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유를 알 수는 없지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왜 범행장면이 초두인가가 읽는 내내 궁금했다.
수사는 그 범행을 실제와 가깝게 그려가는 걸로 소비되고
덕분에 내용이 자꾸 반복되는 감이 없지 않아
2/3가 되어가도록 지루했다.

절정과 대단원이 급전직하인 이 소설의 구성법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내용상 반전이 분명히 있고
작가가 진심으로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거기 있다.
그러나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읽는 중간에 뒤에 있을 반전 내용을 한번쯤은 생각해 볼 것이고
대개는 그 중 하나가 정확히 그 반전을 알아맞춘다.
물론 그렇게 되면 자연히 반전의 트릭은 효과가 반감되는 것이고.
좀더 유능한 추리물 작가가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헌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사색이기에 그렇다.
'순수'에 대한 생각도 그러하고 말이다.

이 소설은 언페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작가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이 뒤쪽에 몰려 있고
그럼에도 그 설치 장면들은 친절하지 못하다.
더구나 '사건 뒤집기'에 몰두해서
사건을 풀어가고자 하는 독자에게 주는 힌트는 상당히 인색하다.
반전에 이어지는 아주 짧은 부분에다
작가만 아는 결정적 단서를 흩뿌려댔으니 이는 분명 페어가 아닌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전지적 작가 시점이 이 소설에 어울리는 것인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만약 서술적 자아가 중구난방이 아닌 한 사람이었다면
아예 인물로 챕터를 나눠서라도 진행했다면
어쩌면 상당히 긴박했을 수도 있었다.

그외, 감정적 정서적 측면에서 용의자 X의 헌신도, 그 헌신의 대상도 아름다웠다.
역시 너무 끝에 몰려 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지만.

과연 독자를 얼마나 속이느냐가 추리물의 관건이긴 하다.
작가가 이 구성법을 취한 이유도 저 '뒤집기를 위한 속이기'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범인을 숨기기 위해 진행에 온갖 트릭을 걸어놓는 것 바로 '속이기'
이 소설은 범행이나 범인을 아예 서두에서 드러내 버린다는 측면에서
그 '속이기'는 범인 찾기보다는 범인의 트릭에 더 중점을 두고 말았다.
결국 지루해진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범인 찾기였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장르를 벗어난 소설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다지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