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여자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유리 옮김 / 북하우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하필 23페이지는 삽화다. 하는 수 없이... 그 삽화의 내용은 이렇다.
 

갑자기 기억이 나는데... 이게 뭐지? 뭐더라?
분명히 있.었.던. 무엇인데...
그런 기억의 환기, 먼 훗날 그 환기를 위해
뇌가 자기만 아는 코드로 저장해 놓은 그것.
그러나 코드와 그 대상의 연결고리는 사라져 버리고
정작 남아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 코드 뿐일 때.

가령...
앞에 가는 차 안에는 물이 가득하고
뒤따라오는 차에는 새의 부리 같은 입만 보이는 사람이
운전을 하고 있다.
그걸 갑자기 목격했을 때.
물과 새라니...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삼수변에 새조자가 합해진 그 글자를 이름으로 쓰던 아이가 있었다.
혼자 있을 때면 자주 그 기분 좋은 울림을 혀끝으로 굴려 보았는데...
그 글자를 뭐라고 읽었을까. 그 애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그 글자는 사전에서도 어느 한 시기를 기점으로 사라졌다.
도서관을 다 뒤져도 그 글자는 없다.
사서도 그 글자는 어느 순간 다 사라졌다고 한다.
이유는 알려줄 수 없다고 한다. 

그 아이는 누구일까.
그 아이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마치 이마 이치코나 하츠 아키코의 만화같은 느낌이 드는 소설집이다.
17개의, 저렇게 이상한 이야기들이 아주 짧게 그러나 꽤 길게 여운을 남긴다.
오케이. 이런 소설들, 아니 이런 것들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야기들이다.
배웠을 때나 배우지 않았을 때나 똑같이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가장 좋았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 이야기는 매화나무.
일인칭 주인공시점이요, 주인공은 사람에서 매화나무까지다.
내가 매화나무다.
즐겁고 신비로운 상상... 읽어야 느낄 수 있을 것이니..
남산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이거... 사고 싶다.

이 소설집의 미덕은 귀엽고 발랄하고 깨끗한 비유들이다.
각 편마다 톡톡 살아나오는 그 비유들을 만나면 소리내어 한 번 더 읽어본다.
잃어버린 그 아이의 이름처럼 기분 좋은 울림을 혀끝으로 굴려보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이러느라고 내용을 놓친 소설들이 많았다.

잊지 않기 위해 그 열일곱 개의 이야기를 제목만이라도 남긴다.

초록 벌레
글자
내가 아니야
전혀 다른 이야기
걸을 수 있는 낙타
사각의 세계
어둠의 통조림
선물
바다 위의 보사노바

잠자는 숲
여름의 나날들
러스크 님
마술
Ambarvalia
스이코(水虎)
매화나무

그래... 아닌 게 아니라 잠자는 숲은 읽고난 뒤 자고 싶었다. 아니 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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