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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장이의 딸 - 상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박현주 옮김 / 아고라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장편소설.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중에도 미니멀리즘으로 분류되는 영역에 있다는 명성을 들었고 내가 읽은 것은 오로지 <좀비>가 전부다.
1936년에 유대인 수학교사가 두 아들과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미국, 그러니까 아메리카가 아닌 유-에스로 가는 배에 올랐다. 아프리카 노예선만큼이나 혹독한 배 위의 생활로 쥐한테 내장까지 다 파먹힌 제이콥 슈워트와 그의 가족, 그 끔찍한 배 안에서 11시간의 진통을 거쳐 태어난 딸 레베카의 이야기. 인생 A가 어떻게 완벽한 인생 B가 되는지, 얼마나 이민자의 삶이 고단하고 고독한지, 읽어가며 슬프다. 게다가 이 소설은 아주 색다른 반전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그저 리얼리즘 소설을 즐기는 것 이외의 발견이 들어 있다.
사토장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몰라서 사전을 찾아 보았다. a gravedigger 사토莎土장이. 무려 우리 단어보다 쉬운 영단어.
제이콥이 꼭 이렇게 비참하고도 굴욕적으로 살아야만 했을까 하는 의아함이 생겼던 것은 아마도 내가 변화 적응에 능한 한국인이기 때문이고, 나아가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을 피해 외국으로 밀항했던 경험이 없기 때문이고, 독일인=나치스 같은 비합리적이고 악의적인 등식 바깥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 음악과 영화
영상과 꿈을 파는 사업. 항상 영화 산업은 표를 파는 것을 최고 목적으로 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쉽게 끌리지 않게 된다. 갤러허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장 싫어하는 요소는 음악이었다. '영화음악'. 보통 영화에 나오는 음악은 그의 신경에 거슬렸다. 감정을 일으키기 위해서, '장면에 맞추기' 위해서 음악을 감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기분 나빴다. 극장마다 오르간 연주가가 연주를 했던 당시 무성 영화에서 이어져온 잔재다. 모든 게 과장되어 있고 비뚤어져 있다. 가끔 그는 음악에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가끔 영상에 눈을 감고 싶었다.- 재즈피아노 연주로 시간을 때우고 있는 부잣집 아들 쳇 갤러허 (하권 155p.)
이제는 오로지 영화의 파편들만 계속 반복해서 보아야 했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몇 시간 후에야 첫 장면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첫장면을 보고 나서 곧 극적인 결말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야기가 무한 반복되었다. 등장인물도 그대로였다. 카메라가 '새로운' 장면을 비추기 전에 배우들이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알게 되었다. 관객들은 매번 다른 사람들이고 스스로의 감정에 따라 웃는데도, 관객들이 언제 웃을지 알고 있었다.화면을 보지 않아도 음막만 들으면 무슨 장면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영화를 보다 보면 인생에 대해서 무엇을 기대해야할 지 혼란스런 감각을 가지게 된다. 인생에는 음악이 없어서 실마리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은 침묵 속에서 일어난다. 인생은 앞으로만 진행되고 뒤의 일밖에 기억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다시 재생되지 않으며 기억될 수밖에 없지만 그나마 그 기억도 불완전하다. 인생은 영화처럼 간단하지 않고 기억해야할 것도 너무 많다.
"그리고 잊어버린 것들은 마치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처럼 사라져버리죠. 우는 대신에 웃는 게 나아요." - 극장 매표소 직원 헤이젤 존스 (하권 158p.)
:::: 1.
- 영화가 싫은 이유가 영화음악일 수도 있다.
- 영화는 영화다 라는 영화가 진실로 영화에 대한 영화는 아니었다.
-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헤이젤 존스의 웃음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음에도 저 현상은 동일하다.
돌이킬 수 없는 것과 돌이켜야만 하는 것은 절대 병치할 수 없다.
:::: 2.
아마도,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번역한 사람의 번역이 아니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소설이었다. 오츠. <좀비>로 나를 괴롭힌 기억이 남아 있었는데, 역시나 극세심리묘사로 시작되는 초반 부분에서는 난독증세가 왔었다. 그러나 이런 묘사가 반드시 필요한 주제와 소재가 있는 법이다. 아주 적확하게 그 능력을 구사한 J. C. 오츠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안쓰럽고 안타깝고... 행복해지라.. 기원도 참 어줍잖은 국외자의 감상적이고도 일회적인 자기기만인 듯하여 마음놓고 붙여주기 힘든, 한 마디로 참 폭폭한 소설이라 하겠다. 참으로 황량하고 거칠다, 그 세상은.
:::: 3.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으로서는 요 며칠 안에 다른 이야기로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
이 안에서 본 학살과 학대, 공포와 냉소, 진실과 거짓, 사랑과 열정 들이 한동안 나를 떠날 것 같지 않다.
레베카. 위대하다고까지 얘기하는 번역자의 말 같은 건 신경쓰이지 않는다.
끝까지 읽으려면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지만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마지막 50페이지는 진정 압권이다.
놀랍게도 총 900여 페이지를 압도하는 긴장과 위무가 함께 한다.
진정한 '엄마'는
그저 우리 기억 속에 단편적으로 새겨 있는, 그것도 '나'를 위해 존재했던 그런 고마운 존재 이상임을,
삶을 용기 하나로 끈질기게 살아낸 실체적 존재임을 일깨우리라.
읽는 도중 뺀 별 하나를 더해 별 다섯 개를 진하게 채운다.
소설다운 소설이란 역시 장편임을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