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드거 소텔 이야기 1
데이비드 로블레스키 지음, 권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장편소설다운 맛을 오롯이 지닌 소설이다.
무슨 일이든, 아니 가장 중요한 일은 가장 깊숙히 들어가 진중하게 맞이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다.
소텔가에 일어난 일이란 게 그렇고 그 일은 앨먼딘에게도, 에세이에게도, 그 이전에 포르테에게도 똑같이 일어난 일이라 생각한다.
아주 빨리 읽히고 내가 살아보지 않은 세계의 일이라 경이롭다.
내게도 소텔견을 키울 수 있는, 아니 같이할 수 있는 자질이 있을까 돌아보았다.
어린 시절, 우리집에는 커다란 개가 많게는 세 마리, 적게는 한 마리가 두엇 작은 개들과 함께 있었다.
그 잃은 개들을 떠올리며 읽었다.
1권과 2권 모두, 앨먼딘의 장이 가장 신비롭고 따뜻하고 다정하고 아름다웠다.
혹시 외로움이 느꺼지거나 사는 게 참 팍팍하다 싶을 때 이 두 장을 읽는 것이 나름의 위로가 되겠다 싶다.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가능하다고 느껴질 때, 세상에 질서와 의미가 있고, 고드름에 투과된 맑고 밝은 빛이나 세상이 멎은 듯한 해돋이의 고요함처럼 세상이 심지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에, 사소한 일 하나가 어긋나기만 해도 낙관의 베일은 찢겨나가고 황폐한 세상이 펼쳐졌다. 그들은 그런 시간을 기다려내는 법을 배웠다. 치유도, 해답도, 보상도 없었다. 1-276
어떤 나무의 특정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허공의 어떤 지점을 향하면서 나무들을 흘깃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얼마나 기만적인 거래인가. 아주 조용할 때조차도 작은 무엇인가가 흔들렸고, 그림은 이내 망가졌다. 1-277
에드거가 진실을 깨달은 건 그로부터 훨씬 뒤의 일이었다. 그날 밤 모자가 두 사람 스스로를 미혹시켰다는 것을,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의 대가와 결과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미혹시켰다는 것을. 그들이 앞으로 어떤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이미 일어난 일만한 실수는 없다고, 그들의 침착함은 그저 겉치레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미혹시켰다는 것을. 1-286
생각해 보면 미래는 위협도, 약속도 거의 품고 있지 않았다. 1-379
.....몇 달 동안 애써 수립한 일과를 따라해야 했다. 그렇게 해야 그들의 삶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터였다. 힘든 시절이면 길게 늘어났다가 결국 다시 행복으로 돌아오는 용수철처럼. 에드거는 영원히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는 용수철 같은 세상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에드거는 아주 오랫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1-380
변화는 맞서 싸우거나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야. 유일한 차이는, 변화를 받아들이면 다른 일도 할 수 있다는 거지.맞서 싸우면 같은 지점에 평생 갇히게 되는 거야. 1-388
에드거에게는 지극히 기괴한 저주가 내려졌다. 증거는 없이 진실을 아는 것이었다. 1- 454
뭐든 좀 느리게 갈 생각만 있다면 세상에서 네가 갖고 싶은 건 뭐든 다 가질 수가 있어. 2-66
소년이 보기에, 남자는 어딘지 처연한 데가 있었다. 처음만난 사람에 대한 인상으로는 이상한 생각이었지만 뭔가 체념적인 분위기가 남자를 휘감고 있었다. 만화에서 머리에 비구름을 이고 다니는 사람처럼, 1센트짜리 동전을 주우려고 몸을 숙이면 주머니에서 잔돈이 우수수 떨어지는 사람들처럼. .....그의 눈빛은 오랫동안 쌓인 절망감의 결과인 호의적인 근심을 담고 있었다. 2-164
안 좋아하셨는데 왜 그만두시지 않았어요?
그만 두면 무에 할 일이 있다구? 내가 농장 일보다 더 잘 아는 건 없는데. 난 저주받았어, 그게 문제라구. 내가 안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잘 못 하는 건 아니었거든. 2-224
삶이란 나무꼭대기에서 득실대며 기다리는 우연들의 연속인지도 모른다.그 우연이란 녀석이 산 채로 잡아먹을 작정을 하고 나무 밑을 지나가는 아무 생명체에게나 덤벼드는 것이다.당신은 우연과 일치의 강에서 헤엄친다. 가장 행복한 사건들에 매달린다. 그리고 나머지는 흘려보낸다.소년은 개들을 안전하게 맡아 줄 착한 남자를 만났다. 주변을 둘러본 당ㅅㄴ은 세상에서 가장 유별한 일이 그곳에 앉아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떤 일들은 분명했지만(이미 일어났으니까) 미래는 추측할 수 없다. 아이다 페인이라면 모를까. 다른 모든 이들에게 미래란 친구가 아니다. 인간은 맞바꿀 인생이 하나뿐이다. 그런 기분이었다. 소년은 스타차일드공동체에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제가 가진 것을 자신이 아끼는 다른 것과 맞바꿀 수 있었다. 그 드문 것. 어떤 길을 가더라도, 인생은 소진될 것이다. 2-299
소년이 정말 곁에 있었던가? 아니면 단지 제 안에 있는 시간의 작은 조각이었던가? 2-305
소년이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 이제 뭔가 완전히 옳지가 않았다. 마당의 아무것도, 집 안의 아무것도 소년에 대해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이 서서히, 서서히 잊어 가고 있다는 걸 앨먼딘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본질과 그토록 오래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법이다.
그런 상황에선 언제나 모험이 뒤따랐다. 2-307
때로 세상일이란 그랬다. 그것 앞에 자신을 내던지고 뭐든 일어날 일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그것이 두렵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저 일어서서 그것에 맞서야 했고, 그것은 기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2-319
죽음이 아득한 형체일 뿐인 세상에 사는 것과 그것을 손 안에 쥐고 있는 것은 아주 다르다. 2-326
트루디는 가장 취약할 때 클로드에게서 닻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보았다. 혼자서는 멈출 수 없던, 뒤로 미끌어지는 걸음을 중단할 기회를. 그녀는 클로드에게 가르에 대한 추억을 얘기해 달라고 했다. 2-331
역설은 가르에 대한 클로드의 추억이 그녀의 심란함을 덜어줄수록, 클로드를 짓눌렀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트루디는 어린 가르에게, 십대의 가르에게, 그리고 그녀가 알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알게 될 거라 기대했던 가르에게 마침내 작별을 고할 수 있었다. 2-334
오랙동안 열심히 그 일을 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대부분 훈련이란 개에게 인간의 의지를 강요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또는 훈련에 마술적인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는 모두 틀렸다. 진정한 훈련은, 관찰, 경청, 개의 발랄한 기질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었다. 강을 바다로 바꿀 수는 없지만 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도록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 줄 수는 있다. 2-336
클로드느 뭔가를 성급하게 결정하는 걸 싫어했다. 곰곰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앉아서 심사숙고할 시간이 없었다. 2-423
클로드의 표정은 완벽한 백지 상태, 아니 여러 표정의 뒤범벅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표정, 짓다 만 표정, 다음 표정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각인되지 않는 표정. 에드거는 누군가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 표정에서 염려, 공포, 욕망, 또는 증오를 엿보리라 생각했다. 2-429
그나저나...
클로드는 왜 가르를 죽였을까. 포르테를 가장 사랑한 사람은 누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