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세워(행1:21-26)


예수님께서는 살아생전 많은 제자들 가운데 12명의 사도를 선출하였습니다. 그들 12명의 사도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젤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그리고 가롯 유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늘 함께 하셨고, 그들과 따로 있을 때에 자신이 말한 비유들을 쉽게 설명해 주셨고, 그들이 세상에 나가 전도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에는 그들의 발을 직접 닦아 주셨고, 당신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떡과 잔을 나누셨습니다.

그렇다면 응당 주님의 돈독한 사랑을 받았던 그들 12 사도들은 주님을 위한 사도의 직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본래 ‘사도’를 칭하는 ‘아포스톨로스’는 ‘보냄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들 12사도는 당연히 주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이요, 주님의 뜻을 전하는 그 직무를 감당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들 12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집사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신하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웨이터로 자신들의 직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가롯 유다는 주님을 위한 집사나, 주님을 위한 신하나, 주님을 위한 웨이터로서 직무를 감당했던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직 제 자신이 가고자 하는 마이 웨이(my way)를 향해 나아갔던 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부여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의 직무를 제 욕망과 출세를 위한 도구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의 최후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지난 시간 살펴보았습니다. 그의 최종국 인생은 목을 매 자결한 줄이 떨어져, 땅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 나왔고, 온 몸이 피투성이로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는 버림받은 사람이요, 그의 몸은 ‘피밭’을 칭하는 공동묘지 위의 한 줌의 재로 사라질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생명과 진리를 위한 길을 걷던 사람이 제 욕망을 좇아 자기 자신의 마이웨이를 걷는 자가 있다면, 그의 생명은 생명으로서 가치가 있을 수 없음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유의하고자 하는 말씀은 자기 자신의 마이웨이를 걷다가 피밭이라는 공동묘지 위의 한 줌의 재로 사라진 가롯 유다를 대신할 사도 한 사람을 보선하는 장면입니다. 본문 21-22절 말씀은 가롯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선택하는 ‘그 기준’이 명시돼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사도 베드로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서서, 가롯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보선하는 기준으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그 하나는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항상 함께 다녔던 사람이고, 다른 기준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하실 때가지 늘 함께 동행했던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정말로 믿음이 돈독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든 120명의 사람들이 모두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그 자리에 그들 120명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예루살렘에는 마가의 다락방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거대하고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져 있었고, 원형극장과 경기장이 시가지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예루살렘 사람들은 마가의 다락방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것이요, 오히려 예루살렘 성안에 가득 차 있는 별천지 구경거리에 온갖 관심을 두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수십만에 달하는 사람들에 비해 지금 120명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들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여 기도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거리와는 달리 자신들만큼은 주님의 뜻을 받들어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들의 손이 주님의 손이 되도록, 자신들의 발이 주님의 발이 되도록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 120명의 제자들은 다른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믿음이 출중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기에도 충분한 자들이었음은 제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오늘 우리가 더욱 깊이 있게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들 120명의 제자들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늘 함께 동행 했던 자들이라면, 이들 120명의 제자들이야말로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최적격자라면, 이들 120명의 제자들도 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사도로 선택되기에 충분한 자들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본문 22절은 “하나를 세우자”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12명의 사도들 가운데 가롯 유다 한 사람이 제외되었기 때문에, 그 12명이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함에서 ‘하나를 세우자’는 의견입니다. 더욱이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를 상기하여 그 전통성을 이어가고자 하는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이들 120명 가운데에 ‘그 한 사람’이 선출된 것은 유독 그가 믿음이 출중하거나, 그가 재력자이거나, 그가 정치적인 영향력이 있거나, 그가 뛰어난 학식을 자랑하고 있거나, 그의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는 예수님으로부터 이미 12사도로 선택된 12사도들의 믿음과 인격과 형편과 처지를 살펴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12-16절에는 예수님께서 12사도를 선택하셨는데, 그 이름이 밝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16절 말씀에는 다른 11명의 제자들과 함께 가롯 유다를 소개하시는 부분이 후반부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롯 유다라”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입니까? 다른 11명의 사도와 함께 마지막 12번째 사도로 선택된 가롯 유다를 밝히는데, 성경 기자는 머잖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은 30냥에 팔 자임을 밝히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데오빌로를 향해 편지를 쓰면서 이미 이전에 경험한 일들을 되 뇌이면서 자신의 붓을 든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누가는 가롯 유다가 12사도에 선택되었지만 그가 머잖아 예수 그리스도를 팔게 될 자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 것을 예수님 당신은 모르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을 지으실 때부터 함께 하셨던 삼위일체의 제 2격 되시는 성자 하나님은 이미 가롯 유다가 자기 자신을 팔 자임을 알고 계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롯 유다를 자기 자신의 품으로 품으시고, 12사도로 선택해 주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당신의 품 속에서 가롯 유다의 연약함과 유약함이 견고해 질 것을 바라셨던 것입니다. 주님께로부터 사도로 선택된 이후에는 그의 인격이 스승을 파는 배신자가 아니라 더욱더 주님을 위한 집사로, 주님을 위한 신하로, 주님을 위한 웨이터로 그 인격이 다듬어지길 바라고 바라셨던 까닭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없었던들 결코 주님은 그렇게 배신자가 될 가롯 유다를 당신의 품으로 품지 않았을 것이요, 그를 12사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세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연약함과 유약함은 가롯 유다만 지녔던 성품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베드로는 성미가 너무나 급한 불같은 사람입니다. 그로 인해 매사에 실수만을 반복하던 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비겁한 인간이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 형제는 또 어떻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그들이 사마리아를 지나 갈 때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요한과 야보고는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해 “하늘에서 불을 명하여 저들을 멸하라”(눅9:54)고 할 정도로 과격하고 엉뚱한 자들이었습니다. 그토록 과격한 성품을 지닌 자들이었기에 주님께서 그들에게 ‘우레의 아들’(마3:17)이란 별칭을 부여하셨던 것은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분명코 세상 모든 권력을 장악할 것으로 요한과 야고보는 내다보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의 어머니를 대동하여,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기 아들들에게 영의정과 좌의정 자리를 하나씩 내어 주도록 청탁하게 만들었던 자들입니다. 주님을 위한 집사, 주님을 위한 신하, 주님을 위한 웨이터와는 달리 완전히 이중인격자처럼 세속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던 자들임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처절하게 기도하는 동안에도 그들 제자들은, 잠들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음에도 잠에 곯아떨어질 정도로 유약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던 인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로 불리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그 정도였으니, 이전의 세상 욕망을 누렸던 세리 마태나, 독립혁명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셀롯인 시몬이나, 그 밖의 다른 제자들 역시 얼마나 연약한 성품의 소유자들이었을지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많은 제자들을 제쳐 놓고, 심지어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때까지 따라다녔던 본문 속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든 120명의 제자들을 제쳐 놓고, 왜 하필 그들 12명을 사도로 선택하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가롯 유다를 선택하셨던 관점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가롯 유다의 유약함과 연약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주님께서 가롯 유다를 당신의 품으로 품으시고, 사도의 직무를 맡겨 주신 것처럼, 그들 11명의 사도들은 본문 속 120명의 제자들보다도 더 연약하고, 불 품 없고, 형편없는 과격한 인격의 소유자들이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들을 더 품으시고, 사랑으로 감싸 주시기 위해서, 사도의 직무를 맡기셨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 다른 많은 제자들을 제쳐 놓고, 심지어 본문 속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제자들을 제쳐 놓고, 유독 12사도를 택해 사랑과 관심을 쏟아부어주셨던 이유를 이제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잘 나서이거나, 그들이 다른 제자들보다도 더 똑똑해서이거나,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인격이 출중하거나 믿음이 출중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주님의 사랑과 관심을 더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연약하고 유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가롯 유다를 대신할 ‘한 사람을 세우자’고 제안하여, 그 한 사람으로 선출된 '맛디아' 역시 결코 '유스도'보다도 믿음이 출중하거나 인격이 훌륭하거나, 가진 게 많고, 배운 게 많아서 선출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본문 속에서 선출된 그 한 사람 맛디아는 그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절대적인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여러 방면에서 주님을 위한 집사와 주님을 위한 신하와 주님을 위한 웨이터로 봉사하고 섬기던 ‘여러 사람들의 중의 상대적인 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 한 사람으로 선출된 맛디아는 자신이 사도로 보선되었다고 해서 자만할 것도 없고, 특별한 존재로 인식할 것도 없고, 유별난 사람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120명의 사람들보다도, 심지어 자신과 경쟁하여 탈락된 유스도보다도 더 연약하고, 더 유약하기 짝이 없기에 주님께서 자신을 배려해서 사도로 세워주셨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자입니다.



이상과 같은 말씀 속에서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당신의 제자로 삼으신 것은 우리의 믿음이 출중해서가 아님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인격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완숙하기 때문에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가 아님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모난 성격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유독 우리를 당신의 사랑과 관심으로 품어주시고, 당신의 제자로 삼아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은 모습은 찬송가 310장의 ‘아 하나님의 은혜로’에 아주 자세하게 고백돼 있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저는 저 자신을 잘 압니다. 누구보다도 급한 성격의 소유자요, 조그마한 일 하나에도 밤을 지새우며 끙끙 앓는 유약하고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집안에 막내이기에 위로 형들과 누님의 도움을 받아 온 내가 어떻게 주님의 교회를 이끌며, 교우들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을지는 생각할수록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주님의 교회를 이끌도록 목사로 세워주신 것은 주님의 은혜와 관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임을 저는 잘 압니다. 주님의 그 크신 사랑과 주님의 그 크신 관심이 없었던들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없었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제가 주님의 교회를 이끄는 목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철저히 주님께서 품으시는 사랑과 믿음으로 인함이요, 이토록 연약하고 볼품없는 저를 격려해 주고 믿어주고 지금껏 격려해 주는 여러분들의 사랑으로 인함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는 저 보다도, 오히려 세상의 한 복판에서 치열하게 주님의 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러분들의 믿음이 훨씬 더 훌륭하다는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다른 누구보다도 형편없는 우리 자신을 믿어주시고, 당신의 제자로 삼아주신 것, 그보다 더 큰 감격과 감사가 어디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주님의 택함을 받았다고, 주님의 제자로 선택되었다고 결코 자만하지 마십시다.

그것은 내 믿음이 출중해서가 아닙니다. 내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볼품없고 초라한 나 자신의 인격과 성품과 믿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베푸신 한량없는 사랑과 관심에 의한 일일 뿐입니다.


그런 고백과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본문 속 ‘한 사람’으로 선택된 맛디아처럼,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직무를 다하는 신실한 주님의 사도가 될 것이요, 그런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은 한걸음씩 변화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의 힘으로 인함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과 주님의 사랑으로 인함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허물 많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 자신을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의 배경이나 우리의 인격으로는
도저히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품어주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위치에서나,

 겸손함과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하시사,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시는 직무들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이 시대의 12사도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에게는 손이 없습니다.

주님에게는 발이 없습니다.

우리의 손과 발이 주님의 손과 발이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그와 같은 우리의 겸손한 직무를 통해

내가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나의 삶터와 일터와 가정과 사회가

한 걸음씩 새롭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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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아름다움
심상정 지음 / 레디앙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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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치고 이명박 대통령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심상정 전 의원도 모를 사람은 이제 없을 듯합니다. 사실 그녀는 2004년 민주노동당 여성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되기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17대 국회 국정감사 때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무릎 꿇게 하여 빛을 발하기 시작한 인물입니다.

국회의원에 진출한 이후 그녀는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없애는데 한몫 했으며, 청와대 간담회 자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한미FTA에 관해 맞짱을 떴습니다. 삼성 문제를 까발리려 할 때 이건희 회장의 독대 제의를 당당하게 거절했으며, 2007년에는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로까지 출마했습니다. 그야말로 거물급 정치인으로 급부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2008년 고양시에서 진보신당 이름을 내걸고 출마했으나 아쉬운 고배의 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물론 그 같은 일은 총선이 있기 50여일 전까지 민주노동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매달린 채 당력에만 집중하였을 뿐 지역 텃밭에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그 여파로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열풍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으니, 그때의 못다 받은 지지와 사랑을 진보신당의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지금껏 받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녀가 직접 쓴 <당당한 아름다움>은 본래 총선 출마 전에 내 놓고자 했지만, 이런 저런 어려움으로 이제야 세상에 내놓는 책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그녀가 쌓아 올린 그간의 의정활동을 비롯하여 오늘날의 진보정치로 이끈 강력한 추동력과 같은 구로동맹파업 등 25년간의 노동운동 현장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학시절에 멋진 애인을 만들기 위해 하이힐을 신으며 운동권에 기웃거리면서 찍었다던 사진 이야기는 그야말로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엿보게 합니다. 

사실 그녀는 가정 형편상 고학으로 재수를 하여 서울대 사범대에 진학하였고, 그곳에서 멋진 남자를 사귀기 위해서 쫓아 다니다보니, 운동권 남자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멋진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종종 길거리에 나가 함께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야학도 하며, 노동자로서의 삶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위장취업에다, 국가보안법 혐의까지 씌워져 9년 동안 수배생활을 해야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이가 토요일마다 친구들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는 것 같았다. 매번 얻어먹으니 한 번은 갚아야 될 것 같아서 '이번엔 엄마가 생일 파티 해 주겠다'고 했더니 극구 사양하는 것이었다. 그해 아들한테서 받은 크리스마스카드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이제부터 말씀을 잘 듣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중에 커서 좋은 집을 사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살아 계셔요. 우균이가.'"(61쪽)

이는 39살의 나이에 서노련에서 활동하던 남편을 만나 혼인하여 낳은 아들 '우균'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노동 운동을 하느라 후배 집으로, 지방 출장으로 바쁘게 돌아다녔던 터에 심상정은 어린 아들과 좀체 함께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어린 아들을 안고 많이 울기도 했고, 가난한 살림살이 때문에 집 없는 설움도 겪어야 했지만, 부모 마음을 곧잘 헤아려 주던 우균이는 심상정의 노동활동을 지원해 주는 든든한 '우군'이었던 것입니다.

예전 운동권은 민주화라는 이상만 있으면, 그리고 민중을 휘어잡는 강력한 카리스마만 있으면 백성들이 곧잘 따라 움직였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무모한 이상과 카리스마만 있다고 해서 결코 이루고픈 뜻을 펼칠 수가 없는 시대입니다.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한 진단과 계획성이 있는 예방책을 내 놓은 합리성이 뒷받침 될 때에만 국민들이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모습보다는 내면이 더욱 아름다운 심상정에게는 그렇듯 따뜻한 카리스마와 정확한 계산에 근거한 합리성을 갖추고 있는 게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장점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은 책 출간을 맞이하여 서교동의 어느 2층 경연회 장에서 만난 그녀의 인품과 입담 속에서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는 실제적인 아름다움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공감하는 것처럼, 촛불 정국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이 더 좋아지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5년 후에는 노무현 정권보다 더 강력한 반 이명박 정권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인데, 과연 그때에 심상정은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준비가 되어 있을는지, 그 정책과 대안세력을 확대 생산해 놓았을지가 최대 관건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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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 다행이야 - 삶의 멘토가 된 이들의 가슴 따뜻한 희망 에세이
고도원 외 지음, 이원태 그림 / 창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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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후배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말을 트고 지내는 가까운 친구 녀석이 있습니다. 목사인 녀석이 둘째 아이를 낳기 전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태속 아이의 심장에 혹이 생겼으니 수술을 해야만 한다고 알려 왔습니다. 수술비도 만만치 않거니와, 수술한 후에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장애아가 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녀석은 그때 울먹이면서 제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왜 하나님은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걸까. 수술을 받는 게 도리인가. 아이가 태어나면 고통을 안고 살아갈 텐데 차라리 목숨을 끊어주는 게 낫지 않겠는가. 나로서는 뭐라 해 줄 말이 없어서 녀석의 울음 섞인 말에 그저 "응"이라 대꾸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불쑥 그런 말이 떠 올라 한 마디 건네 주었습니다. 어쩌면 너니까 그런 고통을 허락한 것 아니겠느냐. 그것이 어떤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약간의 장애를 겪고 있는 딸아이를 지금까지도 희망차게 키우고 있습니다.

안성기·정호승·고도원·김창완·홍세화·박원순 외 여러 사람이 쓴 <네가 있어 다행이야>는 인생의 좌절이라는 터널을 통과한 사람들의 희망 이야기로서 읽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살아갈 용기를 안겨 줍니다. 물론 아직도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현재 진행형의 고통을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고통 속에서 행복을 놓치지 않는 이들의 모습도 담고 있습니다. 

국민배우 안성기씨는 영화계에 몸담고 있었던 아버지 덕에 다섯 살 때부터 아역배우의 길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쓰라린 고통의 세월이 있었으니, ROTC 장교로 전역한 이후 백수로 지낸 2년의 세월이 그것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이미 혼인해 가정을 꾸린 친구들도 있었지만 자신은 그때까지도 부모님께 용돈을 타 써야 할 처지였으니 집에 있어도 있는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프랑스 문화원에 다니면서 예술 영화들을 본 것들, 영어 공부도 할 겸 네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들은 지금까지도 영화 전반을 보는 능력을 키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감독과 작품까지도 논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까닭에 그는 인기를 좇기보다는 신뢰받는 배우가 되기 위해 주어진 모든 현장에 최선을 다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과정이 곧 최상의 결과임을 믿고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해진 고도원씨도 연세대 대학신문의 편집국장 시절, 유신시대의 '긴급조치 9호'로 제적을 당하는가 하면, 교도소로 강제징집 당하는 고통스런 터널을 거처야 했고, 제대를 하고서도 졸업장이 없어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가 하면, 어렵사리 들어가 일했던 <뿌리깊은나무> 잡지가 신군부의 지시로 강제 폐간이 되자 또다시 백수가 되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런 고통의 경험들이 지금은 더없이 좋은 불쏘시개가 되어 있다고 하니, 불행을 희망으로 읽어내는 그의 해석을 크나큰 자산이지 않나 싶습니다.

여섯 살 때 양다리를 잃은 이후, 초등학교 전교생을 통틀어 장애인은 혼자 밖에 없어서 쉬는 시간이면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다니는 자신을 구경하려 온통 장사진을 치던 아이들,  그래서 쉬는 시간이 죽기보다 싫었다던 박대운씨는 휠체어로 유럽 5개국 2002킬로미터를 횡단했으며, 한·일 국토 종단 4000킬로미터를 횡단했고,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한다고 합니다. 그가 그런 일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시선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나를 버리지 않으면 어느 곳에든 함께 하는 것들이 있다'라는 도종환 님의 시처럼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에서 절망이란 있을 수 없다. 99번의 실패로 절망하기보다는 100번째 도전을 준비하는 자세가 우리의 인생을 더 값지게 하지 않을까!" (190쪽)

이 책을 읽노라니 문뜩 올 6월에 교회를 창립한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큰 기대감에 부풀어 마천동 남한산성 자락 아래에 교회를 시작하였는데, 방향도 목적도 분명치 못하다 보니, 그저 동네 곳곳에 즐비한 수많은 교회들이 위압감으로 작용했고, 당연히 사람 채우기에만 급급한 현실적인 모습으로 추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어리숙한 나를 믿고 함께해 주는 아내와 나를 아빠로 의지하며 따르는 아이들 셋이 있다는 것, 그리고 주일이면 다른 곳 마다하지 않고 함께 예배하기 위해 찾아오는 세 사람이 있다는 것,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소중한 보석들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소중함을 모른 채 멀리 있는 것들만 바라보며 살았던 지난 날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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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를 기록한 고야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외국편 10
조이한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세계적인 화가 ‘고야’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왕실과 귀족들의 아첨꾼 화가, 어두움과 고요의 편집증적 귀머거리 화가, 민중혁명과 사회 참여적 리얼리즘 화가,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이상주의 화가 등 여러 평가가 엇가릴 듯하다.

그만큼 고야는 혼란스런 시대의 산 증인이다. 그의 삶이 가난에서 부자로 갑작스레 급부상하는가 하면, 나라의 왕도 여섯 번이나 바뀌고, 중세에서 근대의 계몽주의로 넘어가던 시대적 혼돈을 겪었다. 궁정화가로 바뀐 신분은 호화로웠지만 왕실의 명암이 엇갈릴 때마다 겪은 불안은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가운데 외국편 제 10번째로 나온 〈혼돈의 시대를 기록한 고야〉는 그의 그림과 함께 그가 겪은 인생 역경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해 준다. 그의 그림이 왜 빨갛고 찐하고 어둡고 침울한지, 왜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지, 왕실이나 귀족의 초상화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흐르는지를 자세히 알게 해 준다.        

사실 고야는 28세가 되기 전까지는 그렇다할 화가로서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고향을 떠나 로마를 여행하면서부터 많은 그림을 익히고 배웠으며, 호세파 바예우와 혼인한 이후 마드리드로 상경하면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그린 덕에 왕립 아카데미 회원에 선출될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유난히 빨갛고 찐한 색을 즐겨 사용했다. 왕실과 귀족들의 초상화를 담기 위함이었다. 드디어 1789년 카를로스 4세 때에 궁정화가로 임명되었으니 그토록 바라던 명성과 부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초상화처럼 예쁘고 부드럽게 그리는 것보다 있는 생김새 그대로를 담아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한편 그의 그림 속에는 투우사들의 그림이 많다. 특히 족쇄에 묶인 투우사는 그가 사랑하던 그림이기도 했다. 그것은 소와 대등한 인간의 모습, 인간이 겪는 갖가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인간 의지의 반영이요, 궁정에 묶여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려는 자유의 날갯짓이기도 했다. 

“쉴새없이 변화하는 정치적 상황은 자신의 생존 자체를 위협합니다. 전쟁과 기근, 정치적 모함과 종교적 타락, 도처에 깔린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몽매, 사랑의 덧없음과 새털처럼 가벼운 인간의 마음, 배신과 비겁함이 판치는 인간 세상이 어쩌면 매순간 죽음과 대면하는 투우사의 심정에 자신을 투영시키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158쪽)

그런가 하면 1810년부터는 〈전쟁의 참화〉를 그려내기 시작했고, 1814년에는 〈옷 입은 마하〉와 대비되는 〈옷 벗은 마하〉를 그려내어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당대의 종교재판소에 고발되어 출두하기까지 한다. 그것은 1793년 여행 중에 병을 얻어 귀머거리가 된 이후의 그림들이었으니, 그가 얻은 자유와 창의력의 결과였다.

그처럼 고야를 보는 눈은 시대마다 다르다. 어떤 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그려내는 리얼리즘의 대가로, 어떤 때는 민중혁명이나 사회참여적인 혁명화가로, 어느 한편에서는 모든 사회 규칙에 굴복한 아첨꾼이나 기회주의자로, 그리고 인간과 현실을 뛰어넘어 악마의 세계를 그려내는 초현실주의자로.

그것은 분명 그의 굴곡진 삶의 반증이다. 그의 시대적 삶이 없었던들 어떻게 나라를 지배하는 왕과 귀족을, 노동하는 민중과 수작 거는 남자와 여자를. 성직자들의 부패와 종교 재판의 공포를, 추위와 굶주림과 질병과 전쟁의 공포 속에 떠는 수많은 참상들을 그에게서 엿볼 수 있겠는가?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을 시리즈로 엮어낸 이 기획에는 고흐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피카소, 렘브란트와 로댕, 브뢰겔과 모네, 그리고 밀레에 관하여 펴낸 바 있고, 한국의 김홍도와 이중섭, 장승업과 정선과 김정희를 펴낸 바 있다. 이들의 그림과 함께 설명해 주는 내용들이 어찌나 알뜰하고 꼼꼼한지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알찬 큐레이터 역할을 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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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님의 "한국에 한국 경제학자가 있는가?"

저도 이 글 담아갈께요.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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