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권력 - 인간과 자연, 갈등과 개입 그리고 화해의 역사
요아힘 라트카우 지음, 이영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역사는 자연을 다스린 권력의 역사라 해도 무방하다. 땅을 정복하고, 물을 다스려 온 역사 속에서 정치권력이 태동한 까닭이다. 칭기즈칸도 '조드'라는 몽골 초원의 추위와 폭설을 잘 다스렸기에 최고 권력자에 오를 수 있었다. 중국 못지않게 베니스도 치수와 관개시설에 신경을 곤두세운 까닭도 그것이다.

 

자연과 함께 더불어 온 원주민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태도는 어떠한가? 대지를 '어머니의 땅'으로 섬기던 원주민들에 대해 그들은 약탈과 살육의 방법으로 그들을 추방시켰다. 문명과 기술발전을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무자비한 광기가 도사렸던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지진 사고는 어떠한가? 값싼 원자력으로 많은 전력을 생산한다지만, 그 이면에 벌어질 자연재앙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인위적인 개발과 인간의 편리를 위한 정책은 그런 자연재앙의 후폭풍을 맞게 되는 것이다.

 

요아힘 라트카우의 〈자연과 권력〉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지속가능한 경제를 이어나갈 수 있는 구조와 제도, 권력과 정치에 방점을 놓고 있다. 단순한 자연숭배사상을 넘어, 보다 정교한 환경보호와 관리체계를 내다보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만큼 시간대와 공간범위도 넓을 뿐 아니라 주제마다 다양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첨가하고 있다.

 

"자연 자원을 친화적으로 사용하여 미래 세대에게 넘겨준다는 의미의 지속 가능성은 1922년 리우 환경 정상회의에서 세계 경제의 목표로 확정되었다. 독일 임업에서는 이 원칙이 벌써 수백 년간 지켜오고 있다. 오늘날에는 지속 가능성이란 이름으로 자연 착취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비판가들도 있지만 지속 가능성 개념이 색깔과 실체를 갖는 데 독일 임업사가 어느 정도는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머리말)

 

그가 강조하는 독일 임업사란 무엇인가? 자연과 공생해 온 독일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사실 라트카우는 원자력 개발 경쟁에 돌입하던 1970년대에 원자력 기술산업의 폐해를 추적하다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았고,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터지기 3년 전에는 독일 원자력 산업의 상승과 위기를 다룬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최근에는 독일정부가 모든 원전을 해체한다고 발표했는데, 그를 대체할만한 태양력·수력·풍력·메탄올가스 개발도 독일의 임업사와 함께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인류는 '불의 역사'와 함께 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을 이용하여 먹을 것을 구하고, 살림과 경제를 꾸려온 것 말이다. 이 책에서는 불을 이용한 경제를 '방화 경제'라고 칭한다. 그것은 유목생활과 임업사와 농업사에도 괘를 같이 해온 정책이라고 밝힌다. 모든 정착 생활의 근간이 그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뜻이다.

 

'방화 경제'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물, 곧 '치수경제'와 관련된 주제다. 인류는 수로를 이용해 나무와 목재를 운반해 왔다. 그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성전건축도 마찬가지다. 목재와 수로를 이용한 건축은 그 때 당시 세계역사의 전반적인 추세였다. 그리고 그것을 권력의 기반으로 삼기도 했다.

 

"근대 중국의 황제들은 범람지역을 시찰하고 댐 공사를 지시하는 모습을 과시적으로 드러냈다. 1854-1855년에도 황하의 어구는 북쪽으로 거의 500킬로미터나 이동했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당시는 태평천국 운동의 시대였다. 홍수는 정부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세계 그 어느 강도 역사상 그렇게 극단적으로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151쪽)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 가운데 눈여겨 볼 부분은 5장일 것이다. 그것은 '산업화', 이른바 자본주의 발달과 자원고갈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까닭이다. 라트카우는 19세기야말로 축산업과 계획 작물재배로 인한 자연자원의 고갈이 심한 때였다고 밝힌다. 석탄 사용과 화학 비료의 등장은 수질과 토양오염이라는 커다란 대가를 치르게 했다는 뜻이다. 다만 낙관적 환상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당시의 산업화는 자연파괴를 회복불가능한 시대로 만들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타당한 견해일까? 

 

"화석 연료의 유한성에 대한 불안이 낳은 대안인 대규모 수력 발전과 핵발전소는 다시 전례 없는 규모의 문제를 낳았다.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해결책이 더 큰 문제를 낳는 시대, 환경 문제의 규모가 커지고 문제 영역들 사이에 상호 작용이 강해져 가는 시대, 하지만 생태 의식도 크게 성장하여 지속 가능성은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대양과 대기와 같은 지구 공유 자산이 보호되려면 강력한 기관이 필요하지만, 그런 기관의 관철력 그리고 전반적이고 지구적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하나의 환경 정책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511쪽)

 

그렇다. 방화경제와 치수경제를 비롯해 인간의 역사는 자연과 뗄 수 없는 권력의 역사다. 그것이 산업화와 더불어 화석연료와 원자력개발로 확장돼 왔고, 이제는 자연재앙의 부메랑을 맞을 시점에 처해 있다. 이러한 때에 전 지구적인 자연의 요구를 충족할만한 환경정책에 모두가 골몰해야 한다. 어쩌면 인간이 쥐고 있는 권력을 자연에게 다시금 돌려줘야 할 때이다. 순환론적이고 환원론적인 생태계의 복원 말이다. 현재 독일 땅에서 펼쳐지고 있는 활발한 대체 에너지는 그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도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