 읽으며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 그 속에 든 '시'를 배우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 것이 이 <평범에 바치다>이다. 읽으며 새삼 느꼈다. 내 마음, 참 안 좋은 때야, 지금.... 내가 나를 속이고 있다가 어쩌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에게 들키고 말았다. 고로 나는 이제서야 이미 떠나간 그의 말을 이해한다.

'시를 쓰려고 노력한다'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게다가 '시인이 되고자 한다'는 일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이선영은 담담하게, 그러나 따끔하게 나를 일깨운다. 평이한 산문같은 시들이, 내가 시를 쓰고자 노력하는 순간에, 그 한 순간에 잃어 버리고만 시의 마음과 생각의 방향을 잊지 않고 걸어간다. 그 산문같기도 한 시들이 찰칵, 내가 순간 잃어버린 그것을 사진을 꺼내놓듯 불쑥 내 눈앞에 디미는 것이다. 그 앞에서 나는 그지없이 불편한 내 맘을 보고야 만다. 시를 읽으며 나는 매번 불편하다. 몸에서 마음에서 힘이 포옥 빠져나가 버린다. 그리고 나는 나의 '시'를 매번 포기해 버린다. 나의 평범이란 아직 바친 것 하나 없는 조야한 평범. 그래서 내가 바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척 알뜰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시집 읽기가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사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읽는다. 최근 신간 '일찍 늙으매 꽃꿈'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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